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만명 불법대출 내몰릴 위기, KDI "법정최고금리 시장금리와 연동해야"
법정 최고금리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시장금리에 따라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리가 더 오르면 100만 명 가까운 사람이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전망과 함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6일 발간한 ‘금리 인상기에 취약계층을 포용하기 위한 법정 최고금리 운용 방안’ 연구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연구를 맡은 김미루 KDI 연구위원은 “법정 최고금리가 현재 연 20% 수준으로 고정돼 있는 상황에서 조달금리가 상승하게 되면 법정 최고금리와 근접한 수준으로 대출을 받던 가구가 제2금융권에서 더 이상 대출 받지 못하고 대부업이나 비제도권 금융시장으로 밀려날 수 있다”며 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KDI 분석에 따르면 연 이자율이 4%를 밑도는 저금리 신용대출을 이용하고 있는 가구 가운데 소득이 하위 40%(1~2분위) 수준이거나 신용 평점이 하위 20%(700점 이하)인 취약 가구 비율은 올해 6월 기준 8.9%에 그쳤다. 반면 법정 최고금리나 그에 가까운 연 18~20% 고금리 신용대출을 받은 가구 대부분(84.8%)이 저소득ㆍ저신용 취약 가구였다. 고금리 대출 이용 가구 중 절반 가까이(48.6%)는 여러 종류의 빚을 중복해서 지고 있는 다중 채무자였다.
카드ㆍ캐피털ㆍ저축은행 같은 2금융권은 법정 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 이자로 대출을 해주고 있다. 이들 금융사가 시장에서 돈을 조달할 때 부담하는 금리(조달금리)는 기준금리 상승 등에 따라 빠르게 오르고 있다. 2금융권 조달금리에 해당하는 카드채ㆍ기타금융채 금리(AA+, 3년물)는 올 6월 말 기준 연 4.45%로 1년 전 1.8%와 비교해 배 이상 뛰었다. 지난해 2배가 넘는 이자를 주고 대출에 쓸 돈을 끌어오고 있다는 의미다.
카드ㆍ캐피털ㆍ저축은행 등에서 조달금리 상승, 수익 감소 등을 이유로 저소득ㆍ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꺼릴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 김 연구위원은 “(저소득ㆍ저신용 채무자가) 조달금리 상승으로 시장에서 배제가 되고 추가적인 롤오버(채무 상환 만기 연장)가 제약되게 되면 다중채무자이기 때문에 연체가 타 금융권까지 전파될 수가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KDI 연구 결과를 보면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조달금리가 추가로 1%포인트 더 오르면 지난해 말 기준 2금융권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 중 약 97만 명이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날 수 있다. 이들이 지고 있는 신용대출 규모는 약 9조4000억원이다. 다른 대출까지 합치면 49조6000억원(추산)에 이른다. 이미 한국은행은 물가 상승에 따라 하반기 금리 추가 인상을 예고하고 있어 KDI의 이런 전망은 곧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빚을 많이 진 사람의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당장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는 것도 해결책이 못 된다. KDI 연구 결과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연 20%에서 18%로 2%포인트 인하하면 약 65만9000명이 2금융권의 대출 거절로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난다. 이들이 지고 있는 다른 채무까지 합쳐 최대 33조2000억원 연체도 발생할 수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 폭이 커지면 피해도 함께 불어난다. 현 20%에서 16%로 4%포인트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면 약 108만4000명이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고 최대 55조3000억원 연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KDI는 전망했다.
KDI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제도를 제시했다. 지금처럼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를 정하지 말고 시장금리에 따라 자동으로 오르내리게 하자는 얘기다. 김 연구위원은 “벤치마크(지표) 금리 수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변동하는 즉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각각의 대출을 종류별로, 그룹별로 나눈 다음 각각의 그룹에 대해 이번 분기에 시장 평균 금리가 어느 정도였는지 산정하고, 그 시장 평균 금리의 1.33배를 법정 최고금리로 중앙은행에서 고시하게 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다만 지금과 같은 금리 인상기에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제도를 도입하면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연구위원은 “이런 상환 부담 증가가 취약가구에게는 부담이 분명히 될 수 있다”며 ▶만기 연장을 통한 월 상환 부담 축소 ▶정책 금융 ▶재정을 통한 보조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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