제임스 러브록 별세..그가 창시한 '가이아 이론'은 어떤 것?

강찬수 2022. 7. 2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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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이론을 창시한 영국의 환경학자 제임스 러브록. 2009년 3월에 촬영한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지구를 살아 있는 거대한 생명체로 파악하는 '가이아 이론'을 창시한 영국의 환경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 27일(현지 시각) 10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그가 쓴 '가이아: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 '가이아의 복수' 등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돼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학자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단순한 행성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에 적응하고 진화해나가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보는 이론이다.
수많은 동‧식물과 미생물들이 함께 어울려 지구의 바다‧흙‧공기를 변화시켜 자신들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환경으로 만들고, 변화된 지구 환경은 다시 생물들에게 영향을 주는 식으로 지구와 생물이 함께 진화해 나간다는 내용이다.

1970년대 러브록과 미국의 여성 미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가 함께 내놓았다. 마굴리스는 지난 2011년 11월 22일 별세했다.
'가이아(Gaia)'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숭배하던 ‘대지의 여신’ 이름이다. 러브록의 이웃이었던 소설가 윌리엄 골딩이 그에게 ‘가이아'라는 명칭을 제안했다. 골딩은 '파리대왕'을 쓴 노벨 문학상 수상자다.


가이아는 그리스 '대지의 여신'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지구의 모습. 미 항공우주국(NASA)
1919년 7월 26일 런던에서 태어난 러브록은 영국과 미국에서 화학·의학·생물물리학을 공부했으며 영국 의학 연구협회, 미국 항공우주국(NASA) 산하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일했다. 러브록은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 가스를 비롯한 대기·토양·수중 오염 물질을 측정하는 장비를 개발하기도 했다.

1960년대 초 NASA 제트추진연구소에서 화성의 생명을 찾기 위한 실험에 참여하고 있던 러브록은 화성·금성·지구의 대기가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지구의 대기 중에 산소(O2)가 많이 존재하는 것은 단순한 화학반응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산소는 반응을 잘하는 물질이라 생물(식물)이 끊임없이 만들어내지 않으면 기체 상태로 존재할 수가 없다.
덩치가 큰 동물이 활동할 수 있고, 죽은 동식물이 분해되려면 산소 농도가 15% 이상 돼야 한다. 반면 산소가 너무 많아지면 산불 발생 위험이 커지는 문제가 생긴다. 산불이 통제 불능 상태로 맹렬하게 타오르는 것을 막으려면 25% 이하가 돼야 한다.

현재의 지구 대기 중의 산소 농도는 이 두 가지 수치의 중간 정도인 21%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의 농도는 땅속 미생물들이 메탄을 배출해 산소가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조절한 덕분이다.
러브록과 마굴리스는 대기 중의 산소량이 한계 수준을 넘어 증가하면 일종의 경보 체제가 가동되어 미생물들이 메탄의 생산을 늘린다고 믿었다. 그 결과 증가한 메탄이 대기로 퍼져 나가 산소를 희석해 안정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다.


지구와 화성 다른 것은 생명체 때문


금성. 미 항공우주국(NASA)
화성. 미 항공우주국(NASA)
러브록은 현재의 지구 대기는 다양한 생물들이 적당한 수준,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물들이 지구환경을 살아가기 적당한 곳으로 바꾼 결과이고, 생물이 없는 지구의 모습은 금성이나 화성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생각이 가이아 이론으로 연결됐다.

지구화학적 물질과 생명체 간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과 피드백은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 작용하고, 이를 통해 지구의 기후와 환경이 유지되고 생명체가 보호된다는 설명이다. 자체적 조절 기능을 통해 생명체가 유지될 수 있는 안정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지구 자체가 생명체와 다름없는 것이다.

가이아 이론에는 지구의 생물들은 대기 성분뿐만 아니라 바닷물의 염분 농도, 지표면의 온도도 생물이 살아가기에 적당한 조건으로 바꿨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가이아 이론은 인류가 지구환경의 파괴자라는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삼림의 벌목과 온실가스 배출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될 경우 지구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물론 지구 생태계가 급변하더라도 언젠가는 또다시 균형을 회복한다는 것이 가이아 이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새로운 균형을 찾았을 때도 인류가 지금처럼 계속 지구 위에 생존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가이아 이론을 함께 만든 마굴리스는 1988년 한 세미나에서 "인류는 자기 파괴를 일으키는 암과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구는 인류 없이 거의 모든 지질학적 시간(45억 년의 지구 나이를 말함)을 지내왔고, (인류가 파멸하면) 다시 인류 없이 지낼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러브록 자신은 지구 전체의 건강을 챙기는 ‘행성(行星) 의사’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온난화 막기 위해서는 원전 필요" 주장도


제임스 러브록. 2005년에 촬영한 사진이다. [위키피디아]
러브록이 처음 가이아 이론을 발표했을 때 학자들은 '비과학적'이라며 무시했지만, 지구환경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론(가설)에 포함된 은유적인 의미가 사람들을 사로잡게 됐다. 하지만 러브록은 원자력이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주장을 펴 반핵을 내세우는 환경운동가들과 멀어지기도 했다.

러브록은 6개월 전 심각한 낙상으로 건강이 악화하기 전까지는 도싯에 있는 집 근처 해안을 따라 걷기도 하고 인터뷰에 나설 수도 있었지만, 103세 생일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가이아' 지구의 이모저모.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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