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살해 후 극단 선택하는 부모.."아이,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 아냐"

강주희 2022. 7. 2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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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속 살인, 한 달 새 3건 잇따라 발생
전문가 "코로나19 이후 일상 회복되며 불안감 커져"
"국가의 맞춤형 지원과 사회적 안전망 필요" 지적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어린 자녀를 살해하고 부모도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비속 살해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그 원인과 관련해 경제적 어려움, 가정불화 등 여러가지가 언급된다. 하지만, 밑바탕에는 자녀를 종속된 존재로 생각하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의정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새벽 의정부시의 한 오피스텔에서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40대 부부와 6세 남자 어린이가 쓰러져 있었고, '빚 때문에 살기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극단적 선택을 예고하는 예약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는 지인의 신고로 출동한 현장에서 쓰러져 있는 가족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졌지만 모두 숨졌다.

전날에도 세종시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던 30대, 40대 자매와 자매 중 동생의 초등학생 자녀 2명이 모두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자녀들은 아파트 내부에서 심정지 상태로, 자매는 이 아파트 1층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아파트 창문 아래 의자 두 개가 나란히 있다는 점과 자매 각각의 유서가 발견된 점 등을 토대로 자녀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서에는 신변을 비관하는 내용이 적혔으며 생활고 등 경제적 문제로 인한 극단적 선택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월 말에는 실종된 초등학생 조 아무개양의 가족이 전남 완도 앞바다 침수된 차량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조양 부모가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한 달 새 무려 3건이나 발생했다.

지난달 29일 오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선착장 인근 방파제에서 경찰이 10m 바닷속에 잠겨있는 조유나양 가족의 차량을 인양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례는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이 지난 2018년부터 집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르면, 2018년 아동학대 사망자는 28명이었고, 이 가운데 7명(5건)이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수치는 2019년에는 42명 중 9명(6건), 2020년에는 43명 중 12명(12건)으로 나타나며 증가하는 추세다.

이보다 앞선 시기의 통계로는, 지난 2014년 발표된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의 논문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이 있다.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06년 1월1일부터 2013년 3월31일까지 총 7년3개월 동안 자녀 살해는 총 230건으로, 해마다 30~39건 정도 발생했다. 부모가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는 46%였다. 논문은 "부모의 약 46%가 자식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을 해, 일반 살인사건은 물론 존속살인을 포함한 가족 간 살인에서보다도 높은 비율을 나타내, 자식이 소유물이 아닌 독립적 인격체임에 대한 부모의 인식 전환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시아경제와 통화에서 "우리나라는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고, 내가 없으면 아이도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좋게 말하면 책임 의식이지만, 아이를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로 생각하는 잘못된 인식"이라며 "이는 부모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경우 극단적이고 비관적인 행동으로 심화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승 연구위원은 최근 비속 살인이 잇따라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코로나19 이후 일상이 회복되면서 다시 사회가 활성화되는 것이 좋은 측면도 있지만, 또다시 경쟁 사회로 내몰리게 된다는 불안감도 있는 것 같다"며 "이자율은 오르고 물가는 상승하고 삶의 실질 소득은 떨어지는데, 일상 회복이 되면서 지원은 줄어든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구에 대한 국가의 맞춤식 지원과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부모가 없이도 아이가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라는 믿음이 있다면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제 위기 속에서 이런 가정에 대한 국가의 세심한 관찰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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