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후려치는 대기업? 납품단가연동제의 불편한 진실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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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석]
▲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자 여야가 모두 납품단가연동제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 Jan-Rune Smenes Reite |
납품단가연동제란 원자재 값의 상승으로 인해 수급사업자가 공급하는 중간재의 제조 원가가 일정 비율 이상 상승했을 때 이를 공급가격에 반영하게 하는 제도다.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공급단가를 조정하도록 강제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제조 비용은 증가했지만 납품 가격은 고정돼 있어 고정 가격으로 중간재를 공급하기로 한 수급사업자들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납품단가연동제의 필요성이 한층 커지고 있다.
납품단가연동제의 입법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됐을 때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 납품단가연동제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인수위 주요 현안에서 제외됐다가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자 다시 입법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현행 하도급법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 상승 시 수급사업자(하도급기업)나 수급사업자가 소속된 중소기업협동조합이 원사업자에게 가격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다만 현행법은 공급 단가 조정을 원-하청 기업이 자율 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기에 강제성이 약하다. 입법 예고된 법안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 상승하면 단가 조정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급변하는 원자재 가격
납품단가연동제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한다. 그러나 원자재 납품단가연동제를 강제성을 띤 제도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쟁점을 정리해야 한다. 먼저 무엇을 원자재로 규정할 것인가부터 정해야 한다. 또한 어떤 업종에 우선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도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의 가격 변동시 납품단가 조정을 의무화할 것인가도 결정해야 한다. 넘어야 할 산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 [표1] 한국수입사업협회 국제원자재가격 지수 시점 간 비교(2010.12=100)(자료 : 국제원자재가격정보, 2022년 7월 5일 추출) |
ⓒ 남종석 |
원자재 10% 상승하면 원가 5% 이상 올라
▲ [표2] 매출원가 대비 재료비 비중(제조업)대기업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재벌) 계열사와 중견기업 포함. 재료비 비중 = (재료비/매출원가)×100(자료 : 한국기업데이터 2019) |
ⓒ 한국기업데이터 |
▲ [표3] 재료비 10% 상승시 납품단가 반영에 따른 영업이익률(제조업)* 40% 단가 반영시, 수정 매출액=2019년 총매출액 + 2019년 총재료비×0.1×0.4, 수정 매출원가=2019 매출원가 + 2019년 총재료비×0.1* 영업이익율=(영업이익/매출액)×100(자료 : 한국기업데이터 2019) |
ⓒ 한국기업데이터 |
한국은행의 데이터를 보면 대기업 영업이익률이 중소기업보다 높게 나타나지만 그것은 대기업 중 상위 5%의 영업이익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매출액 상위 1000개 기업을 제외하면 기업집단 소속 기업(재벌기업)이든, 중견기업이든 영업이익률이 중소기업보다 높은 기업이 드물다.
[표3]에서 강조된 부분은 재료비 상승 시 납품단가 반영 비율에 따른 영업이익 추정이다. 재료비는 매출원가의 50%라 가정했다. 재료비가 10% 상승할 경우 납품단가에 이를 반영하지 못하면 대기업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4.65%에서 2.05%로 하락하지만 중기업은 4.07%에서 –0.51%로, 소기업은 5.98%에서 2.08%로, 소공인은 7.54%에서 3.60%로 감소한다.
원청기업 절대다수가 중소기업
▲ 납품단가연동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다. 윤 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공정거래위원회의 2021년 하도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원청기업 중 83%가 중소기업이다. 중견기업 포함 대기업 비중은 17.0%에 불과하다. 대기업에는 재벌기업 계열사들이 모두 포함된 수치다. 원-하청 관계의 압도적인 부분이 중기업-중기업, 중기업-소기업, 소기업-소기업으로 구성됐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전액 납품단가에 반영할 경우, 수탁기업 중소기업의 부담은 줄어들지만 원청 중소기업의 수익률은 크게 악화된다.
