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유공자법이 셀프 특혜? 권성동이 잘 모르는 사실
[이창훈 기자]
"말이 좋아 유공자 예우지, 사실상 운동권 신분세습법."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써놓은 말이다. 권 원내대표의 손가락은 민주유공자법을 가리켰다. 이 법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1대 하반기 국회에서 제정하겠다고 밝힌 법안이다. 지난 20일엔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한 야3당 175명의 의원이 민주유공자법 제정에 동의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기자회견도 열렸다.
▲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마친 뒤 마스크를 쓰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이를 두고 그간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추진하던 이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먼저 '이제라도 민주유공자법을 읽어 봤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민주유공자법을 추진하고 있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는 2020년 법안발의 이후 법 제정이 지지부진하자 지난해 6월부터는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다. 그해 10월엔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여왔다. 뿐만 아니다.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매주 한 차례, 지금까지 총 30여 회의 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동안 몇 번 안 됐지만 국민의힘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검토 후 답변 드리겠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나 권 원내대표의 발언이 있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답변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니 '이제라도 당 대표 직무대행이라는 자가 법안을 살펴봤다니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온 것.
한편으로는 권 원내대표가 법안을 보긴 했지만, 민주유공자법의 필요성은 전혀 검토하지 않은 채 법 제정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을 비난하기 위해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 국회 앞에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농성장이 설치되어 있고, 매일 일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
ⓒ 추모연대 |
하나하나 따져보자. 먼저, 우리나라에서 '보훈이 무엇인가'라는 기초 상식을 정하고 있는 국가보훈기본법을 살펴본다. 이 법 '제3장 예우 및 지원'에는 "국가보훈대상자는 국가보훈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예우 및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돼 있다.
또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3장 교육지원'에는 "학생 정원의 3퍼센트의 범위 내에서 취학시킬 수 있으며, 수업료 등을 면제할 수 있다"고 적어놨다. 같은 법 '제4장 취업지원'에는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 등의 생활안정 및 자아실현을 위하여 취업지원을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밖에도 의료(5장), 주택과 요양(7장), 대출(6장)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해놨다. 그러니 민주유공자법이 민주유공자를 특출하게 대하는 법이 아니라, '현재 시행되고 있는 국가유공자법에 기초해 작성됐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동안 보훈법은 '민주 영역'으로 4.19와 5.18유공자만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고 있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민주유공자(현재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는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국가보훈기본법과 국가유공자 등 예우에 관한 법률에서 명시하고 있는 조항들을 민주유공자법에서만 빼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25년간 받아온 차별이 법 제정 이후에도 계속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주장하는 '자녀 교육 특혜' 주장도 문제가 있다. 현재 보훈 관련법과 민주유공자법 상 교육 지원은 민주화운동 부상자와 사망자·행방불명자의 배우자 그리고 이들의 자녀 등이다. 이중 자녀 등의 경우엔 30세 이전에게만 교육 지원이 가능하다.
그런데 민주유공자들은 196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권위주의정권에 대항했던 분들이 절대 다수다. 적게는 30년에서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들이 자녀를 낳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30세를 넘긴 나이가 됐다. 특히 사망자의 경우 대다수가 미혼 시절에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희생당하는 바람에 결혼을 하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이 그렇다. 권 원내대표의 말처럼 특혜를 받으려고 해도 대상자가 없고, 신분을 세습하려 하도 대상자가 없다.
'민주화운동 보상법(2000년 제정)'에 따른 보상이 인용된 사망자의 수는 136명이고 부상자는 693명으로, 총 829명이다. 2020년 우원식 의원의 민주유공자법 제정안에 대한 국회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이 법 제정시 교육지원 대상자의 수는 190명 정도다. 이는 부상자와 그 배우자 그리고 자녀를 모두 합한 수치인데, 범위를 '자녀'로 좁히면 교육지원 대상자는 현격하게 줄어든다. 민주화운동 사망자 136명 중 30세가 안 된 자녀의 수는 1명이다.
2022년 보훈처 예산은 5조8530억 원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비용추계서에 의하면 민주유공자법 제정시 집행 예산은 연평균 12억 원이다. 보훈처 전체 예산의 0.02%밖에 안 되는 금액이다. 이러한 금액을 두고 특혜니 신분세습이니 운운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권성동 원내대표는 사법고시를 통과한 검사 출신이다. 게다가 특수통으로 정권과 관계된 인사들을 감시하고 수사하는, 가장 어려운 자리에서 법을 다룬 사람이다. 이렇게 법에 정통한 인사가 민주유공자법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 봤다면 특혜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엉터리 해법을 내놓은 데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필자는 민주유공자법이 제정되면 국민의힘 스스로가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세력'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그리고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을 거쳐 지금의 국민의힘이 된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 정당이 집권했을 시기, 정치 판결을 내리고, 조작 수사를 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데 앞장섰던 인사 중엔 정당에 들어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거나 장관 등 고관대작이 된 이들이 있다.
이런 역사적 맥락까지 살펴보면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민주유공자법이 제정되면 자신들의 선배·동료 그리고 뿌리를 둔 정당이 국가유공자를 탄압한 세력이 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민주유공자법을 두고 '셀프 특혜'니 '신분 세습'이니 하는 얼토당토않는 프레임으로 반대 입장을 내놓는 것이라고 본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 광주시민, 오월정신은 국민통합의 주춧돌"이라는 말을 기억하시는가. 지난 5월 18일 5.18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이다. 오월정신이 무엇인가. 바로 민주화운동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민주유공자들의 정신이 바로 국민통합의 주춧돌'인 것이다. 이제라도 권 원내대표가 자당이 배출한 대통령의 발언을 마음속에 새겨 지난 발언을 사과하고 민주유공자법 제정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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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창훈씨는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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