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엔 천상의 화원길이 있다
[김영래 기자]
5년 만에 소백산에 올랐다. 건강도 좋지 않았고, 소백산에 얽힌 개인적인 트라우마도 있어 오며 가며 올려다보는 것에 만족했다. 겨울이 다가오던 어느 날 출근길에 알프스의 설산처럼 흰 눈 얹은 봉우리를 쳐다보며 정상을 상상했고, 다시 오를 날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침내 그날이 왔다.
내가 산을 오르는 이유
사람들은 누구나 안락하고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를 추구한다. 고통을 스스로 부르고 온 몸으로 받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어디 있으랴. 하지만 역경의 가시밭길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힘듦과 고통 뒤에 따라오는 보상 -가령 성공과 성취감, 트라우마 극복, 자신의 단련, 삶의 전환점 마련 등등의 이유로-이 있다면 그것 또한 갖고 싶은 것들이긴 하다.
오른 만큼 정확히 다시 내려와야 하는 산을 오르는 이유는 성취감을 맛보는 자기만족 아닐까. 어려운 일을 했다는 뿌듯함으로 삶 속에서 잃었거나 잊고 있던 뭔가를 새롭게 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 맞는 친구와 둘이 오르게 된 소백산은 많은 시간의 터울만큼이나 두려움과 기대감이 겹쳐서 다가왔다.
가장 짧고 가파른 새밭계곡으로 비로봉에 올라 연화봉 중계소를 거쳐 중령으로 내려오는 계획이었다. 소백산 철쭉제 지원을 비롯해 계절별로 서너 번은 올랐던 터라 산세를 잘 알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 새밭계곡에서 올라 비로봉으로 향하는 길 정상을 향해 걷는 길은 푸른 초원의 목장처럼 펼쳐진 평원은 어느 집 정원보다도 아름답다. |
ⓒ 김영래 |
▲ 소백산 비로봉을 오르는 데크 계단 비로봉을 오르는 계단은 마치 천국의 계단을 연상시킨다. 주변 풍광은 너무도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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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른 계단의 그 끝에는 푸른 제주목장 같은 고산 평야가 펼쳐진다. 중나리, 말나리, 비비추, 까치수영, 마타리, 물레 나무, 동자꽃, 물봉선, 범꼬리, 냉채, 꽃잎 진 후 더욱 짙어진 신록의 철쭉이 어우러진 초록 세상 가득한 천상화원.
하늘 아래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이는 소백 밖에 없고, 이를 본 이는 소백을 오른 이 밖에 없다.
친구와 천상의 정원을 걸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 이는 진정으로 본 게 아니다. 바람과 구름과 흙내음을 몸이 맡고 눈이 봐야 비로소 소백에 오른 것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는 다름 아닌 바람이다. 비로봉에서 제2연화봉까지 십여 키로에 이르는 동안 정원은 계속된다.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안개구름이 실려와 소백을 감췄다가 열었다를 반복하며 시크릿 가든을 연출했다. 잘 정비된 데크 전망대에 배낭을 내려놓고 창틀처럼 생긴 보호대에 턱을 괴고 앉았으니 내 집 창가 풍경이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손가락 콘서트도 열었다. 즐겨 듣던 소향의 바람의 노래를 비롯해 김광석과 백지영 등등 유명가수도 초청했다. 누구 하나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소백에 와주셨다.
▲ 소백산 산수국 자잘한 원형 모양의 꽃 가장자리로 나비같기도 하고, 하얀 잇몸 드러낸 맑은 웃음같은 산수국은 피곤에 지친 등산객들에게 상쾌한 기분을 선물한다. |
ⓒ 김영래 |
이번 산행에서 제일 반가웠던 건 산수국과의 만남이었다. 지난 산행 때는 왜 몰랐을까. 길가 수풀 우거진 그늘 밑. 가운데 동그랗게 바닷가 고운 모래 같은 자잘한 연보라색 꽃이 있고, 가장자리에 하얀 나비 같은 꽃 예닐곱 개가 피어있는 모양. 나비 같기도 하고, 흰 잇몸 드러내고 활짝 웃는 웃음 같다. 길을 걷는 내내 잊을만하면 문득문득 나타나는 산수국의 맑고 새하얀 웃음 꽃잎이 얼마나 정답던지 보고 또 봐도 반갑고 즐거웠다.
▲ 소백산 산수국 수풀 우거진 그늘밑에서 등산객들을 활짝핀 웃음으로 맞이하고 있는 산수국의 아름다운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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