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관 잠그진 않는다..유럽 목덜미 쥔 푸틴의 '가스 고문'

이승호 2022. 7. 2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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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 유소년 포럼 행사에서 엄지손가락을 드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유럽을 향한 '가스관 숨통 죄기’가 재개됐다.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25일(현지시간)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에서 가동 중인 터빈 2개 중 하나의 가동을 중단한다”면서 “모스크바 시간 기준 27일 오전 7시부터 하루 가스 공급량이 현재(6700만㎥)의 절반인 3300만㎥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기 점검을 위해 멈췄던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을 재가동한 지 4일 만이다. 독일 등은 “공급량 감축에 기술적 이유가 없다”며 비판했지만, 뚜렷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속 태우고 있다.

가스프롬 측은 이날 발표에서 “캐나다 정부로부터 가스관 터빈의 안전한 반환을 약속받는 문서를 받지만, 추가 문제가 남아있다”며 서방 측에 책임을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발트해 해저를 통해 독일로 연결되는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은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에 맞서 러시아가 휘두르는 ‘에너지 무기’가 돼 왔다. 가스프롬은 캐나다에 수리를 맡긴 터빈이 대러시아 제재 탓에 반환되지 않고 있다며 지난달 노르트스트림1을 통한 가스 공급량을 평소의 40% 수준으로 줄였다. 이어 이달 11일부터 21일까지 정기점검을 위해 노르트스트림1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재가동 나흘 만에 공급량을 40%에서 20%로 더 줄이겠다고 한 러시아측 위협에 시장이 요동쳤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을 나타내는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8월물 기준) 가격은 25일 전날보다 10.48% 상승한 MWh당 176.62유로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0일 독일 루브민의 한 컨테이너에 러시아의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표시한 세계 지도가 그려져 있다.[A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고도의 ‘유럽 길들이기’ 전략을 쓴다고 분석한다. 가스를 무기로 유럽의 목을 풀었다 조이기를 반복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나아가 유럽의 정치적 분열을 노린다는 것이다. 벨기에에 있는 경제 싱크탱크 브뤼겔의 시몬 탈리아 피에트라 선임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러시아는 전략적 게임을 하고 있다”며 “(가스의) 완전한 차단보다 낮은 수준으로 공급하는 것이 시장을 조작하고 지정학적 영향력을 높이는데 더 낫다”고 설명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는 단합한 유럽을 상대로 ‘가스 전쟁’이자 테러를 벌이고 있다”며 “유럽이 가스 터빈 반환에 급급하기보다,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르트스트림과 가스관을 합성한 이미지.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가스 고갈 위기가 현실화화면서 유럽은 혼란에 빠지고 있다. 독일 정부는 가스프롬의 공급량 감축에 대해 “기술적 이유가 없다”며 비난했지만 뚜렷한 대응책을 못 찾고 다가올 경제 충격을 걱정한다. WSJ는 “독일은 가정과 병원 및 기타 중요 부문 가스 공급과 산업용 가스 부족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화학 분야 등 가스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거나 해고를 단행해야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독일 이포연구소는 “독일이 경기 침체의 문턱에 있다”고 경고했다. 다른 국가 사정도 마찬가지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헝가리의 경우 가스 공급이 전면 중단된다면 경제 생산량이 최대 6.5%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탈리아(5.7%), 오스트리아(3%) 등의 생산량도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고조되는 에너지 위기에 유럽의 반(反)러 연대는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8월 1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가스 소비량을 15% 자발적으로 감축하고, 비상 상황이 되면 이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 등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낮은 남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이 대책이 독일 등 일부 국가만을 위한 것이라는 불만이 제기됐다. BBC는 “26일 열릴 EU 에너지 장관회의에서 일부 회원국은 에너지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대(對)러시아 제재 수위 강화에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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