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살 시신 1200구..캐나다 찾은 교황 "원주민에 사죄"

박소영 2022. 7. 2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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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독교인이 원주민을 상대로 저지른 악행에 대해 겸허하게 용서를 구합니다.”
약 100년 전 벌어진 대규모의 원주민 아동 학살을 사죄하기 위해 캐나다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현지시간) 캐나다 원주민들 앞에서 교회의 과오를 이렇게 사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 캐나다 매스쿼치스 옛 기숙학교 부지를 방문해 원주민 추장으로부터 깃털 머리장식을 받아 착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 통신, BBC 등 외신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캐나다 앨버타주(州) 매스쿼치스의 옛 기숙학교 부지를 방문해 "많은 기독교인이 원주민들을 탄압한 열강들의 식민화 사고방식을 지지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느끼고 미안하다"면서 "특히 교회와 종교 공동체의 많은 구성원이 당시 (캐나다) 정부가 고취한 문화적 파괴와 강요된 동화 정책에 협조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이어 지난 4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난 원주민 대표단과 만남을 회상하면서 "기숙학교가 원주민의 언어·문화를 폄하하고, 그곳에서 아이들이 신체적, 심리적, 영적으로 어떻게 학대를 겪었는지 말해주셔서 감사하다"면서 "기숙학교를 포함한 동화 정책이 원주민들에게 얼마나 파괴적이었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교황이 사과하는 자리에 참석한 수백명의 원주민들은 연설을 들으며 울었고 끝나자 박수를 치기도 했다. 교황은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사과의 뜻을 전달했고, 영어와 원주민 언어로도 번역돼 제공됐다고 캐나다 방송 CTV가 전했다.


교황, 원주민 기숙학교 아동학살에 뒤늦게 사과


1900년에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들어간 캐나다 원주민 아이들의 모습. EPA=연합뉴스
교황의 이번 '사과 방문'은 지난해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서스캐처원주 등의 원주민 기숙학교 터 3곳에선 1200구가 넘는 원주민 아동 유해가 발견된 데서 비롯됐다. 이들 기숙학교는 1881~1996년에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들을 백인 사회에 동화시키기 위해 설립한 곳으로 약 70%는 가톨릭 교회가, 나머지는 개신교 교회가 운영했다.

앞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15만명 이상의 원주민 아이들이 가족과 강제로 떨어져 전국에 산재한 139개 기숙학교에 보내졌고 언어와 문화적 관습을 금지당하고 신체적·성적·정신적 학대를 당했다. 캐나다의 진실·화해 위원회에 따르면 최대 6000여명 아이가 영양실조·전염병·화재 등으로 기숙학교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주민들은 이를 '문화적 집단 학살'로 규정했다.

이와 관련 개신교인 연합교회, 성공회 등이 1980~90년대에 공식으로 사과했고, 캐나다 정부도 2008년 공식으로 사과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가톨릭 교계는 사과의 뜻을 제대로 밝히지 않다가 지난해 유해 발견 후 캐나다 전역에서 집회가 이어지자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됐다. 교황은 지난 4월 로마로 찾아온 캐나다 원주민 대표단에게 공식으로 사과하는 한편 캐나다 기숙학교 현장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만성 신경통에 시달리는 교황은 최근 무릎 통증이 심해져 휠체어를 탄 채 지난 24일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에 도착했다. 25일 연설에서 교황은 원주민에 대한 사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중요한 부분은 과거에 일어난 사실에 대해 진지한 조사를 수행하고, 기숙학교 생존자들이 치유되도록 돕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 한 교회에서 원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날 교황은 학생들의 유해가 있는 매스쿼치스 공동묘지를 찾아 기도했다. 기숙학교 생존자인 원주민 추장 윌튼 리틀차일드로부터 원주민 추장이 쓰는 깃털 머리 장식을 받아 착용하기도 했다. 원주민 여성이 원주민 언어인 크리어로 부르는 캐나다 국가 ‘오 캐나다(O Canada)’도 진지하게 경청했다. 교황은 오는 29일까지 퀘벡주의 퀘벡, 누나부트준주(準州)의 이칼루이트 등을 방문해 원주민에게 계속 사과의 뜻을 밝힐 예정이다.

캐나다 일간 내셔널 포스트는 "캐나다에서 가톨릭 교회 출석률이 계속 감소하는 상황에서 교황의 이번 사과 방문이 이뤄져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캐나다 통계청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의 가톨릭 인구는 29%다. 1985년 조사에서 39%를 기록한 것에 비해 10%포인트나 하락했다.


생존자 원주민 "50년 기다린 사과, 구체적 지원해달라"


캐나다 원주민들이 25일 앨버타주 매스쿼치스에서 옛 기숙학교 부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과 연설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교황의 방문 사과에 많은 원주민이 만족한다고 했지만, 일부는 여전히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코넬 맥린 매니토바주 원주민 단체 대표는 "사과만으로는 고통을 덜 수 없다"면서 "이제 교회가 구체적인 약속과 진정한 배상을 통해 화해의 정신으로 전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생존자인 에블린 코르크마즈는 "이 사과를 50년 동안 기다렸다"면서 "기숙학교에서 사망한 어린이들에 대한 교회 문서를 공개하고, 교황이 이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고 말했다.

AP 통신은 "캐나다 가톨릭 교회는 원주민 단체에 현금과 현물로 5000만 달러(약 654억원) 이상을 제공했고, 향후 5년 동안 3000만 달러(약 392억원)를 추가로 기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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