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 기자들, 침묵한 대통령, 방어 나선 참모들
[유창재 기자]
▲ 2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최영범 홍보수석이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윤석열 대통령간 문자 대화가 언론 보도를 통해 노출된 것과 관련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7.27 |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은 침묵을 택했고 참모들이 대신 나섰다. 본인이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주고받았던 문자 메시지, "내부총질 하던 당대표" 파장에 대해서였다.
최영범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27일 오전 기자들을 만나 "사적인 대화 내용이 어떤 경위로든지 노출돼 국민이나 여러 언론에 일부 오해를 일으킨 점에 대해서는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다. 유감스럽다"라고 밝혔다. 이번 문자파동으로 불거진 당무개입 의혹, 수직적 당정관계 구축 논란 등에 대한 설명 혹은 사과는 없었다. 다만 대통령의 "사적인 대화"가 "오해"를 불러 "유감"이라는 게 전부였다.
또 다른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오해하지 말라'는 태도였다. 그는 '이준석 대표와 접촉을 해 봤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준석 대표는 당대표를 지내고, 정치를 하신 분인데"라며 "충분히 미뤄 짐작하건대, (대통령의 문자를) 특별히 오해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오해" 발언은 오히려 전날(26일) 문자 파동 당시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던 이준석 대표의 반응만 불렀다. 그는 27일 <연합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전혀 오해의 소지가 없이 명확하게 이해했다. (제가) 못 알아 들었다고 대통령실이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고 응수했다. 윤 대통령이 본인에 대해 "내부총질 하던 대표"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음을 명확히 알게 됐다고 말한 셈이다(관련 기사 : 이준석, '내부총질' 문자 파동에 "그 섬에선 양두구육한다" http://omn.kr/200ee ).
사실 지금의 문자파동을 빠르게 해소하는 방법은 당사자, 윤 대통령의 '설명'이다.
공교롭게도 문자파동 다음날인 27일 아침,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은 없었다. 앞서 대통령 주재 4차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이날 오전 경기도 성남에서 예정돼 있었기에, 통상 대통령의 외부 일정이 오전에 잡혔을 때 출근길 문답이 생략됐던 전례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일부 기자들은 행사를 마치고 용산 대통령실로 복귀하는 윤 대통령을 기다렸다. 코로나19 재유행을 이유로 대통령실에서 출근길 문답 잠정중단을 알렸을 때도, 하루 만에 기자들의 기다림에 응답했던 윤 대통령의 스타일을 믿은 셈이다.
▲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을 지켜보던 중 휴대폰을 펼쳐 윤석열 대통령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고 있다. '대통령 윤석열'로 표시된 발신자는 "우리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권 직무대행은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
ⓒ 공동취재사진 |
하지만 기자들을 막은 것은 대통령실 참모들이었다.
최영범 홍보수석이 먼저 나섰다. 그는 "여러분이 갑자기 대통령 외부행사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이를테면 도어스테핑(즉석 기자회견) 형식을 빌려서, 이를테면 엠부시(ambush, 매복)라고 하죠. 그런 취재를 하시겠다고. 카메라까지 다 설치가 돼 있다 해서, 그건 온당치 않은 것 같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 "(소통에 대한) 대통령 의지는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실 거고, 그렇지만 우리 대통령이 국가의 원수이고 국군통수권자다"며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전에 저희와 조율하지 않고 이렇게 마치 매복해서 인터뷰를 하듯이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는 건 조금 양해를 해주셔야 할 거 같아서 조금 물러나 주십사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최 수석은 윤 대통령의 입장도 대신 설명했다. 다만, "권성동 원내대표가 입장을 밝힐 것"이란 전날 대통령실 입장에서 변한 건 없었다. 그는 "지금 (대통령과) 대화를 주고받은 권성동 대표가 이미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사후에 입장을 밝히고 설명하신 걸로 알고 있다"면서 "거기에 덧붙여서 대통령실이 공식적으로 추가 입장을 밝히거나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이나 여러 언론들이 일부 오해를 일으킨 점에 대해서는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다. 유감스럽다"고 했다.
또 "제가 아는 한 우리 대통령께서 당무는 당과 지도부가 알아서 잘 꾸려나갈 일이고, 대통령이 무슨 일일이 지침을 주시거나 한 일이 없다"며 "이 대표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대통령 모시고 회의도 하고 했지만 부정적인 뜻으로 언급하신 바를 제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 수석은 "우연한 기회에 노출된 문자 메시지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거나 거기에 정치적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건 조금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문자를 촬영해서 이렇게 언론에 공개를 해서 정치적인 쟁점으로 만들고 이슈화하는 건 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 수석의 바통을 이어 받은 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였다. 이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입장을 직접 밝혀야 한다는 건 과도한 요구'라고 주장했다.
'출근길 문답 때 같은 질문이 나올 텐데 지금 대통령이 입장을 밝히는 게 어떤가'란 기자들의 제안에 이 고위 관계자는 "여러분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기대하고 희망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만, 대통령께서 이런저런, 직접 나서서 일일이 다 말씀을 하시면 아마 대단히 국정과제를 수행하고 국사를 보살피시는데 지장을 많이 받게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또 "이것이 그렇게 지금 엄청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대통령께서 정말 화급하게 내려와 가지고 기자 여러분께 당신의 입장을 직접 밝혀야 된다, 그것은 조금 지나친 요청, 요구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 도중에 복귀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로비 1층에 모여 있는 기자들을 한 번 쳐다보고는 엘리베이터로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 기자들이 "대통령님 어제 문자 관련해서 입장을..."이라고 외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이처럼 대통령실 참모들이 적극 '대통령 지키기'에 나선 것은 결국 '시간 끌기'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다음 주부터 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즉, 이번 주만 잘 넘기면 8월 2주차 때에나 대통령의 '발언'을 들을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이전과 함께 강조했던 '소통'은 사라졌다. 바로 전날(26일) 대통령실 기자들을 만난,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소통'을 그토록 강조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율배반적이다. 한 장관이 전날 기자들에게 말한 '소통'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는 공직자는 언론으로부터 불편한 질문 받아야 한다. 거기에 대해서 즉답하든, 답을 안 하는 것도 답이 아니겠느냐, 그런 식으로 서로 간에 소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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