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추장 레시피 금고에 보관..대구 '단맵의 제왕'은?

김윤호 2022. 7. 2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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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나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이 대구를 찾으면 대부분 맛집이 모인 맛 ‘골목’에서 한 끼 식사를 즐기고 떠난다. 그만큼 대구엔 향토 맛집이 모인 맛 골목이 많다. 맛 골목 중에서도 서구에 있는 반고개 ‘무침회’ 골목은 유명 인사들이 꾸준히 찾는 대표 맛 골목이다. 2019년 3월 대구를 찾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대구 시내 한 행사장을 찾았다가, 점심때 반고개 무침회 골목으로 자리를 옮겨 매콤달콤한 무침회 한 접시를 즐겼다. “맛있다”는 칭찬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분 좋게 반고개를 떠났다고 한다.

대구 10미 중 여름을 대표하는 ‘차고 달고 매운’ 음식인 무침회. 무침회의 주재료는 삶은 오징어다. 무채 등과 함께 초고추장에 비벼 먹으면 매콤함·달콤함이 일품이다. 김윤호 기자

무침회는 ‘대구 10미(味)’로 꼽히는 10가지 향토 음식 중 하나다. 따로국밥·뭉티기·동인동찜갈비·논메기매운탕·복어불고기·누른국수·야끼우동·납작만두·막창구이 등과 함께다. 회무침이 아닌 무침회라는 재밌는 이름에 더해, 대구 10가지 맛 중에서 여름을 대표하는 ‘차고 달고 매운’ 음식이어서 최근 몸값이 더 올라가고 있다. 무침회는 ‘다양한 식재료를 (숙)회와 함께 무쳐서 내는 음식’이란 뜻이다. 생선회 중심으로 무쳐서 내는 다른 지역 방식과 차이가 있다.

무침회는 삶은 오징어가 주재료다. 여기에 삶은 우렁이·소라, 싱싱한 무채·미나리를 더해 매운 초고추장에 쓱쓱 비벼 먹는다. 매콤함·달콤함을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대구 10미의 대표적인 여름 맛이자, ‘단맵 제왕’으로도 불린다.

젊은 층 입맛에도 잘 맞다. 이른바 ‘콜라보(collaboration)’가 가능한 향토 음식이기 때문이다. 대구에만 있는 고소한 ‘납작만두’에 무침회를 싸서 크게 한입 먹거나, 무침회 양념에 밥을 슬며시 넣어 김 가루와 참기름, 계란찜으로 비벼 먹으면 ‘단맵’에서 ‘단짠(달고 짠)’으로 무침회 맛이 일순간 변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실제 무침회를 주문하면 야채 쌈 옆에 콜라보를 위해 납작만두가 함께 구워져 나온다.

대구에서 무침회가 등장한 배경은 내륙도시라는 지리적 특성이 반영돼 있다. 대구는 바다가 없다. 산으로 둘린 곳이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도시 특성상 신선한 회를 맛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침회 식당들이 모인 ‘반고개 무침회 골목’에 가면 오징어 조형물도 만날 수 있다. 김윤호 기자

과거 냉동·냉장 시설이 발달하기 전 대구까지 횟감을 가져와도 금방 상해 배탈이 잦았다고 한다. 결국 맛있는 회 맛을 보기 위해 등장한 게 무침회다. 오징어를 살짝 데쳐 채소와 함께 양념에 버무려서 먹는 요리법이다.

무침회는 무침회 식당이 몰린 ‘반고개 무침회 골목’이 그 출발지다. 반고개 주변으로 무침회 식당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로 전해진다. 당시 반고개 한편에 서민들이 술 한잔 나누는 실비집 ‘진주식당’이 있었다. 이곳에서 막걸리 안주로 무침회를 처음 내놓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처음 무침회 맛을 본 또 다른 식당 주인이 ‘단맵’에 반해 요리법을 배웠단다. 그러곤 인근에 무침회 식당을 직접 차렸다. 이어 이 식당을 찾은 이들이 또 “맛있다”며 무침회를 배워서, 하나둘 자연스럽게 인근 반고개 골목 일반 식당들 모두 무침회를 취급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오전 찾은 반고개 무침회 골목. 오징어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무침회 골목이라고 쓰인 간판을 끼고 길이 300m쯤 되는 2차선 골목으로 들어서자, 무침회 전문점 10여곳이 눈에 띄었다. 평일 이른 시간이지만, 식당은 손님맞이로 분주했다.

더우면 화끈한 음식이 생각난다. ‘푸른회식당’의 납작만두. 무침회와 함께 먹는다. [중앙포토]

36년째 골목에서 무침회를 판매 중인 푸른회식당은 음식 준비로 바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찾았던 바로 그 식당이다. 식당 옆 자체 공장에선 오징어와 소라 등을 큰 솥에서 삶아내고, 식당 내 주방에선 무를 썰고, 야채 쌈을 씻고 있었다. 한편에선 고소한 납작만두를 연신 구워냈다.

김명희(67) 대표는 “무침회 맛의 비법은 초고추장인데, 식당마다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각각 만들어 쓴다”며 “골목 식당이 다 비슷한 생김새의 무침회를 내지만, 식당마다 초고추장 맛이 다르다. 그 차이에서 식당 단골이 정해지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2대째 경영을 맡은 김 대표의 아들은 “우리 식당의 초고추장 레시피는 별도의 금고에 보관할 만큼 소중한 집안의 보물이다. 매콤·달콤·새콤을 더해 ‘3콤 맛’을 자부하는 대구 최고의 무침회를 만드는 비법이다”고 설명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등장한 무침회는 여전히 서민 음식이다. 무침회 식당 메뉴판을 보니, 4인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무침회 ‘대’ 사이즈가 2만3000원이었다. 오징어 등 삶 은 해물만 400g이 들어가는 양이다. 2인이 먹을 수 있는 ‘소’ 사이즈는 1만8000원이다. 브랜드 치킨 한 마리 값이 안 된다.

무더운 여름. 화끈하고 시원한 음식을 찾는 탓일까. 무침회는 최근 각종 방송 음식프로그램에 ‘맛있는 음식’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셀럽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맛있다고 평가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택배 등으로 대구 무침회를 사다 먹는다. 포털사이트에서 ‘대구 무침회’만 검색해도 수십 개의 판매처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과 중국 방송국에서도 무침회 취재를 위해 반고개 무침회 골목을 찾아올 정도다.

무침회는 대구 10미와 함께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전국 18개 휴게소에서 정식 메뉴로 대구 10미를 판매 중인데, 무침회는 고속도로 칠곡휴게소 상행선과 하행선 휴게소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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