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업그레이드" vs "순혈주의 독식"..'경란'에 타깃된 경찰대

이수민, 문희철, 나운채 2022. 7. 2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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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충남 아산시 황산리 경찰대학 정문 모습. [연합뉴스]

“경대(경찰대) 출신 아니면 서러워서 살겠나.”
2010년 개봉한 범죄 스릴러 영화 ‘부당거래’에서 최철기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폭력2팀 반장(경감·황정민 분)의 대사다. 순경 출신인 그는 수사 실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지만, 경정 승진 심사에서 경찰대를 졸업한 박동진 반장(김원범 분)에게 밀린다.

물론 영화에선 경찰대 출신과 순경 출신 간 갈등을 지나치게 극화했지만, 계급별 직업 시작 경로를 놓고 보면 경찰대 출신이 승진에 유리한 것도 사실이다. 6월 기준 경찰서장급(총경) 이상 간부(753명) 중 62.2%(468명)가 경찰대를 졸업했다. 비(非)경찰대 출신 총경 이상이 57.3%를 차지했던 2012년과 달라진 모습이다.

현직 경찰 고위직을 단순 비율로 계산하면, 경찰대 출신 100명 중 14명이 총경 이상이다. 하지만 순경이나 간부후보생, 특채 등 비(非)경찰대 출신은 1000명 중 2명꼴로 총경 이상 계급장을 달고 있다.

이런 경찰대 편중 인사는 통상 ‘고위 간부’로 칭하는 경무관 이상으로 올라가면 더 심해진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6일 “특정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 도저히 그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10여년간 경찰대 출신 고위 간부 비율. 그래픽 김영옥 기자


경찰대 14%가 총경…비(非)경대는 0.2%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대는 엘리트 경찰 간부 양성을 위해 설치한 특수대학이다. 1970년대 후반 고졸 이하 학력자가 전체 경찰간부 후보생 선발시험 응시자의 30% 이상을 차지하면서 경찰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1981년 개교 당시 경찰대 경쟁률은 220.5대 1이었다. 4년간 학비가 전혀 들지 않는 데다, 군 복무 의무가 경찰 근무로 대체되기 때문이었다. 또 졸업 후 초급 간부인 경위로 임관한다는 장점 도 작용했다.

경찰대는 유능한 인재를 키워 경찰 조직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경찰에 대한 다소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찰대 출신 현직 경찰 간부는 “과거 관내 유흥업소에서 편의를 받거나 교통법규 위반을 단속하면서 돈을 받던 관행을 바꾸는 등 경찰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경찰대 출신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내무부 치안본부였던 경찰이 외청으로 독립해 성장하는데 경찰대 출신이 기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경찰대 출신 간부는 “조직의 성패는 핵심 인재 공급 여부에 달려있는데, 경찰대는 매년 수능 상위 1% 수준의 인재를 100명씩 경찰 조직에 공급한다”며 “이들이 경찰 법령·제도 등을 정비하는 과정에 기여하면서 경찰이 중앙 부처의 기틀을 갖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입직 경로별 전체 경찰 인력 중 고위 간부 비중. 그래픽 김영옥 기자


“경찰 이미지 쇄신” vs “주요 보직 독식”


27일 오후 충남 아산시 황산리 경찰대학 본관 모습. 지난 23일 열린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총경) 회의를 계기로 경찰대 개혁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경찰대 출신 순혈주의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경찰대 출신이 고위직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다. 행정안전부 고위 관계자는 “주요 근무 선호지역 경찰서 과장급 이상이나 경찰청 주요 부서(경비국 등) 과장급 자리는 대부분 경찰대 출신이 꿰차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대 출신이 선·후배 인맥을 동원해 승진에 유리한 핵심부서에서 근무하면서, 계급이 올라갈수록 경찰대 출신이 고위직에 포진하게 됐다는 게 행정안전부의 설명이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이 2020년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당시 경찰청 본청 계장급(경정) 이상 간부 가운데 61.1%가 경찰대 출신이었다. 서울경찰청(42.5%)·부산경찰청(36.7%) 역시 계장급 이상에서 경찰대 출신 비율이 높았다. 이에 대해 정웅석 서경대 법학과 교수는 “경찰청 주류가 경찰대 출신인데, 이들이 직접 하위직 인사를 맡으니 차기 승진 가능성이 높은 보직에 경찰대 출신을 배치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며 “이번에 정부가 경찰국으로 인사권을 이관하려고 한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고 말했다.

27일 오후 충남 아산시 황산리 경찰대학 본관에 있는 상징 뒤로 태극기가 보인다. [연합뉴스]

2005년 국정감사나 2018년 권력기관 개혁 방안 등에서도 종종 비슷한 이유로 경찰대 폐지론이 등장했다. 이에 경찰은 2018년 경찰대학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신입생 선발 인원을 축소(100명→50명)하고 편입생을 선발하겠다고 했다.

이번에 경찰국을 신설을 반대하며 '총경 모임'을 제안한 류삼영 전 울산 중부경찰서장도 경찰대 출신이다. 당시 이 모임에 참석한 56명의 총경급 인사 중 40여명이 경찰대 출신으로 알려진다. 경감·경위급 현장팀장회의를 제안한 김성종 광진경찰서 경감도 경찰대 14기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어느 조직이든 전체 인원의 3% 미만인 특정 집단이 고위직의 60% 이상을 독식한다면 해당 조직은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며 “경찰대 위상과 성격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문희철·이수민·나운채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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