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도 아니고 폭우에.. 대한민국 군인 60명이 죽었다
[우희철 기자]
▲ 1996년 7월 26일부터 이틀간 내린 비로 중부지역 군부대에서 60명의 장병이 희생됐다. 당시 한겨레신문의 7월 28일자 보도 |
ⓒ 한겨레신문 |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전쟁을 제외하고 단일 군 사고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안장된 건 어떤 사건일까.
많은 사람이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해상에서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희생된 46명의 장병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 군은 더 많은 군인의 희생을 치른 적이 있다.
1996년 7월 26일부터 27일까지 강원도 철원, 연천, 화천 일대 등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전국 각지의 군부대에서 60명의 장병이 희생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1996년 7월 26일 오전 4시 25분경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에 있는 5사단 29연대 2대대 주둔지 뒤에 위치한 해발 265m, 경사 20도의 무명고지에서 전날 오후 9시부터 밤새 내린 비로 산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약 1100톤의 토사가 제1 내무반과 제2 내무반을 덮치면서 잠자고 있던 이완희 병장 등 21명의 군인이 몰사했다.
이 부대에는 구릉 지역에 3채의 막사가 계단식으로 설치돼 있는데 맨 위쪽의 본부중대 막사가 흙더미에 무너지고 바로 아래에 있던 통신중대 막사를 차례로 덮쳐 피해가 발생했다.
군은 사고 직후 굴착기, 페이로더 등 중장비와 공병대 등을 동원해 긴급 구조에 나섰다. 하지만 사고현장 부근 용강천이 범람하는 바람에 현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경기도 연천으로 우회해 장비를 투입하는 바람에 구조가 2시간 이상 늦어져 인명피해가 커졌다.
같은 날인 26일 오전 6시 경기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에 위치한 5사단 군인관사에서는 수송담당관 오명신 중사(29)가 관사를 돌며 군인가족을 대피시키던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고, 오후 8시에는 6사단 GOP에서 화기소대장 이종우 중위가 산사태로 순직했다.
7월 27일 오전 4시 반에는 6사단 7연대 3대대에서 넘어진 철책선을 일으켜 세우다 산사태로 임상효 중위와 김덕만 상병, 오찬동 상병이 숨졌다. 이어 오전 5시 30분에는 강원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에 위치한 15사단에서 산사태가 공병중대, 수송중대, 보병중대 막사를 덮쳐 57여 명이 매몰됐다. 이중 공병중대에서 권종구 상사, 권순호 일병 등 8명이 숨졌고 보병중대에서 5명이 목숨을 잃었다.
▲ 1996년 7월 폭우로 발생한 산사태 등으로 순직한 병사들이 국립대전현충원 1-119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
ⓒ 우희철 |
사고는 공군부대에서도 일어났다. 오전 6시 강원 화천군 상서면 대성산에 위치한 레이더 기지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당시 배수로 작업을 하던 15명 중 박한성 병장, 엄현상 병장, 권영걸 상병이 매몰돼 순직했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군인들의 유해는 1996년 7월 30일부터 국립대전현충원 장병1-119묘역과 장병1-205 묘역에서 차례로 안장됐다.
6사단 소속 이종우 소위(1-205-2043)와 5사단 소속 오명신 중사(장병1-119-7721)를 시작으로 김철우 병장(장병1-119-7722) 등 27명의 안장식이 7월 30일 하루 동안 거행됐고, 31일에는 15사단 소속 정용섭 이병(1-119-7763)을 비롯해 16명의 안장식이 거행됐다. 이후에도 시신을 찾을 때마다 8월 1일, 8월 2일, 8월 13일, 8월 27일, 9월 20일까지 간헐적으로 안장식이 열렸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선 소대장으로 부임한 지 2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임항식 소위는 실종된 채 시신을 찾지 못하다가 이듬해인 1997년 5월 27일 206 묘역 2249에 뒤늦게 안장됐다.
이틀간의 폭우로 전국 6개 부대 11곳에서 산사태 등의 사고가 발생했고 사망자와 실종자는 모두 60명이었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봉안된 5사단 소속 김준모 일병 등 4명을 제외한 56명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 대전국립현충원 제1장병묘역 119묘역에는 1996년 7월 26일과 27일 한 날 한 시에 순직했다는 묘비가 3열로 늘어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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