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절규 외면해선 안 돼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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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배]
▲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6월 22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 바닥에 가로세로 1미터 크기의 철판을 붙여 만든 공간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
ⓒ 금속노조 |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이 51일 만에 타결됐다. 보수 성향 매체들은 정부가 법과 원칙을 강조한 덕택에 불법 파업 사태를 조기 종식할 수 있었다는 판에 박힌 보도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정부와 이들의 자가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업이 남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따로 있었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가로 세로 높이 1미터의 철제 상자 속에 31일 동안 자신을 가뒀던 유최안 금속노조 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써 내려간 글귀는 눈빛만큼이나 형형했다. 180cm의 거한이 제대로 다리를 뻗을 수조차 없는 공간. 그렇게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조선소는 일반적인 노동환경과는 차이가 너무 큽니다. 20년 동안 조선소에서 용접을 했는데 끊임없이 사람을 구하고, 구한 사람은 적응 못 하고 나가죠. 조선소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그런 부분 어려움, 고통을 모릅니다... 이렇게까지 해도 노동자들의 요구 수용이 안 된다면, 국민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지난 21일 자 <한겨레>의 유 부지회장 인터뷰 중)
18년 경력에 최저시급 9160원
월 200만 원을 손에 넣기 위해 이들은 조선소 내에서도 가장 힘에 부친 중노동을 한다. 코로나 대유행과 조선업 불황의 여파로 임금이 30%나 깎였다가 다시 수주 회복의 시기를 맞았으나 정작 이들의 몫을 챙겨주려는 경영진은 없다. 너무나 부당해서 이대로 살 수는 없다며 노동자의 권리라 하는 단결권, 파업권에 기대어 보려 해도 '불법'이란다. 남의 사업장에서 하청받아 일하는 이들에겐 최소한의 권리 주장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법과 원칙에 의한 엄정한 처리를 강조한다. 정부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내세우는 법과 원칙의 테두리 내에 하청 노동자가 발을 들일 공간은 없다. 그저 이방인일 뿐이다. 같은 인간이지만 노예로, 하인으로, 비정규직으로 그렇게 대접받는다.
대우조선해양에서 18년째 일하는 김화영(60)씨는 올해 4월까지 최저시급 9160원을 받고 일했다. 롤러대를 잡고 페인트칠을 하는 그의 손은 마디마디 굽었다. 18년째 철판을 다듬는 일을 하는 한성빈(47, 가명)씨는 두 손목의 통증이 너무 심해 산업재해 인정을 받아 수술을 했다. 그러나 요양급여가 턱없이 부족해 요양에 필요한 3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현장에 복귀했다.(지난 19일 자 <매일노동뉴스> '최저임금 받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굽은 손가락' 인용)
업체를 옮길 때마다 이들에겐 최저 시급이 적용된다. 이번 파업에 참여한 하청지회 조합원은 불과 150여 명이지만 이들이 속한 업체는 21곳에 이른다. 하청업체가 영세하니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도 열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불황이 되면 정규직보다 먼저 해고되지만, 경기가 호전돼도 그 수혜를 받을 수 없는 이들이 하청 노동자들이다. 그나마 정부도 그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5일 대통령 지시 사항이라며 원·하청 상생방안 마련을 통해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양극화 해소에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제 전반의 운영을 책임지는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법과 원칙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건 일면 불가피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토릭'의 이면에 실질적으로 하청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이중구조 시정을 향한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노동자들이 갈 곳을 잃고 불법 파업에 나설 수 없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 말이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조선하청지회가 만들어진 것은 2017년이지만 파업에 이르는 동력을 얻게 된 건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일상적인 저임금과 체불, 고용 불안 등이 가중되면서 노동자들이 서로의 어깨를 걸고 뭉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청업체들로부터 월급이나 사회보험료를 떼이는 불법의 피해도 고스란히 이들 몫이었다.
"밑에서는 얘기해도 아무도 안 들어주더라구요. 올라가면 누구라도 들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올라갔죠."
▲ 김중배 / 소셜 코리아 책임편집위원 |
ⓒ 김중배 |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김중배는 <소셜 코리아>의 책임편집위원을 맡고 있으며, 민간 독립연구소 LAB2050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 기자로 17년간 재직하면서 주로 정치와 국제, 문화, 미디어 영역을 취재했다. 정당과 미디어 혁신에 관심이 많다. 인터뷰집 <성남 사람들 이야기>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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