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존의 문화산책]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직장

2022. 7. 2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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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존 한국 프랑스학교 사서

프랑스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 여러 부문에서 기업 공개채용에 응하는 지원자들이 줄어들고 있다. 경제는 계속 악화하고 공식 등록된 구직자가 수백만 명인데도 기업들의 열에 여섯은 구인난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의 열에 아홉은 ‘적당한 인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프랑스 같은 관광지에 중요한 호텔, 서비스, 출장 요리 산업이다.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물론 유럽 다른 나라도 똑같은 현상을 겪고 있다. 또 민간 부문만이 아니다. 프랑스 국립 교육의 특정 지역, 단계, 과목에 대해서도 교직 시험을 치르는 지원자 수가 줄어들었다. 인기 직종이던 간호사 역시 지원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 팬데믹에 재택근무 늘어
선진국들의 구인난 심각
노동에 대한 인식 달라져
일터와 개인공간 나눠야

휴양지에서 회사 일도 하는‘워케이션((workation)’을 도입한 기업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바꿔놓은 풍경 중 하나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물가 상승과 저성장에도 구인난이 이렇게 심각한 적은 없었다. 이는 노동 시장의 임금과 공급·수요 측면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간과하는 외부 변수도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그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어떤 직종의 근무환경은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급여가 불충분해서, 유연성이 없어서, 일정 예측이 되지 않아서 굳이 열성적으로 지원할 만큼 고무적이지 않다.

그런데 이런 해명은 그럴싸한 표현이고, 사실 몇몇 국가에서는 일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 같다. 프랑스·대한민국 등 선진국 대부분이 겪는 현상이다. 즉 많은 사람이, 특히 젊은이들이 직장 아닌 다른 곳에 더 헌신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 때문에 자신이나 가족을 희생시키기를 점점 더 거부한다. 개인 생활과 직장생활의 균형을 원한다. 일은 일 자체로 끝나기보다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수단으로 이해되고 있다.

팬데믹으로 일상과 업무의 관계, 일의 중요성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가장 분명한 사례가 재택근무다. 최근까지도 몇몇 회사들은 재택근무 도입을 꺼렸다. 그러나 이제 프랑스는 900만 명가량이 집에서 회사 일을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원거리 근무가 늘어났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눈부시게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은 그간 ‘회사가 곧 집’이라는 주문에 의존했다. 예컨대 기업문화와 회사 내 위계에 대한 존중은 특히 대기업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이 사회적 합의를 코로나만큼 철저하게 뒤엎은 경우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오래도록 (그리고 여전히 많은 관리자가) 집에서 하는 근무는 미심쩍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와는 반대로 (그리고 여전히 일부 회사에서는) 회사에서 시간을 오래 보낼수록 결과가 더 좋아진다고 믿었다.

이런 맥락에서 회사의 성장을 위해 자신이 희생되기를 원치 않는 한국의 신세대들은 프랑스 근로자들보다 훨씬 흥미롭다. 수많은 한국 회사들이 복합적인 형태의 재택근무를 도입, 특정 일수는 재택을 하거나 당사가 아닌 집 근처 협업공간에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더 많은 근로자가 일과 생활의 균형을 경험하고 이런 근무형태를 더 자주, 더 다양하게 요구함으로써 한국의 일터에 작은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추세와 연관된 또 다른 개념의 근무형태가 출현했다. 일례로 워케이션(workation, 일(work)과 여가(vacation)의 합성어)이 있다. 한국인은 이 새로운 유행을 받아들여, 여행에 대한 수요를 증폭시켰다. 창업하는 청년도 더 많아지고 있다. 대기업에서 평생 근무하는 것은 더 이상 모든 사람의 꿈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이 발전의 증거라고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일터와 개인 공간이 분리되지 않으면 해로울 수 있다. 일과 여가가 연결되면 둘 중 하나는 다른 하나에 밀려 나갈 것이다. 이런 조합에서는 둘을 분리하기가 어려울 수 있고, 이는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중요한 문제다. 마지막으로 ‘삼포 세대’(연애·결혼·자녀를 포기한 세대)라는 말은 생활과 일을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말인 만큼, 젊은 세대에게도 여전히 일이란 희생과 동의어일 수 있음을 잊지 말자.

나는 일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긍정적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들의 내적 욕구와 필요에 적합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공공기관들은 계속해서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특히 프랑스처럼 인력난을 겪고 있는 부문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근로자를 보호하는 새로운 법률에 의한 새로운 채용 방식 또한 병행돼야 한다.

에바 존 한국 프랑스학교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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