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 외교'는 그만.. 윤석열 정부 외교에 필요한 것
[엄경호]
▲ 일본 참의원 선거 투표일인 10일 오후 야마구치현 야마구치시에 있는 에지마 기요시 자민당 후보의 진영에서 관계자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진이 담긴 자민당 홍보물을 벽에 붙이고 있다.야마구치현은 8일 유세 중 총격을 당해 목숨을 잃은 아베 전 총리의 선거구(지역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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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시작에 앞서 먼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명복을 빈다. 생전의 아베 전 총리는 우리에겐 하나의 '상처'였다. 그의 선조 세대들로 인한 일제강점기 36년의 상처가 아물어 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소위 '대일청구권'을 식민 지배의 연장으로 인식해 왔다. 이를 받아들인 국내 정치세력은 저들의 제국주의적 인식을 비판 없이 수용하면서 한국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군림해 왔다.
이런 과정에서 그들로 인한 상처는 더욱 짙고, 넓고, 깊게 파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아베 스스로도 한국에 대한 제재를 통해 경제적 종속도 시도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모든 잘못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뻔뻔함을 보였고 한국은 다시 상처를 받았다. 결국 한국은 대내외적 가해 세력들에 의해 끊임없이 상처받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윤석열 정부는 그들로 인한 상처를 섣불리 봉합하면서 '눈 가리고 아웅' 하듯이 일본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하고 있다.
아베 레짐(Abe regime), '일본을 되돌린다(日本を取り戻す)'는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피'로 대표되는 아베의 대내외적 정치 행위는 주변국뿐만 아니라 아베 자신의 조국 일본 국민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국가 대외정책에 있어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는 행위 중 어떤 경우는 국내에서 환영받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의 특정 정권 또는 일부 정치인들은 이러한 행위를 통해 정치적으로 상호의존하기도 했다. 아베의 대외적 국가 행위가 국내적 요인을 인식한 정치 행위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아베의 이러한 대외 정치, 특히 대한반도 정치 행위 덕분에 그의 입지가 더욱 견고해진 것은 사실이다.
'아베 레짐'에 대한 일본 국민의 신뢰
일본 국민 모두가 아베의 정치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국내 정치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일본 국민들의 특성을 반영하더라도 그의 극우 행위(이 용어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일부 일본인들의 저항에 부딪치기도 했다.
아베의 정치는 이들을 제외한 많은 일본 국민들에게 왜 지지를 받았을까? 헌법 제9조의 해석권 장악에 대한 정치적 지지, 아베노믹스로 대변되는 대규모 부양정책 등과 같은 민족주의적 정치 행위들에 대해 일본 유권자들은 자민당 일당지배 승인이라는 선거 결과로 보답해 왔다.
이에 힘입은 아베의 보수적 정책들은 그의 상속세 탈세 의혹, 벚꽃 스캔들,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 아베노마스크라는 정치적 타격을 간단하게 제압해 왔다. 사실 이런 사건 하나하나는 한국 또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라면 단번에 정치적 생명을 종식시킬 수 있는 사건들이다. 그럼에도 아베는 이러한 의혹들을 넘어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을 유지해 왔다. 이는 일본 국민들의 지지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베의 정치 행위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아베의 정치 행위를 '일본 국익 추구를 위한 최선의 행위'로 여겼다는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아베는 일본이 정상적인 보통 국가가 아니라고 인식했다. 그가 생각하는 보통 국가의 개념은 자국의 군사력과 외교력을 자국의 의지대로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국가를 의미한다. 그가 내세웠던 '일본을 되돌린다'라는 정치 슬로건은 그 옛날 군국주의적 독재국가로 되돌린다는 것으로 의심 받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아베의 생각과 대내외적 정치 행위에 대한 반대 세력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비정상 국가를 정상적인 보통 국가로 되돌리고자 한다는 그의 정치적 노력과 대내외 정치 행위에 대한 자국 내 지지와 주변국의 반발은 아베 이후에도 그 증감 패턴에 있어 동일한 궤적을 그릴 것이란 점이 충분히 예상된다.
▲ 지난 10일 일본 도쿄의 한 투표소 밖에서 유권자가 참의원선거 후보 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
ⓒ EPA=연합뉴스 |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본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는 결코 실패한 정책이 아니다. 아베노믹스로 대변되는 대규모 부양정책은 이름을 바꿔가면서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도 아베노믹스는 여전히 순항하고 있다.
물론 아베의 정치, 아베 레짐이 일본 국민 모두의 지지를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를 반대한 세력이 일본의 국익 추구를 반대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들의 반대 또한 일본의 국익을 대변하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베의 보수 우경화 정책에 반대했다고 해서 이들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착각할 이유가 없다.
아베 정권 전후 일본의 대외정책은 언제나 국익 우선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의 대외정책 기조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각자 자국의 이익에 따라 국가 행위를 수행해 왔고 이러한 행위는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아베의 '아름다운 나라로(美しい国へ)' '일본을 되돌리자(日本を取り戻す)'와 같은 민족주의적 또는 보수 우경화적 정치 슬로건은 단순히 자국의 이익을 위한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국내외적 반대에 부딪친다고 해서 국익으로 무장한 보수 우경화 정치 이념이 퇴색될 리가 없다.
