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판 변경 전에 사자"..고가 법인차 '불티'
새 정부 법인차 '연두색 번호판' 공약 시행 전 수요 몰려
고가 수입차 시장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고유가에 카플레이션(자동차+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며 자동차 소비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가운데, 나홀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판매 대부분이 법인차인 것으로 나타나 윤석열 정부의 '법인차 연두색 번호판' 공약 시행 전 출고를 서두르는 것으로 풀이된다.
25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1억원 이상 고가의 수입차 판매량은 3만4055대로 전년(3만3741대) 대비 소폭 성장했다.
같은 기간 수입차 전체 판매량이 총 13만1009대로 전년과 비교해 11.3% 뒷걸음질 친 것과 비교되는 현상이다. 이에 고가 수입차의 시장점유율은 작년 상반기 22.8%에서 올해 25.9%로 3.1%P 상승했다.
고가 수입차의 성장을 주도한 것은 법인차였다. 대표적인 고가 브랜드 벤틀리의 경우 올해 상반기 총 343대가 팔렸는데, 이중 법인 구매가 264건(76.9%)으로 집계됐다. 람보르기니도 올해 6월까지 판매 대수가 총 148대로 이중 무려 83.7%(124대)가 법인차였다. 롤스로이스 역시 같은 기간 총 119대를 판매했는데 이중 개인 판매는 9대에 그쳤지만, 법인 판매는 110대로 집계됐다.
고가 수입차에 법인 구매가 몰리는 이유는 '세제 혜택' 때문이다.
법인차의 경우 구매비와 보험료, 유류비 등을 모두 법인이 부담한다. 업무용 차량 경비는 연간 최대 800만원까지 인정받을 수 있고, 운행 기록부를 작성하면 최대 1500만원까지 경비 처리를 할 수 있다.
다만 법인 자금으로 산 차량을 개인 용도로 이용하면 업무상 횡령, 혹은 배임 혐의 등을 적용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법인차를 사적으로 유용해도 이를 막거나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당선 전 법인차의 번호판 색상을 일반차와 달리해 '구분'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법인차 번호판을 연두색 등으로 처리해 탈세 등에 악용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업계 일부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연두색 번호판 공략이 올 상반기 고가 법인차 수요를 늘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장 법인 명의로 차량을 구매하면 연두색 번호판 공약이 시행되더라도 별도의 번호판 교체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국내 자동차 번호판은 과거 녹색 바탕에 지역 표기가 있던 것에서부터, 지역 표기를 지운 녹색 번호판, 그리고 흰색 바탕의 번호판 등으로 몇 차례 변경이 이뤄진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1980년대나 1990년대에 발급받은 지역 번호판을 달고 도로를 주행하는 차량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새롭게 생산되는 차량에 장착되는 번호판 규정은 변경됐으나, 앞서 발급받은 차량 번호판에 대해서까지 소급 적용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색깔이 다른 번호판을 받게 되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새 정부의 공약이 시행되기 전 법인차를 구매하지 않으면 연두색 번호판 법인차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높아지며 상반기 고가 수입 법인차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올 하반기에도 고가 수입차의 법인 구매는 늘어날 전망이다. 연두색 번호판 교체의 경우 ‘자동차 등록번호판 등의 기준에 관한 고시’를 개정하면 되는데 국토교통부가 개정 시점을 내년 3월로 정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현재 법인차 번호판 교체에 대한 연구용역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용역 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번호판에 대한 CCTV, 단속 카메라 등 카메라테스트를 한다는 계획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등록번호판 고시 개정전까지는 고가 수입차 법인 구매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일부 고가 브랜드에서는 수요가 급증해 출고 대기가 4년까지 걸린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안민구 기자 amg9@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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