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참여" 호소한 정부, 당근·채찍 없는 자율방역 가능할까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수가 석 달 만에 다시 1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정부가 재택근무를 활성화하고 유증상자에 대한 휴가를 적극적으로 권고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일상 방역 생활화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일률적·강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국민의 자율적인 방역 참여를 독려해 코로나19 재유행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취지다.
“국민 참여 거리두기 이뤄져야, 일상 지속”
김성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2총괄조정관(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이날 중대본 회의에서 이런 방안을 발표하며 "재유행의 파고를 국민 참여에 기반한 일상 방역의 생활화를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며 "자율과 연대에 기반한 일상 방역이 이뤄지려면 국민 여러분의 참여와 협조가 절대적"이라고 강조했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전파력이 높은 BA.5 변이가 유행하고 있지만 질병 특성, 대응 역량 등 방역 여건이 달라졌다”며 “의무나 과태료 등 규제 있는 거리두기가 아닌 국민이 스스로 참여하는 거리두기가 이루어질 때 일상방역을 이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브리핑에 참석한 인사혁신처 등 6개 부처는 구체적인 일상방역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추진 방안에는 부처별 담당 분야에 대한 방역 관리를 전제로, 주로 ‘권고’, ‘자제’ 등 국민 자율에 맡기는 표현이 등장했다. 인사혁신처는 공공분야에서의 비대면 회의·행사와 재택근무, 휴가를 권고했다. 휴가에서 복귀하는 공무원들은 선제적으로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라는 권고를 내놨다. 고용노동부는 각 사업장에 근로자가 아플 경우 휴가를 쓸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하라고 적극적으로 권고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으면 유급 휴가를 쓰고, 가족이 코로나19에 걸리면 하루 5만원, 최대 열흘까지 지원하는 가족 돌봄 휴가 등을 쓸 수 있도록 장려한다. 교육부는 학원에 원격강의로 전환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고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연장·영화관·노래연습장·PC방·스포츠 경기장 등에서의 마스크 착용 안내 및 현장점검을 강화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마트·백화점 등에서 시음·시식 운영 자제를 권고했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일상방역 방안은 권고일 뿐 강제성이 없다. 유급휴가비·생활지원금 등 지원을 확 줄여놓은 상태라 유인책 역시 없다. 당근도 채찍도 없이 국민 참여만 호소해서는 방역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율 방역 기조를 유지하더라도 유급휴가비 등에 대해서는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역당국은 "한정된 예산 속에서 지원 축소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입장이다. 임숙영 중앙방역대책본부 상황총괄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의 예산은 한정돼있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방역체계를 위해서는 필요하고, 시급한 부분을 중심으로 자원을 집중할 필요성이 있다"며 "코로나 유행이 장기화돼있고 확진자 규모도 매우 크며, 얼마나 (증가)할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에서 제도 개편은 불가피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백 청장은 이달 시행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정부가 주도하는 규제 중심의 방역정책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거리두기에 많은 (사회적) 공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방대본은 지난 21~25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자율방역 공감 수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를 했는데, 자율방역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58.5%)이 정부주도로 방역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38.5%)보다 많았다고 한다.
“필요한 규제·의무는 국민 설득 과정 있어야”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국민에게 교통 법규를 잘 지키라고 얘기하기 전에 법규를 잘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방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인책을 주거나, 불이익 없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학원이 정부 권고 따라 원격 강의로 전환하면 대면 강의 대비 교육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는 건데, 원격 강의 플랫폼을 지원해 주는 등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률적인 거리두기는 피하더라도 규제나 의무가 꼭 필요한 곳에는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천병철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방역 수칙 준수는 2년 넘게 우리 국민이 잘 해오던 부분인데, 이를 정책이라고 내놓는 건 숟가락 얹기와 같다”면서 “정부는 모두 자율에 맡길 것이 아니라 고위험 지역이나 대상, 집단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규모 행사 제한 등 (방역에) 효과가 있는 조치는 정부가 분석해 근거를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몇 년째 예방접종 해라, 거리두기 지켜달라고 일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물놀이 행사 등 집단감염 가능성이 큰 행사에 규제를 해야 한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백 청장은 당장 그럴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다. 백 청장은 “당분간은 확진자 증가 양상이 유지될 것으로 예측한다”며 “(국민이) 일상방역 생활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면 증가 속도를 낮추고,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치명률 증가나 중환자 치료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위기 징후가 발생하면 추가적인 사회 대응 조치가 필요한지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천병철 교수는 "유행 상황에 따라서 그때그때 임의로 정책을 발표하기보다는 미리 유행 상황에 따른 필수 방역 조치 등을 예고해주면 따라가는 국민 입장에서도 혼란이 덜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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