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호수 앞두고 끙끙 앓다.. 또 오라는 뜻 맞지?
[전병호 기자]
키르기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유목민 후예의 나라들이다. 그들은 톈산산맥과 파미르 고원이 품은 초원을 오가며 수천 년 동안 말과 양과 소 등 가축을 따라 이동하며 삶을 이어왔다. 산업화나 도시화가 되면서 많은 유목민들이 유목의 삶을 버리고 도시로 모여들었고 일부는 돈을 따라 더 큰 도시, 더 잘 사는 나라로 떠났지만 아직도 도시 외 지역에선 여전히 유목민의 후예들이 초원을 따라 가축을 몰며 살아가고 있다.
|
|
| ▲ 유목민의 후예들 유목민의 후예들은 승마 경험 상품을 팔기 위해 관광객들에게 몰려 들었다. |
| ⓒ 전병호 |
그들이 유목민의 후예임을 알려주는 상징들을 키르기스스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 나라 국기에도 유목민의 상징이 형상화되어 있다. 키르기스스탄 국기는 붉은 바탕에 가운데 태양 닮은 노란색 모양으로 되어 있다. 그 정중앙에 표시가 바로 그들의 이동식 주거지 유르트 Yurt(유르타-러시아어, 키르기스어에선 '회색 집'이란 뜻의 '보즈위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유르트라고 함)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
|
| ▲ 키르기스스탄 국기 키르기스스탄 국기: 정중앙 문양은 유르트 천장 문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
| ⓒ 전병호 |
|
|
| ▲ 유르트 천장 유르트 천장 환기 창은 열고 닫을 수 있으며 창을 열고 태양을 볼 수 있고, 밤 하늘 별을 볼 수 있다. |
| ⓒ 전병호 |
|
|
| ▲ 유르트 천장 문양 유르트 천장 문양은 국기 외에도 키르기스스탄 곳곳에 여러 상징물로 서 있었다. |
| ⓒ 전병호 |
유목민들은 유르트 천장의 창을 통해 태양을 볼 수 있고 밤하늘 별을 볼 수도 있다. 유목민들에게 하늘은 지도와 같다. 수천 년 동안 유목민들은 하늘의 별을 보며 시간을 읽고, 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고, 하늘의 별을 보며 삶을 이어왔다. 하늘의 별을 보고 겨울이 다가옴을 읽어 내고, 하늘의 별을 보고 겨울이 지나는 것을 읽어 내어 말과 양, 소 등 가축과 함께 생존지를 찾아 옮겨 다녔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쉽게도 날씨와 여러 가지 여건 상 유르트 천장으로 별을 보지 못했다. 꼭 다시 가서 유르트 천장으로 초원의 별을 보며 춤을 추고 싶다. 가이드에게 살짝 얘기했더니 이번에는 일정 때문에 못 갔지만 송쿨 초원에서 별을 한 번 봐야 진정한 초원의 맛, 유목민의 삶을 알 수 있다고 귀띔한다. 못 먹어 본 떡이 더 먹고 싶고 갖고 싶은 법이다. 다음에 다시 키르기스스탄에 간다면 송쿨 호수는 무조건 첫 번째 목적지가 될 듯하다.
|
|
| ▲ 이식쿨 호수 이식쿨 호수는 해발 1600m 높이에 있는 호수로 호수라기 보다 바다라고 해도.. |
| ⓒ 전병호 |
유목민의 땅 정령들에게 신고식
'몸이 왜 이러지?'
여행이 시작된 둘째 날 비슈케크에서 느지막이 출발하여 저녁 무렵 이식쿨 호수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식쿨 호수 주변 유르트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묵는 일정이었다. 관광객을 위해 유르트를 지어 놓고 숙박객을 받는 체험형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전기불과 손님용 간이 매트리스를 빼고는 전통방식 그대로였다.
|
|
| ▲ 유르트 이식쿨 호수 옆 유르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
| ⓒ 전병호 |
|
|
| ▲ 유르트 유목민의 이동식 거주지: 조립식으로 반나절이면 한 채를 조립할 수 있다니 유목민의 지혜가 들어 있는 집이다. |
| ⓒ 전병호 |
'차를 오래 타서 그런가? 조금 쉬면 괜찮겠지 뭐.'
별 일 아니라고 넘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몸이 떨리면서 오한이 왔다. 처음 겪어보는 몸 상태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저녁 먹으며 반주도 한잔하며 춤추며 놀 생각이었는데 물거품이 되었다. 그토록 기대했던 유르트에서 직접 자보는 날인데 아픈 내가 실망스러워졌다. 무엇보다 이제 여행 시작인데 혼자 몸이라면 일정 조정하면서 다니면 되는데 일행에 짐이 될까 봐 더 걱정이었다.
식사 후 '일단 쉬면 낫겠지'하면서 숙소 유르트로 걸어가는데 오한이 심해지며 온 몸이 벌벌 떨렸다. 너무 아파 매트리스에 그대로 누워 두 겹으로 이불을 덮고 비상용으로 가져온 핫팩을 배에 붙였다. 잠깐 잠이 들었던 모양인데 내리치는 비바람 소리와 이식쿨 호수의 파도소리에 잠을 깼다. 비몽사몽 중에 몸이 붕 뜬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어떤 힘이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 같았다.
'어라 몸이 안 아프네.'
밤새 비몽사몽 끙끙 앓았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몸이 안 아프니 여행의 흥분이 다시 돌아왔다. 그 뒤로는 엉치뼈도 다시 아프지 않았고 여행 내내 무탈하게 지나갔다. 마지막 날 여행 뒤풀이 겸 술 한잔 하는데 첫날 내 몸이 아팠던 원인을 스스로 진단해 냈다.
"이식쿨 호수의 정령과 유목의 땅 정령들에게 신고식 하느라 그랬던 거 같아."
|
|
| ▲ 유목민의 후예? 내 속에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 ⓒ 전병호 |
살아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역마살이 끼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20여 년 직장 생활 중에도 반 이상은 지방근무로 전전해야 했다. 생각해보니 역마살이라기보다 나에게 유목민의 피가 섞여 있지 않았나 싶다. 이번 여행 중에 아팠던 것도 다 그런 연유라고 나는 철석같이 믿고 있다. 먼 조상들의 땅에 처음으로 갔으니 그곳 정령들이 나를 알아보고 '너 왜 이제 왔니?'하며 신고식을 치른 것이다.
'이식쿨에서의 알 수 없던 아픔, 이거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시 오라는 말이 확실한데…'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게재 후 브런치 개인 계정에 게재 예정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엉터리 국민제안 투표로 대형마트 의무휴업 없앤다고?"
- 국힘 권은희 "이상민, 딱 기다려라... 탄핵소추 논의 진행할 것"
- '쿠데타 발언' 이상민 두둔한 윤 대통령 "경찰 집단 반발, 중대한 국기 문란"
- 낚시도 사진도 아닙니다, 중년 남성들이 모여 글 씁니다
- 일본 상대로 또... 한국 야구 사상 첫 기록 세운 마법의 8회
- "이러다 고사 위험" 관광객 몰리는 '우영우 팽나무' 보호 시급
- 여군 부사관은 왜 죽었나... 군대 움직임이 수상하다
- 한덕수 총리 "공공 분야, 굉장히 많이 해킹되고 있다"
- [오마이포토2022] 경찰청 공무원·주무관 노조 "독재정권 때로 돌아간 것 같다"
- 티타임 복원 비판에, 한동훈 "지난 정부 수사선 흘리기 없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