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역사의 뿌리는 어디..문체부·문화재청 충돌

이종길 2022. 7. 2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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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경복궁 후원 성격 물리 탐사..기초 조사도 준비
문체부, 문화예술 전시장 활용 발표..문화재청 노조 반발
견해차는 청와대 뿌리 인식, 박보균 장관 이승만부터 재조명 무게
문화재청은 1000년 역사에 주목..문화재 지정 방안 적극 모색
1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이 본관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개방 행사는 오는 22일까지 온라인 신청 당첨자만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6차례에 걸쳐 6500명씩 매일 3만9000명이 관람할 수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고려는 개국하며 삼경(三京)을 뒀다. 개경(개성), 서경(평양), 동경(경주). 문종은 동경이 개경과 멀어 1068년 남경을 지정했다. 지금의 청와대 자리다. 숙종은 수도 이전까지 고민했다. 술사(術士) 김위제의 남경 천도 상소를 진지하게 검토했다. 직접 행차해 지세를 둘러보고, 이궁(왕이 거둥할 때 머무르던 별궁)을 건립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이곳에 새 궁궐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터가 좁아 조금 더 남쪽에 있는 평지에 경복궁을 세웠다.

세종은 빈터를 경복궁 후원으로 조성했다. 당시 건립된 서현정, 취로정, 관저전, 충순당 등은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고종은 창덕궁 후원을 본떠 복원에 나섰다. 현 상춘재와 녹지원 인근에 융문당, 융무당, 춘안당 등을 세웠다. 현 영빈관 인근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논밭인 팔도배미와 재당인 경농재를 마련했다. 실체는 일제강점기에 사라져 파악할 수 없다. 청와대가 대통령 거처로 쓰여 현장 조사조차 불가했다.

지난 5월 청와대 개방은 역사를 거슬러 오를 단초다. 문화재청은 땅속 유물 유무 여부를 파악하는 물리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역사·문화 가치를 파악하는 기초 조사도 준비한다. 경복궁 후원 보존·활용 방안을 검토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다. 약 4개월간 진행해 보존·관리 계획을 수립하고자 한다.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청와대 본관과 관저 일부 공간을 문화예술 전시장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역사 문화 공간, 수목원, 조각공원 등의 조성도 예고했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청와대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처럼 프리미엄 전시 공간으로 만들겠다"면서 "문체부에서 전반적인 운영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청와대는 문화재청이 청와대국민개방추진단을 꾸려 관리한다. 향후 운영 주체를 두고 문체부와 논의한 적은 없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문화재청지부는 지난 25일 논평을 내고 "현 관리주체인 문화재청을 사전 논의에서 배제한 게 아니냐. 소위 상위 부처라고 해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아닌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두 기관의 견해차는 청와대 뿌리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한다. 문화재청은 남경으로 지정된 약 1000년 전, 문체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을 바라본다. 후자는 본관 터 등을 대통령의 리더십, 삶 등 상징적 공간으로 꾸미겠다는 계획에서 확인된다. 문체부는 관련 사업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철거된 구 본관 터(조선 총독 관저)의 모형 복원을 포함해 진통을 겪었다. 박 장관은 "정부 수립은 물론 6·25 전쟁, 산업화, 민주화의 고뇌를 함께한 대통령의 문화 흔적"이라고 강조했다.

박 장관은 중앙일보 기자 시절 칼럼에 비슷한 주장을 여러 번 펼쳤다. 그는 2020년 기고에 "문재인 정권에서 이승만의 서사는 고난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하수인'이란 프레임이 작동한다. 그것은 치사한 비방이다. 진실은 반대다. 그는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의 성취는 저항의 결실이다"라고 썼다. 2011년 칼럼에는 "4·19 세대가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독점할 수 없다. 이승만 생애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역사적 상상력을 차단해선 안 된다. 다수의 젊은 세대는 균형 감각을 가지려 한다"고 적었다.

두 역사는 함께 부각될 수 없을까. 문화재 전문가 A씨는 "청와대 구조물을 헐거나 새로 세우지 않는다면 크게 부딪힐 일은 없다"면서도 "문체부가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너무 서두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는 대통령 공간으로서도 중요하지만, 1000년의 역사가 담긴 곳"이라며 "국민에게 이를 더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화재 전문가 B씨도 "문체부는 문화재청의 학술 성과를 지켜보고 계획을 구상해도 늦지 않다"며 "연내 마무리될 기초 조사 결과까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체부가 속력을 내니 문화재청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문화재 분과위원회는 25일 청와대 구역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보존할 수 있는 문화재 지정방안을 분과위원회별로 적극 모색하기로 결의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필요시 합동 분과를 구성해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문화재가 지정되면 문체부 계획에는 차질이 생긴다. 녹지원에 마련하려고 하는 조각공원이 대표적인 예다. 인근에는 나무 120여 종과 역대 대통령의 기념식수가 있다. 많은 학자는 일대가 200~300년 전 숲의 원형의 갖췄다는 점에서 학술·자연사·지리학적으로 중요하며 희귀·고유성도 갖췄다고 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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