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국에 10조대 수출..K방산 사상최대 실적

이철재, 김상진 2022. 7. 2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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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가 한국산 무기체계 구매에 사활을 걸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방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면서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폴란드의 대량 구입으로 한국의 방위산업은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폴란드 국방부는 27일(현지시간) K2 전차 980대, K9 자주포 648문, FA-50 경공격기 48대 등 한국산 무기 3종을 대거 사들이는 기본계약(FA)을 맺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계약은 각 무기의 제조사인 현대로템(K2)·한화디펜스(K9)·한국항공우주산업(FA-50)과 각각 맺었다.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 장관은 “이번 한국과의 무기 계약은 최근 몇 년간 방산 도입 중 최대 규모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라며 “지체 없이 폴란드군을 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국산 무기 수출은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UAE)와 맺은 지대공 요격미사일 천궁-Ⅱ 수출계약 35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4조2000억원) 규모가 역대 최대였다. 이번 폴란드 수출은 UAE의 2배를 훌쩍 뛰어넘는 최소 10조원에 이르러 최대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폴란드 측은 구체적인 대수까지 확정했다. K2 전차는 180대를 완제품으로 구매하고, 2026년부터 800대를 폴란드 현지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현지화 모델에는 ‘K2PL’이란 명칭이 붙는다.

‘흑표’라는 별칭의 K2는 화력·장갑·기동력 등에서 미군 주력전차인 M1 에이브럼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상급 전차로 평가받는다. 육군은 2014년부터 실전 배치해 운용 중이다. 도하 능력이 뛰어나 강이 많은 폴란드 지형에 적합하다는 분석도 있다. 그동안 한국산 엔진에 독일제 변속기를 쓰는 파워팩이 수출의 걸림돌로 작용했지만, 폴란드는 독일의 교역 제한 대상이 아니어서 수출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155㎜ 자주포인 K9 역시 48문을 한국에서 도입하고, 그 뒤 600문을 추가로 현지 생산한다. 세계 방산시장에서 ‘명품 무기’로 호평받은 K9은 이미 노르웨이·핀란드·에스토니아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도입해 운용 중이다. K9은 정확한 속사로 명성이 높다. 최신형은 1분에 아홉 발까지 쏠 수 있다. 지난 2월엔 이집트와 200문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2000년 이후 전 세계 155㎜ 자주포 수출 시장 장악률이 69%에 이른다.

폴란드는 2014년 K9 차체를 120여 대 수입하기로 했다. K9 차체에 영국(포탑)·독일(엔진)·미국(변속기) 업체의 주요 부품을 결합한 ‘AHS크라프’ 자주포를 양산하기 위해서였다.


폴란드, 우크라에 무기 대량 지원 … K방산으로 빈자리 채워

FA-50 경공격기는 총 48대를 도입하는데, 내년 중 12대를 먼저 넘긴다. FA-50이 유럽 시장에 수출되는 건 처음이다. 현재 필리핀과 이라크 공군이 운용 중이다. FA-50은 미국 록히드마틴의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한 T-50 초음속 고등훈련기와 동체가 같다. ‘미니 F-16’으로 불릴 만큼 이른바 ‘가성비’가 높다. 비교적 최근 개발된 기체여서 항전 장비는 더 뛰어나다는 평가다. 정밀 유도무기인 합동정밀직격탄(JDAM)이나 AIM-9 ‘사이드와인더’, AGM-65 ‘매버릭’ 공대지 미사일 등을 장착한다. 한국 방산 수출 사상 한꺼번에 이렇게 다양한 무기를 대량 수출하는 건 처음이다. 하지만 폴란드는 이들 무기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가격에 도입할지는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방위사업청은 이번 계약과 관련해 일절 함구하고 있다. 익명의 정부 소식통은 “기본계약은 본계약(MOA) 전 단계지만 법적 구속력을 갖췄다”며 “세부적인 사항은 폴란드 측과 계속 협상 중”이라고 설명했다.

폴란드, 천궁-Ⅱ 방공 미사일에도 관심

폴란드가 한국산 무기 구매에 공을 들이는 건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이 크다. 폴란드는 러시아 침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에 많은 무기를 지원해 왔다. K9 차체로 만든 크라프 자주포를 18문 지원한 데 이어 추가로 60문을 더 보낼 계획이란 현지 보도가 나왔다. 이를 합하면 폴란드가 보유한 크라프의 절반이 넘는다. 폴란드 육군이 보유한 옛소련제 T-72 전차의 상당수도 우크라이나에 넘겨준 것으로 관측된다.

과거 소련제 무기를 주로 썼던 폴란드의 무기 서방화도 한몫했다. 폴란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20년 1월 미국과 F-35A 스텔스 전투기 32대를 46억 달러(약 5조5000억원)에 구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K9 자주포 주요 성능과 제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폴란드가 한국산 무기를 선호하는 이유와 관련, “미국 무기를 수입하려 했으나 도입 단가는 물론 운영 유지비가 많이 들고 후속 지원도 만족스럽지 못한 측면이 있었으며, 독일은 역사적 관계가 껄끄럽고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아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폴란드 수출은 지난 5월 29일 브와슈차크 장관이 방한해 국방부와 방사청을 방문, “양국 간 실질적인 방산 협력 강화”를 주문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그 뒤 실제 구매 발표까지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방산업계에선 폴란드가 다른 한국산 무기를 더 구매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폴란드 군수 당국자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K21 보병전투차와 K808 차륜형 장갑차(백호), K239 다연장 로켓발사기(천무) 등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UAE 수출이 성사된 천궁-Ⅱ 방공 미사일에도 눈독을 들인다. 폴란드가 러시아 미사일에 큰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300㎞ 정도 떨어진 러시아 역외 영토(본토와 육지로 연결되지 않은 땅)인 칼리닌그라드에는 이스칸데르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이 배치된 상태다. 이를 고려해 미국은 패트리엇 미사일 2개 포대를 폴란드에 급파했다. 미군은 지난 6월 유럽 지역을 담당하는 육군 제5군단 사령부를 미 본토의 켄터키주 포트 녹스에서 폴란드로 전진 배치하기로 했다.

러시아와 관계 악화 우려 목소리도

많은 수입 물량 때문에 일각에선 폴란드의 대금 지급 능력을 우려한다. 2020년 기준 폴란드의 국방예산은 128억 달러(약 16조8000억원) 정도다. 그러나 지난 2월 관련법을 개정해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2% 수준인 국방비를 3%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폴란드 정부는 경제가 어려워져도 국방 예산에는 영향이 가지 않도록 국군지원펀드(PFR)를 별도로 만들었다.

대폴란드 무기 수출로 대러시아 관계의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의 국책기관 연구원은 “러시아가 자국에 대한 경제 제재와 대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을 이유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에 대한 가스 공급 차단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 온 폴란드에 현 시점에서 공격용 무기를 수출하는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정권에 나쁜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척당 3억 달러(약 3940억원)에 이르는 고부가가치 선박인 쇄빙 LNG선 수주 등 대러시아 사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폴란드는 2021년 기준 11만4050명의 병력에 독일제 레오파르트2 142대와 옛소련제 T-72 329대, T-72의 폴란드 개량형인 PT-91 232대 등 주력전차 800여 대를 보유했다. 공군기로는 48대의 미국제 F-16과 함께 28대의 옛소련제 미그-29 등을 운용 중이다.

바르샤바(폴란드)=국방부 공동취재단, 이철재·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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