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단에 특명 내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적시 경영'으로 시가총액 제값 받아라"

배준희 2022. 7. 2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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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생/ 아오야마가쿠인대 경제학부/ 컬럼비아대 MBA/ 1990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입사/ 2004년 롯데 정책본부장/ 2011년 롯데그룹 회장(현)
“매출, 영업이익 등 단기 실적 개선에 매몰되면 더 큰 위기가 찾아올 겁니다.”

지난 7월 14일 시그니엘 부산에서 열린 롯데의 하반기 가치창조회의(VCM·옛 사장단회의)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7)은 이렇게 말했다. 그룹 사장단에 변화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롯데그룹의 ‘경영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엔데믹 체제 전환 직후 억눌렸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변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 현상에 실물경제는 수요 둔화를 넘어 침체 공포가 확산 중이다. 복합 위기에 대한 우려감은 신 회장이 주재한 롯데그룹의 VCM 회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는 신 회장을 비롯해 송용덕·이동우 롯데지주 대표, 4개 사업군(HQ) 총괄대표, 각 계열사 대표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신 회장은 사장단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독려하려 맨 뒷자리에서 회의를 바라봤다.

신 회장은 ‘적시 경영’으로 복합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그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Right thing)을 적시(Right time)에 실행해줄 것”을 강조했다.

특히 기업가치를 측정하는 지표로 시가총액을 강조한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국내 5대 그룹의 총수가 계열사 사장단에 시가총액을 적극 살피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이례적이다. 지금까지 국내 대기업집단은 유형자산 중심의 재계 서열을 관리하는 데 주력해왔다. 롯데 역시 그랬다. 하지만 자본 시장에서 롯데의 위상은 초라하다. 롯데그룹의 상장사는 쇼핑, 케미칼, 하이마트, 칠성, 제과, 정밀화학, 정보통신, 렌털, 리츠, 지주 등 모두 10개다. 7월 19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그룹 핵심인 롯데쇼핑이 약 5조5400억원, 롯데지주는 3조5500억원 정도다. 특히 롯데쇼핑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2배 수준이다. 롯데쇼핑의 사업가치는커녕 보유 중인 부동산조차도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결국 시장에서는 롯데그룹의 미래 먹거리가 뭔지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자연스레 신 회장은 롯데그룹의 미래전략을 또 다른 화두로 던졌다. 그는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신사업 진행 상황을 직접 챙겼다. 롯데는 향후 5년간 바이오·헬스케어, 모빌리티 등 신사업 분야에 15조2000억원, 기존 사업 부문인 유통·식품·화학 분야에 21조8000억원을 투자한다. 총 37조원 가운데 40%가량이 신사업 부문에 투자된다.

신 회장이 각별히 공을 들이는 신사업은 바이오다. 최근 롯데그룹은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에 공격적으로 나서 주목받는다.

단순 위탁생산이라 할 수 있는 CMO와 달리 CDMO는 신약 개발 단계부터 빅파마와 임상에 참여하다 개발 성공 시 수년간 생산을 도맡는 구조다. 롯데그룹은 최대 1조원을 투자해 국내에 ‘메가플랜트(대형 공장)’를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천 송도와 충북 오송 등이 후보지로 거론된다. 업계는 롯데바이오로직스가 국내에 최대 1조원을 투입할 경우 20만ℓ 규모 생산시설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천 송도에 18만ℓ 규모의 3공장을 짓는 데 약 8000억원을 투자한 것을 기준으로 한 추정이다.

신 회장은 그룹의 주력 사업인 화학과 신성장동력인 바이오 산업에서 요구되는 핵심 역량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보고 적극적인 투자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는 바이오업계에서 후발 주자지만 규모의 경제 실현이 필수적인 CDMO 산업 특성상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는 분석이다.

▶지지부진한 이커머스

▷온라인 중심 발상의 전환 더뎌

특히 이커머스 산업에서 롯데의 존재감이 좀처럼 드러나지 못하는 것은 신 회장을 괴롭히는 숙제다. 롯데는 이커머스 사업 전개 과정에서 뼈아픈 실수를 자초했다.

전략 경영의 대가 알프레드 챈들러 하버드대 교수가 정립한 ‘상황적합성관점(Contingency Perspective)’에 비춰본 롯데의 패착은 이렇다. 챈들러 교수는 상황적합성관점을 ‘Structure follows strategy’라는 유명한 명제로 정리했다. 구조가 전략을 따른다는 의미로, 환경-전략-조직으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3단계를 강조한 것이다. 이는 환경에 적합한 전략이 선택되고 그에 따라 조직이 설계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대다수 기업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거꾸로 조직에 따라 전략을 선택하는 우를 범한다. ‘Structure follows strategy’가 아니라 ‘Strategy follows structure’를 자초한다는 것. 가령, 롯데의 경우 이커머스라는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구조를 재설계하는 순서를 밟은 게 아니라, 오프라인 유통에 최적화된 기존 조직 구조와 인적 자원을 그대로 둔 채 이커머스 전략을 수립, 실행하는 과오를 저질렀다는 것이 전문가 지적이다. 신 회장은 오프라인 영업에서 잔뼈가 굵은 임원들을 데려다 야심 차게 ‘롯데온’을 출범시켰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이베이코리아 출신 나영호 대표를 롯데온의 수장으로 앉히는 등 변화를 주고 있지만 아직 롯데온 성적표는 부진하다. 이커머스 플랫폼이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려면 공급자와 참여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늘어나며 플랫폼의 가치를 상호 증대시키는 교차 네트워크 효과를 키워야 하지만 여전히 롯데온의 플랫폼 전략은 오프라인 유통에 발목이 잡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프라인 유통을 중심에 두고 모든 전략이 시작되다 보니 롯데온 같은 통합몰의 정체성이 모호하고 브랜드 전략도 스텝이 꼬였다는 지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선두 지위를 굳힌 사업자는 중앙 집중적인 대규모 자동화 물류센터를 기반으로 공급자와 소비자 간 신뢰를 두텁게 쌓아 교차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했지만 롯데는 아직도 전략의 중심에 오프라인을 두고 있는 것 같다”며 “롯데가 강조하는 ‘O4O(오프라인을 위한 온라인)’ 전략은 쉽게 말해 어떻게든 오프라인 매장을 쥐어짜겠다는 것인데 기존 오프라인 물류센터의 배송 케파에 아직 여유가 있다 보니 신규 설비투자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라 꼬집었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조직 구조 정비와 인적 자원 쇄신을 통해 기존 주력 사업의 전략을 정비하는 한편, 신사업과 시너지를 내는 데 주력한다. 신사업은 기존 사업의 핵심 역량과 연결성이 높은 분야를 선별해 집중 투자하는 ‘양손잡이 전략’을 펼 계획이다. 이런 전략을 따라 지난해 말 조직 개편 이후 새롭게 출범한 4개 HQ 사업군은 사업 구조 재편과 조직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식품군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메가 브랜드를 육성하고, 가치사슬을 고도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통군은 ‘고객의 첫 번째 쇼핑 목적지’라는 새 비전을 기반으로 조직문화부터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등 사업 전반에 걸쳐 강도 높은 혁신을 추진한다. 화학군은 수소에너지와 전지 소재, 리사이클·바이오 플라스틱 등 신사업 추진 의지를 다졌다. 코로나19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호텔군은 사업 구조 재편과 조직 체질 개선에 적극 나선다.

[배준희 기자 / 일러스트 : 김연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9호 (2022.07.27~2022.08.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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