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나무가 희망이다③] 가로수는 도시의 폭염 대피소

문정임 2022. 7. 28.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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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인위적 온실가스의 배출량 증가가 지구 온난화의 주원인이라고 선언했다. 탄소 저감이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의 긴급한 과제가 되면서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나무의 기능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 나무를 활용해 탄소 저감에 나선 곳을 찾았다. 나무가 숲이 되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치와 효용을 6회에 걸쳐 살펴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대구시가 1996년부터 폭염을 상쇄하기 위한 나무심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로수 등 도시숲 조성을 통한 기후 위기 대응의 모범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9일 대구시 수성구 대구은행네거리 주변에 양버즘나무가 길게 식재된 모습. 문정임 기자

대구은행 본점과 들안로를 잇는 인도에 양버즘나무와 메타세쿼이아 등 수관이 풍성한 나무들이 도로를 따라 길게 도열했다. 지난 6월, 일찍 찾아온 무더위로 대구시의 낮 기온이 섭씨 30도까지 올랐지만 일부 시민들은 양산을 접은 채 걷고 있었다. 점심시간 건물에서 우르르 몰려나온 직장인들은 몇 블록 떨어진 식당까지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인근 학원에서 근무하는 정소민(34)씨는 “더운데 그늘을 따라 걸으면 그나마 시원하다”며 “가로수가 없었으면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여름철 걸어서 이동하기가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사거리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건물 3층 높이가 훌쩍 넘는 가로수들이 거리에 즐비했고, 사람들은 가로수가 만든 거대한 그늘 터널을 따라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주변 도로에 가로수가 길게 늘어서 있다. 사진과 같이 가로수를 2열로 식재하면 태양 복사 시간이 줄어들고 증산 과정이 일어나면서 주변 온도를 더 효과적으로 낮춘다. 문정임 기자


대구시가 더운 지형적 특성을 만회하기 위해 30여년 전부터 추진해 온 나무 심기 사업이 지구온난화로 폭염을 걱정하게 된 여러 지자체의 주목을 끌고 있다. 대구는 아프리카만큼 덥다는 의미에서 ‘대프리카’라는 별칭을 가진 도시다. 체감온도가 33도를 넘는 폭염일수가 일 년에 25일 가량으로 전국 도시 중 가장 많다.

폭염일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도시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구는 일 최고기온과 열지수, 불쾌지수, 인지온도 등 폭염 취약성을 나타내는 여러 지수에서도 선 순위를 차지한다.

몇 년 전 국립기상과학원은 고령화, 도시화, 온난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구의 폭염 강도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바로 이런 기후적 취약성이 대구시를 녹지 정책에 서둘러 관심을 갖도록 이끈 원동력이 됐다.

대구시는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4725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도심 열섬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동서남북 권역별로 생활권 도시숲을 조성하고, 산업단지와 고속도로, 도로변에 소음과 먼지를 차단하는 완충녹지를 형성했다. 공공 공지나 유휴지 등 크고 작은 공간에는 화단을 조성해 휴식공간을 제공했다.

이중 대구시에 식재된 가로수는 22만7000그루로 총 길이가 1303㎞에 이른다. 지난 30여년간 지속적으로 조성해온 가로수들은 나무의 생장과 함께 새로운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국채보상로의 대왕참나무는 가을마다 붉은 단풍으로 장관을 이룬다. 동대구로의 히말라야시더는 지역의 랜드마크가 됐다. 팔공산 순환도로의 단풍나무도 대구시의 대표 가로수 길로 자리 잡았다.

대구 수성구의 시민들이 아파트에서 상가로 이어지는 보도를 걷고 있다. 문정임 기자


해마다 폭염의 극한값이 커지는 기후 위기 시대에 가로수는 도시의 열섬현상을 완화해 줄 녹색 처방전으로 주목 받는다.

가장 절실한 기능은 도시에 그늘을 만들어 온도를 낮춰주는 것이다. 앞서 국립산림과학원 도시숲센터가 도심과 도시숲의 기온을 열화상 카메라로 분석한 실험에서 도시숲은 도심에 비해 최대 3도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로수가 있는 보도는 가로수가 없는 보도보다 표면 온도가 평균 2.3~2.7도나 더 낮았다.

여의도 공원의 경우 광장 표면 온도가 공원 조성 전에는 주변보다 평균 2.5도 높았으나 여의도 숲 조성 이후에는 주변보다 평균 0.9도가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나무에 의한 증산 효과와 숲이 만드는 그늘효과, 반사열 저감 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같은 조사에서 도시숲은 습도를 9~23% 상승시키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한여름 신호등 옆에 설치된 그늘막 아래에서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지만, 나무 그늘이 더 쾌적한 것은 인공 그늘막과 달리 나무는 그늘효과뿐 아니라 증산작용을 통해 주변 공기의 온도를 더욱 낮춰주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 개선문 광장의 가로수. 네모 모양으로 전정한 모습이 이색적이다. 대구시도 수종에 따라 특색있는 모양으로 가지 치기를 해 도시의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독자 제공


대구시는 가로수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도시 미관을 위해 식재 방식을 다변화했다. 키가 큰 교목은 2열로 심어 더 넓은 그늘을 만들고 계단식, 복합식, 군락 식재, 다층 구조 등 다양한 식재 방식으로 지역에 가장 어울리는 녹지 공간을 만들어냈다.

2019년부터는 가로수 관리에도 변화를 시도했다. 수성구 들안로 일부 구간의 양버즘나무를 직각 모양으로 다듬은 것을 시작으로 적용 수종을 확대하고 자르는 모양도 네모에서 세모, 둥근 형태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다.

이 같은 특색 전정은 가로수 잎이 무성해짐으로써 발생하는 주민 민원을 줄이고 특색 있는 가로 경관을 창출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낸다.

대구의 산림은 1조6485억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국립산림과학원이 대구의 산림면적(4만7229㏊, 2018년 기준)에 대해 부분별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결과 총 1조648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중 가장 높은 금액(34.2%, 5637억원)으로 평가된 부분은 온실가스 흡수·저장 기능이다. 침엽수 1그루당 18.61㎏, 활엽수 1그루당 1년에 4.36㎏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데 이를 통해 탄소 중립과 기후 변화 대응에 크게 기여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구경북연구원 관계자는 “우리나라 인구의 90% 이상이 도시에 모여 산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로수는 도시라는 제한된 공간만이 아닌 지구 전체의 기후 위기 대응에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앞으로 대구시는 가로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시민들이 가로수 관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보 개방과 공유 작업을 활성화해 가로수가 도시 기반시설의 하나로 진화할 수 있도록 더 체계적인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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