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총질 하던 당대표" 이준석 때린 尹..여당, 멘붕 빠졌다

손국희, 조수진 2022. 7. 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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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

26일 대정부질문이 한창 진행 중이던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가 카메라에 포착돼 파문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인물이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아 직무가 정지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이기 때문이다. 국회사진기자단이 이날 오후 4시 13분에 촬영한 권 대행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메시지 발신자가 ‘대통령 윤석열’로 표기돼 있었고, 두 사람의 민감한 대화 내용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19분에 권 대행에게 “우리 당도 잘 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라고 발송한 뒤 11시 40분에는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권 대행은 11시 55분에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후 오후 1시 39분에 체리를 의인화해 엄지를 추켜세우고 있는 이모티콘이 대화방에 등장했다. 화면의 왼쪽에 치우친 걸로 봤을 때 이모티콘 발신자는 윤 대통령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사진이 찍힌 때인 오후 4시 13분에 권 대행은 문자메시지 입력칸에 “강기훈과 함께…”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메시지에 등장한 강기훈은 1980년생으로 2019년 대안 우파 성향의 ‘자유의 새벽당’ 창당을 주도했다. 여권 관계자는 “권 대행이 강기훈과 가까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로 지칭한 이 대표는 지난 8일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뒤 전국을 돌며 장외 여론전을 펴고 있다. 국민의힘은 징계 사흘 만인 지난 11일 ‘권성동 직무대행 체제’를 의원총회에서 의결하며 진열을 재정비했다. 의총 전날인 지난 10일 윤 대통령이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의원들과 만찬을 하고 그 자리에서 권 대행이 직무대행 체제의 필요성을 언급한 게 알려지면서 당내에선 이른바 ‘윤심(尹心)’ 논란이 일었다. “이 대표의 징계와 이후 여당 체제 정비의 배후에 윤 대통령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날 이 대표를 향한 윤 대통령의 속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드러나자 정치권에선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껄끄러운 사이라는 건 그간 정치권에선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대선 기간이던 지난해 12월 이 대표가 당무를 거부하고 잠행하다 윤 대통령과 ‘울산 회동’을 통해 갈등을 가까스로 봉합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처럼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표현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이번 메시지 노출로 그동안 윤 대통령이 강조해오던 ‘당무 불간섭’ 원칙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 징계 직후인 지난 8일 도어스테핑(약식 회견) 당시 “대통령으로서 당무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국민의힘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3박5일 동안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첫 순방을 마치고 김건희 여사와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여당 내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당 비례대표 초선의원은 “이 대표의 징계 배후에 윤핵관이 있다는 추측만 무성했는데, 윤핵관도 아닌 윤 대통령의 직접적인 의중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지역구 초선의원도 “권 대행이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파장이 커지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치명적일 뿐 아니라, 권 대행도 코너에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6월 지방선거 당시 경기지사 당내 경선에서 윤심(尹心)을 등에 업은 김은혜 전 의원에게 패배한 뒤 윤 대통령을 작심 비판했던 유승민 전 의원은 인스타그램에 해당 텔레그램 사진을 게재했다. 반면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표를 비난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기보다는 권 대행에게 격려한 것이 본질로 보인다”고 엄호했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 유출은 이 대표의 성 상납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전직 여당 의원은 “이 대표에 대한 기소가 이뤄지는 등 처벌 쪽으로 수사가 진행되면 ‘윤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반응이 나올 것”이라며 “성 상납 의혹이 사실이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공정한 수사가 아니라는 딱지가 붙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마치고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김상선 기자


권 대행은 지난 8일 대행 체제로 신발끈을 고쳐멘 지 18일 만에 코너에 몰렸다. 이유를 막론하고 현직 대통령과의 민감한 대화를 유출한 책임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권 원내대표가 의도적으로 사진을 유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 대표를 자진 사퇴 시키는 등 특정한 의도가 담겨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비주류 여권 관계자는 “본회의장에서 문자 메시지가 언제든 포착될 수 있다는 것은 권 대행이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라고 말했다.

권 대행은 사진이 찍힌 뒤 4시간여 만에 입장문을 통해 “이유를 막론하고 당원 동지들과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권 대행은 그런 뒤 ‘국회 정상화 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격려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일부에서 회자되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으로 생각된다”며 “오랜 대선 기간 함께 해오며 이준석 당 대표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본심이 아니라는 취지다. 권 대행은 “저의 부주의로 대통령과의 사적인 대화 내용이 노출되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전적으로 저의 잘못”이라며 거듭 사과했다. 대통령실은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권이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 일각에서 제기되던 조기 전당대회론이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 주장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어떤 식으로든 권 대행이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 측은 침묵 속에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있다. 이 대표와 가까운 인사는 “현재로서는 입장을 낼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측근들은 이 대표에게 “감정적 대응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로 조언했다고 한다. 현재 울릉도를 방문 중인 이 대표는 대통령 메시지가 공개된 지 50분쯤 뒤 울릉도 발전과 관련된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와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가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상선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과 권 대행이 나눈 문자 대화 내용은 한심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조오섭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당무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윤 대통령의 말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허언이었나”라며 “민생 챙기기에 분초를 다퉈도 부족한 상황에서 당권 장악에 도원결의라도 하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이 기가 막히다”고 지적했다. 조 대변인은 또 “윤 대통령은 국민 걱정은 안중에도 없이 뒤에서 몰래 당권 싸움을 진두지휘했다는 말인가”라며 “윤 대통령은 이 대표 징계에 관여했는 지 분명히 밝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대정부질문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민생이 다급한데 대통령이 참으로 한가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 대표를 징계하고 내치는 데 배후 역할을 맡지 않으셨나 의구심이 든다”며 “바쁜 국무 시간에 당 의원들이 (대정부질문에서) 잘 하는 지 보는 것도 줄 서기를 강요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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