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칩4 참여 신중모드..미국에 "반중 연합체는 곤란" 설득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 3월 제안한 칩4(Chip4, 미국·한국·일본·대만 반도체 공급망 동맹)는 미·중 경쟁의 판도가 기존 무역 경쟁에서 반도체를 중심에 둔 기술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칩4를 활용해 반도체 분야의 반중(反中) 전선을 확대하려는 미국과, 이에 불만을 드러내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입장 표명을 극도로 자제하며 신중 모드로 일관하고 있다.
다만 한국이 처한 미·중 반도체 공급망 경쟁의 양상은 기존 양자택일 딜레마와는 다른 구도다. 미·중이 짜놓은 판에 수동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국익 극대화를 목표로 판짜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칩4의 성격과 방향성 등이 구체화하지 않은 만큼 ‘반중 연합체’ 성격을 희석하기 위한 우회로를 찾고 있다.
먼저 정부는 칩4가 특정국을 배제하는 폐쇄적 연합체로 운용해선 안 된다고 보고 있다. 현재 4개국 이외에 네덜란드 등 경쟁력을 갖춘 다른 반도체 강국에 칩4의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미국 측에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측이 다음 달 말까지 칩4 첫 실무회의 참석 여부를 알려달라는 요청에 대해 정부는 선택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아닌 회의 개최 전 사전 조율 과정으로 본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초기 멤버로 참여해 ‘룰 메이커’ 역할을 한 것처럼 칩4 역시 방향성과 정체성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조율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칩4는 4개국이 서로의 특장점을 바탕으로 시너지를 내기 위한 연합체이지, 중국 등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방향이 돼선 안 된다는 점을 미국 측에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칩4’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칩4가 구속력 강한 동맹 형태의 연합체가 아니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의 칩4 가입은 상업적 자살”(중국 글로벌타임스 지난 21일 보도)이라며 견제 수위를 높이는 중국을 다독이기 위한 메시지지만, 실제로도 칩4는 구체적 성격도 규정되지 않은 아이디어 수준의 제안이라고 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27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언론에선 (칩4) 동맹이란 표현을 많이 쓰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반도체를 주로 생산·개발하는 국가 간 대화를 위한 협력체”라며 “한국 입장에선 아직 결정내린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칩4에 들어가는 경우에도 이건 특정 국가를 배제하기 위한 게 아니라 한국의 국익이란 차원에서 판단하고, 관련국 역시 이를 모두 동의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관건은 한국의 칩4 참여가 반중 성격의 행보가 아니란 점을 설득하는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외교부 업무보고에서 “IPEF와 칩4는 특정국 배제가 아닌 국익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는 취지로 주문했다. 박 장관은 “(윤 대통령은) 중국이 오해하지 않도록 사전에 설명하고 풀어나가도록 적극적인 외교를 주문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칩4 등 연합체 형태의 공급망 네트워크는 장기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동시에 단기적으론 한·미 동맹 차원의 양자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6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과의 화상 면담을 통해 220억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계획을 밝힌 게 대표적이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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