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총질 하던 당대표" 이준석 때린 尹..여당, 멘붕 빠졌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
26일 대정부질문이 한창 진행 중이던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가 카메라에 포착돼 파문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인물이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아 직무가 정지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이기 때문이다. 국회사진기자단이 이날 오후 4시 13분에 촬영한 권 대행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메시지 발신자가 ‘대통령 윤석열’로 표기돼 있었고, 두 사람의 민감한 대화 내용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19분에 권 대행에게 “우리 당도 잘 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라고 발송한 뒤 11시 40분에는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권 대행은 11시 55분에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후 오후 1시 39분에 체리를 의인화해 엄지를 추켜세우고 있는 이모티콘이 대화방에 등장했다. 화면의 왼쪽에 치우친 걸로 봤을 때 이모티콘 발신자는 윤 대통령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사진이 찍힌 때인 오후 4시 13분에 권 대행은 문자메시지 입력칸에 “강기훈과 함께…”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메시지에 등장한 강기훈은 1980년생으로 2019년 대안 우파 성향의 ‘자유의 새벽당’ 창당을 주도했다. 여권 관계자는 “권 대행이 강기훈과 가까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로 지칭한 이 대표는 지난 8일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뒤 전국을 돌며 장외 여론전을 펴고 있다. 국민의힘은 징계 사흘 만인 지난 11일 ‘권성동 직무대행 체제’를 의원총회에서 의결하며 진열을 재정비했다. 의총 전날인 지난 10일 윤 대통령이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의원들과 만찬을 하고 그 자리에서 권 대행이 직무대행 체제의 필요성을 언급한 게 알려지면서 당내에선 이른바 ‘윤심(尹心)’ 논란이 일었다. “이 대표의 징계와 이후 여당 체제 정비의 배후에 윤 대통령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날 이 대표를 향한 윤 대통령의 속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드러나자 정치권에선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껄끄러운 사이라는 건 그간 정치권에선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대선 기간이던 지난해 12월 이 대표가 당무를 거부하고 잠행하다 윤 대통령과 ‘울산 회동’을 통해 갈등을 가까스로 봉합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처럼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표현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이번 메시지 노출로 그동안 윤 대통령이 강조해오던 ‘당무 불간섭’ 원칙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 징계 직후인 지난 8일 도어스테핑(약식 회견) 당시 “대통령으로서 당무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국민의힘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여당 내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당 비례대표 초선의원은 “이 대표의 징계 배후에 윤핵관이 있다는 추측만 무성했는데, 윤핵관도 아닌 윤 대통령의 직접적인 의중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지역구 초선의원도 “권 대행이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파장이 커지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치명적일 뿐 아니라, 권 대행도 코너에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6월 지방선거 당시 경기지사 당내 경선에서 윤심(尹心)을 등에 업은 김은혜 전 의원에게 패배한 뒤 윤 대통령을 작심 비판했던 유승민 전 의원은 인스타그램에 해당 텔레그램 사진을 게재했다. 반면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표를 비난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기보다는 권 대행에게 격려한 것이 본질로 보인다”고 엄호했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 유출은 이 대표의 성 상납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전직 여당 의원은 “이 대표에 대한 기소가 이뤄지는 등 처벌 쪽으로 수사가 진행되면 ‘윤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반응이 나올 것”이라며 “성 상납 의혹이 사실이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공정한 수사가 아니라는 딱지가 붙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 대행은 지난 8일 대행 체제로 신발끈을 고쳐멘 지 18일 만에 코너에 몰렸다. 이유를 막론하고 현직 대통령과의 민감한 대화를 유출한 책임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권 원내대표가 의도적으로 사진을 유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 대표를 자진 사퇴 시키는 등 특정한 의도가 담겨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비주류 여권 관계자는 “본회의장에서 문자 메시지가 언제든 포착될 수 있다는 것은 권 대행이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라고 말했다.
권 대행은 사진이 찍힌 뒤 4시간여 만에 입장문을 통해 “이유를 막론하고 당원 동지들과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권 대행은 그런 뒤 ‘국회 정상화 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격려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일부에서 회자되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으로 생각된다”며 “오랜 대선 기간 함께 해오며 이준석 당 대표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본심이 아니라는 취지다. 권 대행은 “저의 부주의로 대통령과의 사적인 대화 내용이 노출되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전적으로 저의 잘못”이라며 거듭 사과했다. 대통령실은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권이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 일각에서 제기되던 조기 전당대회론이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 주장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어떤 식으로든 권 대행이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 측은 침묵 속에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있다. 이 대표와 가까운 인사는 “현재로서는 입장을 낼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측근들은 이 대표에게 “감정적 대응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로 조언했다고 한다. 현재 울릉도를 방문 중인 이 대표는 대통령 메시지가 공개된 지 50분쯤 뒤 울릉도 발전과 관련된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과 권 대행이 나눈 문자 대화 내용은 한심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조오섭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당무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윤 대통령의 말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허언이었나”라며 “민생 챙기기에 분초를 다퉈도 부족한 상황에서 당권 장악에 도원결의라도 하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이 기가 막히다”고 지적했다. 조 대변인은 또 “윤 대통령은 국민 걱정은 안중에도 없이 뒤에서 몰래 당권 싸움을 진두지휘했다는 말인가”라며 “윤 대통령은 이 대표 징계에 관여했는 지 분명히 밝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대정부질문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민생이 다급한데 대통령이 참으로 한가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 대표를 징계하고 내치는 데 배후 역할을 맡지 않으셨나 의구심이 든다”며 “바쁜 국무 시간에 당 의원들이 (대정부질문에서) 잘 하는 지 보는 것도 줄 서기를 강요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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