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보다 더 센 'SF 복합위기' 오고 있다
‘우울하고 한층 더 불확실한(Gloomy and more uncertain)’.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을 비롯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춰 발표한 지난 26일(현지시간), 올리비에 블랑샤 전 수석이코노미스트가 IMF 공식 블로그에 올린 글 제목이다. IMF와 같은 주요 경제전망기관과 경제 전문가들이 요즘 던지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경기 침체가 오고 있다”는 경고다.
26일 CNBC 조사에 따르면 펀드매니저·경제분석가·경제학자 30명 가운데 63%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물가를 잡기 위해 벌이는 강도 높은 긴축 노력이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봤다. 55%는 침체가 1년 안에 닥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달 전 응답 때보다 20%포인트나 오른 수치다.
이들 대부분은 가벼운(mild) 정도의 경기 침체를 예상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하며 ‘닥터 둠’이란 별명을 얻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경고는 여기서 한참 더 나간다. 그는 25일(현지시간)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경기 침체가 짧고 가볍게 지나갈 것이란 예측은 완전한 망상”이라고 일축했다.
루비니 교수는 “이번 위기는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과 2008년 금융위기를 섞어 놓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70년대를 닮았고,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기간 중 각국 중앙은행이 제로 금리 정책을 펼쳐 과열된 부동산은 2008년을 닮았다는 지적이다. 부채도 금융위기 때처럼 높은 수준이다. 결국 이번 위기는 금융위기와 극심한 경기 침체가 한 번에 오는 ‘복합 위기’가 되리란 경고다.
한국 경제에도 ‘R(Recession·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물가와 금리가 오르고 원화 값은 주저앉으며 경기 하강 위험이 한층 커졌다.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값은 전날보다 5.7원 내린(환율은 상승) 1313.3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화는 오후 한때 달러당 1314.9원까지 떨어지는 등 내내 불안하게 움직였다. 이날 코스피는 소폭(0.11%) 올랐지만 원화가치는 계속 내리막길을 탔다.
미국 기준금리 향방을 결정짓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28일 새벽(한국 시간) 열리는 점이 외환 시장의 불안감을 키웠다. Fed가 지난달에 이어 0.75%포인트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압도적이다.
한국 물가 상황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 98년 글로벌 외환위기 이후 최고인 6%(6월)로 올라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언제 ‘피크(정점)’를 찍을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국은행은 이날 7월 기대인플레이션이 전달보다 0.8%포인트 오른 4.7%라고 밝혔다. 소비자가 1년 뒤 물가 상승률이 얼마일지 예상한 수치인데, 4.7%는 역대 최고 수치다. 황희진 한은 경제통계국 통계조사팀장은 “현재 물가 수준에 기반해 기대인플레이션을 응답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하반기에도 인플레이션이 지속할 수 있다는 뉴스 등도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은 임금과 상품 가격을 끌어올려 물가 오름세를 부추긴다. 국제유가 등이 가라앉더라도 물가 상승이 지속할 수 있는 만큼, 각국 중앙은행들은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금리 인상 보폭을 넓히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 13일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은 한은의 고민도 커지게 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13일 빅스텝을 단행한 후 “기대인플레이션을 꺾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빅스텝을 통해서 강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리면 1859조원 가계부채에 짓눌린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다.
고금리·물가 탓에 경기 회복 동력이었던 소비마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소비심리지수 급락, 버팀목 수출도 맥 못 춰 … “하강 국면 진입”
이번 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보다 10.4포인트 하락한 86으로 2020년 9월(80.9) 이후 가장 낮다. CCSI는 장기평균치(2003년 1월~2021년 12월)를 기준으로 100보다 크면 경제 상황을 낙관적, 작으면 비관적으로 해석한다. 한은 관계자는 “물가 오름세가 지속하고, 글로벌 긴축 가속화와 주요국 경기 둔화 우려 등으로 소비자심리지수가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올 2분기엔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로 소비가 살아나며 0.7%(전 분기 대비) ‘반짝’ 경제 성장이 가능했지만 전망은 어둡기만 하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과 코로나 재확산 등이 6월 중순 이후 소비 심리를 잔뜩 위축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예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경기 둔화에도 불구, 금리 인상 기조는 이어지고 (정부의) 재정 여력도 제한되면서 소비 심리는 추가로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다시 10만 명을 훌쩍 넘어선 것도 소비 위축을 가중할 요인이다.
경제위기 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도 이번엔 맥을 못 추고 있다. 관세청 집계에 따르면 이달 1~20일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 적자는 81억200만 달러(약 10조6000억원)를 기록했다. 지난 4월부터 4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원자재 가격 상승, 원화 값 하락으로 수입액이 크게 불어난 반면 수출액 증가율은 예년만 못해서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무역수지 적자 등) 무역지표 약화의 원인은 수입 증가와 수출 둔화 두 가지”라며 “수입 증가는 (에너지 가격 안정 시) 개선 여지가 있지만, 수출 둔화는 경기 하강을 반영하고 있다”고 짚었다.
세종=조현숙 기자, 김연주·안효성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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