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거래소 거친 4조원 홍콩·일본에 송금 ..'김프' 노렸나
지난 1년 6개월간 국내 은행을 거쳐 수상한 자금 4조원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에서 이체된 자금으로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코인 환치기(불법 외환거래)’ 의혹이 커지고 있다. 27일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해외송금 관련 은행 검사 진행 상황’ 잠정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현재까지 우리‧신한은행에서 확인한 이상 외화송금 거래 규모가 4조1000억원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이들 은행이 자체 점검 후 보고 한 규모(2조1000억원)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해외 송금과 관련된 업체 수도 처음 은행 보고로 알려진 8곳에서 22개 업체(중복 제외)로 증가했다.
우리은행에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1개월간 5개 지점에서 931회에 걸쳐 해외로 송금한 1조6000억원이 이상 거래로 파악됐다. 신한은행 11개 지점에서 1238회에 걸쳐 송금한 2조5000억원도 마찬가지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들 거래에 대해서는 증빙서류나 송금자금 원천 확인 등을 통한 실체 파악에 주력하고 있고 파악된 내용은 검찰과 관세청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이상 거래는 지난해 설립한 신설업체나 소규모 영세업체가 5000만 달러(약 656억원) 이상 송금하고 자본금의 100배 이상을 송금한 경우다. 신설업체가 암호화폐거래소 연계 계좌로 자주 입금을 받았거나 특정 은행의 영업점에서 전체 송금의 50% 이상을 거래한 경우도 점검 대상으로 본다.
현재까지 우리‧신한은행을 통해 송금된 4조1000억원은 대부분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에서 이체된 자금이다. 우선 거래소에서 귀금속이나 화장품, 반도체부품 등을 취급하는 무역업체의 대표나 임직원의 개인 계좌로 자금이 이체됐다. 이후 개인 계좌에서 해당 무역업체 법인 계좌로 2차 이체가 진행되고 이렇게 모인 자금은 해외 업체에 대금 지급 명목으로 송금됐다. 해외 업체는 암호화폐거래소가 아닌 일반 업종으로 등록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해외 업체는 국내에서 송금한 무역업체와 대표가 같거나 사촌이 대표를 맡고 있었다. 형식상 무역거래로 이뤄진 해외송금 자금으로 보이지만, 자금 대부분이 국내 암호화페거래소를 거쳐 나왔다는 점이 이상 거래 의심을 받는 이유다.
한 사람이 무역업체와 해외업체 임원을 겸임한 경우도 있었다. 금융업계에선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코인 환치기를 의심한다. 코인 등 암호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국내에서 높다는 점을 노리고 차익을 얻기 위해 국내 거래소로 흘러들어온 자금이 송금됐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국내 암호화폐거래소로 자금을 이체하고 매각한 후 국내 무역업체를 통해 다시 해외로 빼돌렸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에선 송금 업무 처리 시 이상 징후를 서류만으로 포착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예컨대 해외업체에서 5만원짜리 로션 1만개를 수입하고 대금으로 50억원을 송금한다. 은행 영업점에선 해외업체가 발행한 판매 송장 등을 확인하는데 이 송장의 위조 여부까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 관계자는 “실제 창고에 로션이 쌓여있는지 현장에 나가서 확인하지 않는 이상 마음먹고 서류를 위조해서 송금하려고 들면 이상 징후를 알아채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금감원은 44개 업체가 송금한 53억7000만 달러(약 7조534억원)를 주요 점검 대상으로 보고 있다. 가장 송금액이 큰 국가는 홍콩으로, 25억 달러(약 3조2837억원)가 송금됐다. 이어 일본으로 빠져나간 4억 달러(5254억원), 미국 2억 달러(약 2627억원), 중국 1억2000만 달러(약 1576억원) 등도 점검 대상이다.
금감원은 지난 1일 모든 은행에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유사거래가 있었는지 자체점검을 하고 이달 말까지 결과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이와 함께 외화 송금 업무를 처리한 은행에 대해서는 외국환거래법이나 특정금융정보법 위반 여부를 점검하고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금감원이 수많은 외화 송금 거래를 모두 들여다볼 수는 없는 만큼 송금 업무 처리 시 관련법이 제대로 지켜졌는지를 감독한다”며 “위험 거래를 포착할 수 있는 좀 더 정교한 제도 마련을 위해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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