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들킨 남편, 되레 "생활비 끊기고 이혼 소송 당할래?"

하수영 2022. 7. 28.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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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스톡]

불륜을 한 남편이 유책 배우자임에도 불구하고 이혼 소송을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한 여성의 사연이 알려졌다.

지난 27일 YTN 라디오 ‘양소영 변호사의 상담소’에는 결혼 20년 차라는 여성 A씨가 제보한 이런 내용의 사연이 공개됐다.

A씨는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남편의 휴대전화에서 “오늘은 돼?”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발견했다. 보낸 이는 ‘최 사장’이었다. 또 다른 날에는 “나 너무너무 행복해”라는 문자 메시지를 발견했는데, 보낸 이는 ‘박 교수’였다.

A씨는 “남편은 항상 밤늦게 귀가하고 술에 만취해 집에 들어온 때가 많았고, 직감상 문자 메시지도 남자가 아닌 여자가 보낸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A씨는 실제로 숙박업소 영수증을 발견했고, 남편에게 따져 물었다. A씨에 따르면 처음에는 거짓말을 하던 남편은 결국 인정했는데, “남자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간섭한다”며 화를 냈다고 한다.

심지어 A씨 남편은 A씨에게 이혼을 요구하며 “생활비를 끊고 이혼 소송을 하겠다” “이제는 유책 배우자도 이혼 소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A씨는 “정말 남편이 나에게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냐”며 조언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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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제한적으로 유책 배우자 이혼 소송 청구 인정…“A씨 남편에 적용할 순 없어, 유책주의 여전”

양소영 변호사는 “아무래도 남편분이 얼마 전에 있었던 대법원 판결 기사를 보고 이렇게 떵떵거리시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효원 변호사는 “A씨 남편은 유책 배우자로서 이혼 청구가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남편이 여성들과 모텔을 드나들고 또 여성들을 ‘최 사장’, ‘박 교수’라는 이름으로 저장해서 연락하면서 부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남편은 유책 배우자이시고 대법원의 기본 입장에 따라 이혼 청구는 어려우실 것 같다”고 의견을 냈다.

다만 대법원이 제한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소송 청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먼저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서 일방적인 축출 이혼(유책배우자가 무책배우자를 고의로 쫓아내는 이혼)이 될 염려가 없는 경우, 그리고 유책 배우자가 자신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에 유책 배우자의 이혼 소송 청구가 인정된다.

또 세월의 경과에 따라서 유책 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돼서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는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에도 유책 배우자가 이혼 소송을 청구할 수 있다.

즉, 이혼 청구를 배척해야 할 만큼 혼인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남아 있지 않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이 유책 배우자의 이혼 소송 청구를 인정한 사례를 A씨 남편의 사례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최근 유책 배우자의 이혼 소송 청구가 대법원으로부터 인정된 사례를 살펴보면 이렇다. 유책 배우자가 1차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가 기각됐고 확정이 됐는데, 이후 별거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관계가 개선되지 못한 상태로 있다가 유책 배우자가 2차 소송을 제기하자 이를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강 변호사는 “과거 유책 배우자라는 이유로 이혼 기각이 확정됐지만, 상대 배우자가 종전 소송에서 문제 됐던 일방 배우자의 유책성에 대한 비난을 계속하고 일방 배우자의 전면적인 양보만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 혼인 관계 회복과 양립하기 어려운 민·형사 소송 등의 사정이 남아 있음에도 장기간 별거가 고착화됐고, 상대 배우자에 대한 보상이나 설득으로 협의 이혼도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종전 이혼 소송의 변론 당시 현저했던 일방 배우자의 유책성이 상당히 희석됐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중앙포토]

대법원은 이렇게 제한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소송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상대 배우자에 대한 보호와 배려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상대 배우자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매우 취약한 지위에 있어서 보호 필요성이 큰 경우 ▶각종 사회보장급여, 연금, 사적 보험 등의 혜택이 법률상 배우자의 지위가 유지됨을 전제로 하는 경우 ▶이혼에 불응하는 상대 배우자가 혼인 계속과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언행을 하더라도 그 이혼 거절 의사가 이혼 후 자신 또는 미성년 자녀의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상태와 생활 보장에 대한 우려에서 기인한 경우 등에 해당할 때는,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면서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강 변호사는 “따라서 최근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와 관련된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고 해서, 대법원이 유책주의를 파괴했다고 볼 수 없다”며 “대법원의 기본 입장은 여전히 유책 배우자 이혼 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한다”고 말했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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