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경찰 600명이면 끝난다"…후진타오 목 노린 中 '경란' 전말

신경진 2022. 7. 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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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미수에 그친 중국 정변의 실상을 폭로한 영문 신간 『중국 결투』 표지(왼쪽)과 저자 샹양(오른쪽). [사진=VOA]

“특수 경찰 600명이면 30분 만에 중난하이(中南海, 중국 최고지도부 거주지)를 차지하고 세상은 우리 차지요. 만일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보시라이(薄熙來) 신세가 될 것이오.”

지난 2012년 3월 19일 중국 베이징의 공안(경찰)과 사법을 총괄하는 중공 중앙 정법위 건물에서 허광예(何光曄, 혁명 원로 허창궁(何長工)의 아들)가 저우융캉(周永康) 정법위 서기에게 이처럼 중난하이 진격을 요구했다. 중국군의 10대 원수(元帥) 천이(陳毅)의 장남 천하오쑤(陳昊蘇)도 거들었다. 충칭시 서기이자 주목 받는 정치주자였던 보시라이가 부패 등 혐의로 낙마한 직후의 일이다.

10년 전 미수에 그친 중국판 ‘경찰의 난(警亂)’의 실체가 어느 미국 거주 중국인의 영문 회고록을 통해 드러났다. 최근 필라델피아의 도란스 출판사가 발간한 신간 『중국 결투(China Duel)』다. 저자 샹양(向陽)은 당시 부친과 함께 보시라이 측근이었으며, 긴밀했던 군부 측과 연락을 담당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장쩌민(江澤民)의 개입으로 큰 불상사 없이 마무리된 3·19 베이징 무장 충돌을 현장에 출동한 군과 경찰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주장했다. 책에는 3·19 당시 베이징 주재 한국 특파원들 사이에 소문으로 돌았던 ‘정변설’의 실상이 담겼다.


“총알에는 눈이 없다”


중난하이 진격을 요구받은 저우융캉이 고민에 빠진 사이 비상 전화가 울렸다. 정법위를 방위하는 무경(무장경찰) 지휘관이 ‘소속을 알 수 없는 군 병력이 정법위 건물을 포위했다’고 보고했다. 천안문 인근 공안부 청사 역시 무장 헬기로 포위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가안전부와 TV 방송국도 느닷없는 군 포위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의 수방사 격인 제38집단군 소속 정예 부대라는 보고였다.

저우융캉보다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공 총서기 겸 군사위주석 겸 국가주석의 결단이 한발 앞선 결과였다. 당시 천하오쑤의 비서는 후진타오가 심어 놓은 밀정이었다. ‘경란’의 불온한 정보가 속속 후에게 보고됐다.

저우융캉은 건물 사수를 명령했다. 이어 당 중앙판공청을 통해 후 주석에게 전화를 타진했다. 연결되지 않았다. 은퇴한 장쩌민을 찾았다. 마지막 남은 생명줄이었다.

밖에선 긴박한 대치가 이어졌다. 무경 지휘관이 공중에 발포하며 소리쳤다. “이곳은 중앙정법위 건물이다. 당과 국가의 핵심 조직이다. 누구라도 공격하면 발포하겠다. 철수하라. 총알에는 눈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에 맞서 제38집단군 산하 113사단 대대장이 외쳤다. “제군들 두 눈 뜨고 어느 부대인지 보라. 38군 113사단이다. 미군도 괘념치 않는다. 한 번 더 쏴봐라. 믿건 안 믿건 정법위 건물을 날려버리겠다.”

곧이어 자오하이빈 113사단장이 진입을 명령했다. 총격전이 시작됐다. 무경 지휘관은 부하 600명에게 투항을 지시했다. 바로 그때 자오 사단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쉬린핑(許林平) 군단장 전화였다. 외곽 철수를 명령했다. 자오 사단장이 무경 지휘관에게 총기를 돌려주며 말했다. “주먹이 없으면 친구도 없다 하잖소. 오늘은 훈련이었소.”

지난 2017년 베이징전람관에서 전시 중인 ‘단련분투의 5년’ 전시회에 저우융캉(周永康)·보시라이(博熙來)·궈보슝(郭伯雄)·쉬차이허우(徐才厚)·링지화(令計劃)과 함께 게재된 쑨정차이 전 충칭시 당서기. “이들의 엄중 기율 위반 사건은 정치문제와 경제문제가 서로 얽힌 부패 분자를 엄히 처리해 중대한 정치 우환을 제거했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사진=신경진 기자]

“총서기·군사위주석·국가주석 1인 집중 바꿔야”


3·19 사태의 발단은 2월 6일 왕리쥔(王立軍) 충칭(重慶)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이 청두(成都) 미국 총영사관 망명 시도였다. 이로 인해 왕리쥔의 상관 보시라이가 3월 14일 양회 폐막일에 체포되자 그를 비호한 저우융캉이 궁지에 몰렸다. 저우융캉은 전날 후진타오 주석이 긴급 소집한 상무위 회의에서 유일하게 보시라이 체포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신간에 따르면 천하오쑤는 저우에게 왕리쥔 문건을 들이밀며 압박했다고 한다. 천이 충칭에 심은 심복을 통해 확보한 문건에는 “18대 이후 국가 기구 인사 조정을 통해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 국가 주석을 한 사람이 맡고 이를 통해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저우융캉과 보시라이가 요직을 나눠 차지하겠다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천은 후진타오가 이미 이같은 문건을 확보했으므로 퇴로가 없다며 저우에게 3·19 ‘경란(警亂)’을 압박했다.

영문 신간 『중국 대결』의 저자 샹양(오른쪽)이 부친과 지난 2002년 프랑스 파리 개선문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VOA]


미수에 그친 3·19 사태는 무경 통수권과 정법위 재편을 불렀다. 무경은 2016년 인민해방군 구조 개편을 계기로 중앙군사위 산하로 통수권이 조정됐다. 중앙정법위 서기는 정치국 상무위원이 아닌 정치국원으로 강등됐다.

하지만 중국에서 정법 계통의 파워는 여전히 막강하다. 경찰·사법을 통칭하는 칼자루[刀把子]를 지휘하는 정법위 서기는 저우융캉에 이어 멍젠주(孟建柱), 궈성쿤(郭聲琨) 현 서기까지 장쩌민 계열로 분류된다.

샹양의 신간은 미국의소리(VOA) 중문판이 이달 초 저자 인터뷰와 함께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단 26일 현재 해당 기사는 검색되지 않고 기존 기사도 삭제된 상태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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