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 질문에 "근자감 가져요"..모교 찾은 허준이 조언

이병준 2022. 7. 2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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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지난 13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 고등과학원에서 2022 필즈상 수상 기념 강연을 하고 있다. 뉴스1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이 길이 맞을까 하는 불안감에 어떻게 대처했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허준이(39)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수학과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좌교수가 내놓은 답이었다. 27일 오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상산수리과학관에서 열린 허 교수의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 수상 기념 특별강연에서다.

허 교수는 “근거가 있는 자신감은 언제든지 부서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시험을 잘 보다가 어느 순간 못 볼 수도 있고, 수학 올림피아드에 가 항상 금메달을 따다가 대학이나 대학원 갔는데 논문 쓰기가 너무 힘들 수 있다. 불운한 일이 겹쳐 자신감의 근거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반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스스로에게 유연성을 부여한다”며 “아무리 운이 좋은 사람도 반드시 맞닥뜨려야 하는 힘든 과정에 놓였을 때도,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목표를 유연하게 변경하게 도와주기도 한다. 기존에 있던 목표를 향해서 더 나아갈 수 있게 해주기도 하면서 인생을 끝까지 잘 살아낼 수 있게 하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150여명 몰려…강연 신청도 치열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지난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뒤 메달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 교수는 강연이 끝난 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제 주변에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친구들을 봤을 때, 의외의 공통점이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인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라며 “자신감의 종류도 근거 있는 자신감과 없는 자신감으로 나눌 수 있는데, 결국 끝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친구들을 보면 후자인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저 스스로도 (근거 없는 자신감을) 잘하고 있다고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없다”며 “(학생 때) 이거, 저거 해봤는데 잘 안 되고, 이거(수학) 해봤는데 잘 될지 안 될지는 크게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하다 보니 더 하게 됐고, 그러다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허 교수는 대수기하학을 통해 조합론 문제를 푸는 방법에 대해 주로 강연했다. 조합 대수기하학은 허 교수의 주 연구분야다. 그는 조합 대수기하학 기반 연구를 통해 수학자들이 제시했던 여러 난제를 해결해 수학계에서 화제가 돼 왔다. 1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강연에는 각계 교수들과 학생 등 150여명이 참여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신청자가 더 몰렸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등으로 참석자가 제한돼 사전 신청자에 한해서만 참석이 가능했다”고 했다. 허 교수는 “수학자라는 직업이 보통은 인기가 있는 직업이 아니다”라며 “새로운 경험”이라며 미소 지었다.


수상 후 두 번째 국내 강연…모교 택해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 겸 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지난 13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고등과학원에서 필즈상 수상을 기념해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를 졸업한 허 교수는 수리과학부에서 석사 학위를 땄다. 필즈상 수상 후 허 교수가 고등과학원에 이은 두 번째 강연 장소로 서울대를 택한 이유다. 허 교수는 “과거에 어렸던 저 자신을 다시 만난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든다”며 “항상 저쪽 어딘가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반대편에 서서 이야기를 하려니 낯설었다”고 했다.

그는 서울대 학생 시절에 대해 “제 39살 인생 중에 가장 격렬하게 살았다고 생각되는 때”라며 “좋은 일도 많이 겪었고, 좋지 않은 시간도 있었지만 항상 꽉 차 있고, 뒤돌아봤을 때 삶에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서울대 학생들에게 “이 시간을 최대한 즐기면, 추후에 유용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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