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도 찾은 사우디 왕세자..에너지난이 '국제 왕따' 굴레 벗겼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 이후 처음으로 유럽 순방에 나섰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26일(현지시간) 그리스를 찾아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와 회담한 데 이어 곧 프랑스를 방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도 만난다고 사우디 국영 SPA 통신이 전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날 아테네에서 열린 회담에서 “그리스에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 나와 사우디에 큰 의미가 있는 환대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도 “왕세자의 방문을 환영한다”며 “특히 경제 협력에서의 양국 관계 증진을 논의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양국은 에너지‧투자‧기술‧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약속하는 협정에 서명했다고 사우디 매체 아랍뉴스가 전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미초타키스 총리와 회담에서 “그리스에 다시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다. 우리는 양국과 이 지역 전체에 게임 체인저가 될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만나는 그리스와 프랑스 정상은 모두 카슈끄지 암살 사건 이후에도 사우디를 방문한 적이 있는 비교적 우호적인 인사들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가가 치솟으며 사우디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우디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실질적 리더이자 원유 증산 여력이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인 데다, 유가 상승에 따른 자본 확보도 활발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지난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이후 2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왕세자의 유럽 순방이 이뤄진 점이 주목된다. 암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무함마드 왕세자를 국제적 ‘왕따’로 만들겠다며 앞장 섰던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면서 서방의 외교적 부담이 줄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크리스티안 울리히센 라이스대 베이커연구소 연구원은 “카슈끄지 사건으로 발생한 고립을 뛰어넘는 매우 상징적인 움직임”이라며 “그간 서방 국가들의 구체적인 정책 변화는 없었지만, 왕세자가 유럽이나 북미 국가를 방문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지난 6월엔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나는 등 최근 활발한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만 사우디가 미국과 유럽 등의 요청대로 대규모 석유 증산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앞서 사우디는 “이미 최대 생산 능력치까지의 증산을 계획하고 있고, 이를 넘어서는 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사우디 국왕의 자문기구인 슈라위원회의 후다 알 할리시 부위원장은 AFP 통신에 “프랑스에서도 에너지 문제가 다시 의제가 될 것 같다”면서도 “우리는 정해진 길을 가고 있으며, 석유 생산에 대한 입장이 바뀌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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