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규모 7.0 강진 거뜬.. 완전 정전에도 전력공급 OK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부산 기장군을 둘러보면 우뚝 솟은 4개의 원형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회색 콘크리트 질감의 커다란 구조물이 경관 한쪽을 차지한다. 1978년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원전이다. 고리원전과 바닷가 사이는 직선거리로 200m가 채 되지 않는다. 발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증기를 식힐 냉각수를 얻기 위해 바다와 최대한 가깝게 입지를 정했다.
이전에는 바다에서 바라보면 원전 전경을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21일 찾은 고리원전에서는 고리 1호기와 2호기의 돔 모양만 빼꼼히 보였다. 고리 1·2호기 앞에는 ‘해안 방벽’이 아파트와 도로를 분리하는 방음벽처럼 높게 설치돼 있다. 높이가 10.0m에 달하는 이 방벽은 두께가 1.8m나 된다. 아파트 3층 높이인 이 구조물을 넘어설 해일은 한반도에서 지난 1만년간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다.
고리 1·2호기 해안 방벽은 2011년까지만 해도 7.5m 높이였다. 2012년 더 높게 증축하면서 15~50㎝에 불과했던 두께를 3배 이상으로 대폭 보강했다. 2011년 3월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해일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였다. 증축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이후 8개월 만에 결정됐고, 이듬해 작업이 마무리됐다.
26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해안 방벽 증축을 포함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따른 국내 원전 후속 조치 56건 중 54건이 완료됐다. 남은 2건은 ‘격납건물 배기 또는 감압설비 설치’와 ‘한울 제1발전소 제2보조급수 저장탱크 설치’인데, 2024년 마무리될 예정이다.
국내 원전 후속 조치는 특히 해일 피해예방에 초점을 맞췄다.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 발생 직후 정상적으로 정지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해일 탓에 전원이 차단됐다. 비상발전기까지 모두 침수되면서 냉각수 공급이 끊어졌다. 이는 격납용기 내부에 모여 있던 수소가 폭발하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한수원이 고리원전 해안 방벽 증축을 최우선 조치로 삼은 것도 후쿠시마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 고리원전은 동해안에 있는 원전 중 가장 낮은 지대에 위치한다. 한수원은 해일이 해안 방벽을 넘어올 경우를 대비해 대규모 펌프시설과 방수문을 설치했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전력 공급이 끊이지 않도록 조치했다. 모든 원전 비상발전기는 침수 방지를 위해 지상으로 옮겼다.
‘만약의 경우’에 대한 대비도 더했다. 해발 39.9m 부지에 설치한 고리원전 통합보관고에는 이동형 비상대응설비가 들어차 있다. 3.2㎿ 대용량 이동형 발전차, 1.0㎿ 소용량 이동형 발전차 등의 장비가 대기 중이다. 3.2㎿ 발전차의 길이는 18m로 1t 트럭 3대와 맞먹는 크기다. 고리원전 관계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발전차를 움직이기 위해 직원들이 특수 면허도 땄다”고 말했다. 고리원전은 3.2㎿ 대용량 발전차를 하나 더 구매할 예정이다.
이동형 비상대응설비들은 사고 발생 8시간이 지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부터 급박하게 돌아간다. 1.0㎿ 이동형 발전차가 달려가 원전 필수장비에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이 시작이다. 72시간이 지나도 설비가 복구되지 않을 경우에는 3.2㎿의 대용량 이동형 발전차가 출동한다. 이동형 펌프차는 냉각수 보충을 위한 설비다. 설령 모든 냉각 기능이 상실되고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 극한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다. 수소가 제거돼 격납용기 내부 수소 폭발을 방지하는 ‘피동형 수소 제거설비’가 설치돼 있다.
지진 대비도 보강에 보강을 더했다. 지진이 원전 사고로 이어진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없다. 그럼에도 국내 모든 원전에는 ‘지진 자동정지설비’가 설치돼 있다. 규모 6.5 이상의 지진이 감지되면 지진 자동정지시스템이 가동돼 제어봉이 낙하하면서 원자로가 정지된다.
고리·월성·한빛·한울 등 설계한 지 오래된 원전들은 내진 성능을 더 보강했다. 덕분에 설계 당시 규모 6.5의 지진까지만 버틸 수 있었던 국내 원전은 현재 규모 7.0 수준까지도 견딜 수 있다. 국내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은 2016년 경주 지진(규모 5.8)이다. 규모 7.0의 지진은 국내 관측 이후 발생하지 않았다. 극한 자연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스트레스테스트’도 이미 통과했다. 고리원전 관계자는 “고문헌 등에 기록된 내용까지 확인해 모든 원전을 대상으로 1만년 빈도의 자연재해를 기준으로 테스트를 해봤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원전 안전에 대한 의구심을 내려놓지 않는다. 하지만 구조적 관점에서 한국 원전은 일본 원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 성능이 뛰어난 편이다. 국내 원전은 ‘비등경수로 방식’을 쓴 후쿠시마 원전과 달리 ‘가압경수로 방식’을 쓴다. 비등경수로 방식은 원자로 내에서 물을 끓여 발생한 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원자로 내에서 증기가 발생하므로 방사능 외부 유출 가능성이 크다. 반면 가압경수로는 원자로와 분리된 증기 발생기에서 터빈을 돌리는 증기가 발생한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방사능 유출 가능성이 작다.
격납용기 내부가 후쿠시마 원전보다 5배 이상 크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압력이 그만큼 낮아 폭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작다. 고리원전 관계자는 “격납용기 내에 수소 제거장치가 갖춰져 있어 수소 농도 조절도 쉽다”고 설명했다.
부산=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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