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 부사관은 왜 죽었나.. 군대 움직임이 수상하다 [김형남의 갑을,병정]
[김형남 기자]
지난 7월 19일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여군 부사관이 관사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20비행단은 1년 전 고 이예람 중사가 사망하였던 부대이기도 해서 세간의 관심이 높았다. 자연스레 개정 군사법원법과 군인권보호관 출범에 따라 변화한 군 사망사건 처리 절차도 주목을 받았다. 둘 다 7월 1일 자로 발효된 제도다.
개정 군사법원법의 핵심은 ▲ 사망 사건의 원인이 된 범죄 ▲ 성범죄 ▲ 입대 전에 범한 죄, 이렇게 세 가지 죄의 수사와 재판을 민간으로 이전하는 데 있다. 세 가지 범죄에 해당하는 피의자는 신분이 군인일지라도 관할이 민간 경찰, 검찰, 법원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이는 지난해 상급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던 고 이예람 중사가 피해 사실을 군 수사기관에 신고하였는데도 가해자 감싸기, 2차 가해 방치, 부실·지연 수사로 이 중사가 사망에 이르게 되자 군사법원과 군검찰, 군사경찰이 공정한 사법·수사기관으로 온전히 기능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이루어진 변화다.
당초 국회는 군사범죄가 아닌 일반 범죄 전체의 관할을 민간으로 이전하는 방향을 검토하였으나 국방부가 거세게 반대했다. 그래서 타협한 결과가 개정 군사법원법이다.
수사기록 못준다는 군
이에 따라 지난 19일 20비에서 발생한 변사 사건 수사에는 다양한 수사 주체들이 참여했다. 현장 감식과 검시 현장에는 공군 군사경찰, 군검찰은 물론 충남지방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와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소속의 검사, 사망사건 수사 입회가 가능해진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 소속 직원들도 있었다.
오후 5시경에 시작된 현장 감식과 검시는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마무리 되었다. 제도가 바뀐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수사 주체가 많아 혼란스러워 보이는 감이 없지 않았으나, 군이 아닌 민간 수사기관이 함께 입회했다는 점에서 유가족들의 불안한 마음은 일부 해소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군사법원법 개정에 따라 마련된 대통령령인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민간 검사와 경찰은 군검사, 군사경찰에 변사 사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사망 사건의 원인이 된 범죄'는 관할이 민간에 있는 만큼, 변사 사건 수사 과정을 살펴 범죄 혐의점에 대한 의견을 군에 제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다.
▲ 공군 여성 부사관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이 발생한 충남 서산 공군 20전투비행단 정문에서 9일 병사들이 출입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2021.6.9 |
ⓒ 연합뉴스 |
문제는 7월 1일 제도 변화 이후 발생한 변사 사건 일체에 대해 군 수사기관이 민간에 수사 기록을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대검찰청이 국방부에 자료를 공유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으나 국방부가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국방부는 현장 감식이나 검시 등에 민간 검경을 참여하게 해주었으면 그걸로 된 것이지 수사 기록까지 공유해 주기는 곤란하다는 태도다.
범죄 혐의점에 대한 판단과 민간으로의 사건 이첩 여부는 전적으로 군의 몫이고, 민간 검·경은 군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범죄 혐의점에 대한 민간 검경의 의견 제출 절차는 요식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사망 원인은 군이 판단
사실 이러한 문제 상황은 이미 입법 단계에서부터 예견된 바 있다. 군사법원법 개정을 둘러싸고 국방부와 국회가 부랴부랴 졸속으로 타협점을 찾은 탓이 크다. 당시 인권단체와 전문가들은 '사망 사건'이 아닌 '사망 사건의 원인이 된 범죄'를 민간으로 관할 이전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애초에 군사법원법을 개정하게 된 취지는 군의 제식구 감싸기와 사건 은폐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사망 사건의 범죄 혐의점 판단 주체를 군에 쥐여주면 민간 검경은 군이 던져준 사건만 처리해야 하는 모양새가 되어 입법 취지가 내용은 없고 뼈대만 남게 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던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애매한 입법 탓에 수사 절차만 더 복잡해지고 '공정한 수사'라는 본래의 목적은 뒷전이 되어버린 셈이다.
일례로 개정된 군사법원법을 고 이예람 중사 사건에 대입해 보면 입법이 얼마나 엉망으로 된 것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중사 사건의 핵심 이슈 중 하나는 사건 발생 직후 공군이 국방부에 사망자가 성추행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점이었다. 성추행, 2차 가해, 부실 수사 등의 문제는 피해자 유가족이 사건을 공론화하지 않았다면 영영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개정 군사법원법을 적용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망의 원인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주체가 여전히 군이기 때문이다. 군이 이 중사의 사망 원인을 성추행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버리면 사건 관할은 그대로 군에 남게 된다. 이 중사 사건을 계기로 법률을 개정했는데, 실상 별반 달라진 것은 없는 셈이다.
사망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범죄 혐의점과 사망 사실을 분리하는 것은 군의 수사·재판 과정에서 종종 나타나는 고질적 병폐 중 하나다. 2013년 육군에서 발생한 여군 대위 성추행 피해 사망 사건의 1심 재판에서 군사법원은 피해자의 사망과 성추행 범죄를 분리해 가해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황당한 전례를 남긴 바 있다. 판결문에는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2016년 육군 전방 GP에서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 행위로 극단적 선택에 이른 사건의 경우에도 군사법원은 사망과 구타와 가혹 행위를 분리해 가해자들을 단순 폭행범 수준으로 가볍게 처벌한 바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자고 군사법원법을 개정한 것인데 엉뚱한 입법으로 법률의 개정 취지가 완전히 무시되어 버린 것이다.
제도의 허점으로 고통받는 것은 결국 피해자 유가족이다.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주도하여 검찰과 경찰, 법무부와 국방부 등 유관 부처 간에 벌어지고 있는 혼란스러운 줄다리기를 매듭짓고 공정한 사건 수사를 위해 필요한 제반 협의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입법기관의 성찰과 보완 입법 논의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애초에 범죄를 선별하여 민간으로 관할을 이전하는 것부터가 우스운 일이었다. 평시에 비군사범죄 전체의 수사, 재판 관할을 민간으로 이전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다시 군사법원법 개정 논의를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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