한국이 한반도 고립 외교에서 탈피해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군사·외교 영역을 넓혀 나가고자 한다면 주변국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반발에 부딪칠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일본의 대외정책은 아베 이전과 이후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아베의 사망이 이를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포스트 아베, 아베리즘
아베 레짐은 분명 아베로 대변되는 일본의 보수 우경화를 상징한다. 아베의 사망은 아베 레짐을 강화하는 아베리즘을 심화시킬 것이다. 아베 피격 사건 직후 기시다 총리는 우선 당 차원에서 회의를 거친 다음 각료회의를 개최했다. 이런 모습은 당·국가체제(party-state system)를 유지하면서 일당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중국, 북한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점차 일당 체제로 고착돼 보수 우경화를 가속해 갈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과 그 속에서 최대 파벌을 형성하고 있는 아베 파벌의 건재가 이를 증명한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 자민당이 승리한 요인 중 아베의 사망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한 견해들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참의원 선거 전 일본 국민의 정치 성향이 이미 우경화로 경도되는 과정에서 아베의 사망이 겹쳤을 뿐이라고 본다.
아베 이후의 일본, 아베 이후의 한일관계, 아베 이후의 북일관계, 소위 포스트 아베의 일본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경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일본은 아베 이전에도 아베 당대에도 그래 왔듯이 그들의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일본 국민들은 아베 이후 아베리즘에 입각한 자국의 보수화를 더욱 부추길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라고 자민당을 지지하는 것이고, 일당 지배를 묵인하면서 우경화에 열광하는 것이다.
국익 게임은 제로섬 게임
일본의 보수 우경화는 아베가 나타나면서 갑자기 대두된 게 아니다. 지속적인 내적 통제와 이것이 일상화된 파놉티콘(Panopticon) 성향의 일본 국민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성향이 아베리즘이라는 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한국은 일본의 총리가 취임할 때마다 대한반도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적어도 자민당이 집권하는 시기에는 대한반도 정책 변화가 요원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일본 자민당은 중국 공산당, 북한 조선로동당과 같이 일당지배체제를 견고히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일본에 우호적인 한국 정권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 노력을 쏟아부으면 일본이 감동해 우경화를 늦추거나 중단할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국제정치는 제로섬 게임으로 움직인다.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정상국가이고, 지극히 평범한 국가다. 지금까지 일본은 보수 우경화 정책으로 얻은 이익이 적지 않았다.
향후 일본은 변함없이 아베리즘으로 비치는 현실 노선에 탄력을 가할 것이다. 자국 이익을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적극적 군사 행동을 위한 법을 제정하거나, 법 개정을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은 지속적으로 미국을 상대로 동북아에서의 지분 비율을 높여 나갈 것이다. 오늘날 미중 전략대결 과정에서 보여주는 일본과 미국의 행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급변을 예고하고 있는 동북아 정세가 이를 말해준다.
일본의 우경화는 아베가 염원했듯이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 외교가 실현될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우경화는 경로를 이탈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강도는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현재 동북아 정세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일본의 동북아시아 대외정책 시계 눈금에서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예고하는 시침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과거 일본 민주당 정권은 노골적으로 '대미종속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창했지만, 자민당 정권은 서서히 이를 실현하고 있다. 결국 일본은 자력으로 동북아에서 중국과 러시아에 맞서려 할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한국을 향해 자신에게 줄 서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 한 테이블에 앉은 한미일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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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부 당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각의 결정은 2001년 미국의 선제적 공격 개념과 궤를 함께한다. 미국의 선제적 방어 공격에 참전할 수 있다는 해석으로 의심받는 대목이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의 자위대가 미일동맹을 근거로 대한민국보다 상위 조건에서 북한에 진입할 수 있는 조건으로 이어진다. 또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일본 내 미국의 전략자산을 미국과 동등한 자격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게 된다. 이는 대북 선제공격을 위한 사전 조치이기도 하다.
하토야마와 아베는 각각 민주당과 자민당을 대표하는 전직 총리였다. 이들은 일본의 대외정책 방향에서 극명하게 엇갈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퇴임 후 한국에 대해 사과하는 등 한국에서 아베 정책을 비판하는 시민사회와 다양한 교류를 이어왔다. 하지만 하토야마가 '일본병'으로 언급했던 '대미종속이란 숙환'과 아베의 '아름다운 나라로'는 그 지향하는 목표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친중국가' '반미국가'란 호칭을 사용하면서 우리를 견제해도 우리는 우리의 국익을 쫒아 독립적으로 국가 행위를 하면 된다. 최근 글로벌 안보환경의 급변상황에서 한일관계는 기존의 65년 체제에서 탈피해야 할 구조적 변환기를 맞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기존의 대일 '구걸' 외교자세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국격과 국력에 어울리는 대등한 협력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우리 자신이 인식할 때다. 동북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이미 갖춰져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한미동맹에 직·간접적으로 간섭을 해왔다. 우리도 한일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미일동맹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있다. 미국 중심의 한국과 일본의 비(非)등거리 동맹관계에서 일본의 국가이익은 우리의 국가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향후 일본은 아베레짐(Abe regime)을 계승하는 아베리즘(Aberism)으로 점차 고착돼 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일본의 정치 지형에 대해 과민하게 예의 주시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국제관계는 냉혹하다는 것과 일본의 국익과 우리의 국익은 서로 반비례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적어도 아직까지는 미국의 국익에 있어 일본의 국익이 한국의 국익보다 우선한다는 것도 엄중히 인식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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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코리아연구원 엄경호 연구위원은 북한 수산업과 연안국간 정치경제 관계를 연구하는 북한학 박사로 현재 일본 <환일본해경제연구소> 연구자들과 남북한과 일본의 3국간 협력에 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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