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만명 불법대출 내몰릴 위기, KDI "법정최고금리 시장금리와 연동해야"

조현숙 2022. 7. 2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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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한 대부업체와 저축은행 건물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뉴스1

법정 최고금리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시장금리에 따라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리가 더 오르면 100만 명 가까운 사람이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전망과 함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6일 발간한 ‘금리 인상기에 취약계층을 포용하기 위한 법정 최고금리 운용 방안’ 연구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연구를 맡은 김미루 KDI 연구위원은 “법정 최고금리가 현재 연 20% 수준으로 고정돼 있는 상황에서 조달금리가 상승하게 되면 법정 최고금리와 근접한 수준으로 대출을 받던 가구가 제2금융권에서 더 이상 대출 받지 못하고 대부업이나 비제도권 금융시장으로 밀려날 수 있다”며 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KDI 분석에 따르면 연 이자율이 4%를 밑도는 저금리 신용대출을 이용하고 있는 가구 가운데 소득이 하위 40%(1~2분위) 수준이거나 신용 평점이 하위 20%(700점 이하)인 취약 가구 비율은 올해 6월 기준 8.9%에 그쳤다. 반면 법정 최고금리나 그에 가까운 연 18~20% 고금리 신용대출을 받은 가구 대부분(84.8%)이 저소득ㆍ저신용 취약 가구였다. 고금리 대출 이용 가구 중 절반 가까이(48.6%)는 여러 종류의 빚을 중복해서 지고 있는 다중 채무자였다.

카드ㆍ캐피털ㆍ저축은행 같은 2금융권은 법정 최고금리에 근접한 수준 이자로 대출을 해주고 있다. 이들 금융사가 시장에서 돈을 조달할 때 부담하는 금리(조달금리)는 기준금리 상승 등에 따라 빠르게 오르고 있다. 2금융권 조달금리에 해당하는 카드채ㆍ기타금융채 금리(AA+, 3년물)는 올 6월 말 기준 연 4.45%로 1년 전 1.8%와 비교해 배 이상 뛰었다. 지난해 2배가 넘는 이자를 주고 대출에 쓸 돈을 끌어오고 있다는 의미다.

카드ㆍ캐피털ㆍ저축은행 등에서 조달금리 상승, 수익 감소 등을 이유로 저소득ㆍ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꺼릴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 김 연구위원은 “(저소득ㆍ저신용 채무자가) 조달금리 상승으로 시장에서 배제가 되고 추가적인 롤오버(채무 상환 만기 연장)가 제약되게 되면 다중채무자이기 때문에 연체가 타 금융권까지 전파될 수가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KDI 연구 결과를 보면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조달금리가 추가로 1%포인트 더 오르면 지난해 말 기준 2금융권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 중 약 97만 명이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날 수 있다. 이들이 지고 있는 신용대출 규모는 약 9조4000억원이다. 다른 대출까지 합치면 49조6000억원(추산)에 이른다. 이미 한국은행은 물가 상승에 따라 하반기 금리 추가 인상을 예고하고 있어 KDI의 이런 전망은 곧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빚을 많이 진 사람의 사정이 어렵다고 해서 당장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는 것도 해결책이 못 된다. KDI 연구 결과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연 20%에서 18%로 2%포인트 인하하면 약 65만9000명이 2금융권의 대출 거절로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난다. 이들이 지고 있는 다른 채무까지 합쳐 최대 33조2000억원 연체도 발생할 수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 폭이 커지면 피해도 함께 불어난다. 현 20%에서 16%로 4%포인트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면 약 108만4000명이 대부업이나 불법 사금융에 내몰리고 최대 55조3000억원 연체가 발생할 수 있다고 KDI는 전망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이 26일 정부세종청사 제1공용브리핑실에서 브리핑 하고 있다. 연합뉴스


KDI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제도를 제시했다. 지금처럼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를 정하지 말고 시장금리에 따라 자동으로 오르내리게 하자는 얘기다. 김 연구위원은 “벤치마크(지표) 금리 수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변동하는 즉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각각의 대출을 종류별로, 그룹별로 나눈 다음 각각의 그룹에 대해 이번 분기에 시장 평균 금리가 어느 정도였는지 산정하고, 그 시장 평균 금리의 1.33배를 법정 최고금리로 중앙은행에서 고시하게 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등 일부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다만 지금과 같은 금리 인상기에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제도를 도입하면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연구위원은 “이런 상환 부담 증가가 취약가구에게는 부담이 분명히 될 수 있다”며 ▶만기 연장을 통한 월 상환 부담 축소 ▶정책 금융 ▶재정을 통한 보조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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