또 다른 문제는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표1]에서 봤듯이 원자재 가격은 변동 폭이 매우 크지만 상승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납품단가연동제의 측면에서 보자면,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기업이 하청업체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하도급법에 원청 사업자는 수탁기업에 일방적인 단가 인하를 요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수탁기업에 일방적인 납품 단가 인하를 못 하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다.
납품가격연동제가 도입되면 수탁기업은 원자재 가격 상승 시 납품단가를 조정할 수 있는 반면 원청기업은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수탁기업에 공급단가를 낮추도록 요구할 수 없다. 이 경우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한 추가 수익은 수탁기업이 독점한다. 납품단가연동제가 중소기업 간 거래에서 공급기업에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기업이 원청이고 중소기업이 하청인 하도급 관계에서도 고려할 사항이 있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들에 중간재 공급 시장을 제공하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납품 의존도가 매우 높다. 협상력에서 대기업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과거 대기업들은 이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중소기업들에 일방적으로 납품단가를 인하하도록 강제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납품단가 인하는 공정거래법에서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대신에 대기업들은 중소기업들과의 신규 계약에서 중간재 매입량을 조정함으로써 중소기업을 통제한다. 비용 상승 압력을 공정혁신으로 감당할 수 있는 기업들에 더 많은 물량을 배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대칭적인 관계에서 중소기업만 희생자인 것은 아니다. 최종재나 수출 중간재를 생산하는 대기업들의 경우 세계시장의 경쟁압력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시장 성장 정체나 외국의 저가격 경쟁자들의 시장점유율이 확대될 경우 대기업이라도 매출액이 감소하고 영업 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세계시장의 불확실성은 대기업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대기업들은 하청기업들에 대한 협상력에서 우위를 갖고 있지만 세계시장의 불확실성을 스스로 감당한다. 기업규모별 영업이익률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낮게 나타나는 이유다. 평균적인 적자 비율에서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비중이 크게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원자재 가격 상승을 모두 납품단가에 반영해 원청기업이 재료비 상승의 부담을 100%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대기업의 경쟁력 악화는 장기적으로 수출제조업 전체의 경쟁력 악화로 귀결될 수 있다. 제조업으로 한정해 보면 비용 상승분을 공급가격에 그대로 반영시킬 경우 자칫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한국 기업 중 세계적 독점력, 과점력을 향유하는 기업들은 재료비 부담을 가격에 반영하여 세계시장에 공급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대기업이 다수다. 이 기업들은 중간재 매입가격이 인상되더라도 이를 그대로 수출가격에 반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비용 상승의 일부는 수탁기업도 감당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다.
▲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지난 6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납품단가 연동제 입법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공정거래위원회는 납품단가연동제 법제화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업 간 거래에서 가격 협상의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원칙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또한 납품단가연동제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래서 현행 하도급법에 도입되어 있는 표준하도급계약서 작성을 독려하고 있다. 이 계약서를 작성하면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때 납품단가 조정을 강제할 수 있다.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더라도 수탁기업은 스스로 원청사업자에게 납품단가 조정을 요구할 수 있으며 원청사는 요구가 있을 때 10일 이내에 이에 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필자는 납품단가연동제의 필요성에는 강하게 공감하면서도 이것을 법제화하는 데는 여러 고려 사항이 있음을 보이고자 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직면한 어려움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더불어 납품단가 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질 필요성에도 공감한다.
다만 원자재 가격상승 부담을 수요기업(원청기업)에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설계돼서는 안 된다. 더불어 원자재 가격 하락 시 그 수익의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적극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제조업 사례를 중심으로 논리를 전개했다. 업종에 따라서 원하청 기업의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원청사업자가 국내 건설업이나 공공부문일 경우는 제조업과 상황이 다르다. 서비스업이나 건설업, 공공부문 발주는 대부분 교역재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 간 경쟁에 노출되어 있지 않다.
▲ 남종석 / 경남연구원 연구실장(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 남종석 |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남종석 박사는 경남연구원 혁신성장경제연구실 실장으로 재직중이며 <소셜 코리아>의 운영위원입니다. 한국 제조업 산업생태계, 지역불균등 발전, 제조업의 탈탄소화와 그린뉴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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