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 코인 투자 청년 지원?..도덕적 해이 시끌
“금융사는 뭐 땅 파서 장사합니까? 이번 대책 보면 정부가 제공해야 할 복지 정책을 민간에 떠넘기는 분위기입니다. 소상공인 만기 연장, 상환 유예 부담을 왜 금융사가 계속 감내해야 합니까?” (A금융사 대표)
최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125조원+α’ 규모 채무 부담 경감 프로그램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금융위는 7월 중순 제2차 비상경제민생대책회의에서 금융 취약층의 부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책을 발표했다. 이 중 청년 채무조정 지원 관련해서 ‘빚 탕감’을 해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기면서 논란이 일었다.
▶금융 취약층 어떻게 돕나?
▷90일 이상 연체 차주(소상공인) 90% 원금 감면
핵심 쟁점은 ‘청년특례 채무조정 제도’와 소상공인을 위해 조성하는 새출발기금(30조원 규모)에서 불거졌다. 청년특례 채무조정 제도는 빚이 있는 청년이 신용회복위원회를 이용해 이자 감면, 상환 유예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핵심. 최대 3년의 원리금 상환 유예 기간을 부여하고 최장 10년간 원리금을 균등 분할 상환할 수 있게 하며 차주인 협약금융기관이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범위 내에서 3.25%의 이자율을 적용하는 식이다. 1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으며 대상 청년은 34세 이하, 약 4만8000명 정도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제2차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MZ세대가 빚 문제에 잘못 빠지면 평생 고생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인 비용으로 남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차원에서 정책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소상공인 관련해서도 새출발기금을 기반으로 정부는 90일 이상 연체 차주(소상공인)에 대해 최대 90%의 원금 감면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상공인은 은행을 통해 같은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발표도 뒤따랐다. 연체 전이거나 연체 90일 미만 차주에 대해서도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이자 감면 등의 지원책도 펴기로 했다. 참고로 소상공인 대출 잔액은 약 64조원 정도다. 이들은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정부가 만기 연장이나 상환 유예를 받고 있다. 인원으로 따지면 약 48만명 정도가 정부 지원 대상으로 파악된다.
이런 방침이 알려지자 여론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가상자산과 주식 투자에 실패한 2030세대도 있을 텐데 이들 부채까지 국가가 변제해주겠다는 게 온당하냐는 비판이 거세다.
50대 직장인 B씨는 “이럴 거면 뭐 하러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지 모르겠다. 투자라는 것이 손실을 감내하고도 돈 벌겠다는 개인의 행위인데 이자를 아예 감면한다고 나서면 ‘내가 사고 쳐도 나라가 대신 갚아주겠지’라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자영업자 사이에서도 불만은 터져 나온다. 서울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C씨는 “코로나19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대출 이자를 꼬박꼬박 갚아왔다. 그런데 이번 정책을 보면 종전에 잘 갚는 사람에게는 인센티브가 전혀 없다. 이런 논리라면 ‘어려움에 처해야 원금까지 갚아주는구나’라는 인식이 시장에 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정 “빚 탕감 아니다”
▷세금으로 충당도 어불성설
논란이 거세지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물론 여당도 진화에 나섰다.
김주현 위원장은 채무 부담 경감 프로그램 발표 후 얼마 안 돼 다시 기자회견을 자청, 해명에 나섰다.
‘가상자산 투자에 실패한 투자자를 위한 제도’라는 비판에 대해 김 위원장은 “청년 지원 정책은 일부일 뿐이고, 취약계층과 일반 국민을 위한 지원 정책이 모두 포함됐다. 원금 탕감 조치는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고 대출 만기 연장과 금리를 일부 낮춰주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원 대상 청년층도 명확하게 관리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위 측은 청년 신속채무조정은 카드 발급, 신규 대출 등 금융거래에 상당한 제약이 있는 신용점수 하위 20%만을 대상으로 삼았다고 해명했다.
김 위원장은 청년 빚 탕감은 없다고 잘라 말하며 “이번 제도는 별도 지원이 없으면 원금 상환이 어려운 차주에게 천천히 낮은 금리로 원금을 전액 상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취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혈세 낭비 논란과 관련해서도 당정 차원에서 해명이 연일 계속되는 중이다.
정부는 이번 채무 지원 재원으로 125조원 넘는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새출발기금 30조원, 안심전환대출 45조원은 정책금융기관에서 회사채를 발행해 충당하고 정부 예산은 약 4조7000억원 정도로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소상공인 빚 탕감 관련 논란에서 정부 측은 채무조정 주체는 신용회복위원회며 해당 대출을 취급한 금융사가 소상공인 만기 연장·상환 유예를 해주는 개념이라 정부 예산이 따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설명에도 불만이 가라앉지 않고 비판 여론이 더욱 거세지자 여당도 나섰다. 류성걸 국민의힘 물가·민생안정특별위원장은 새출발기금 관련 “부실한 한계 차주가 보유한 채무에 대해 채무자 재산과 소득을 정밀 심사해 상환 능력이 거의 없다고 판단되는 차주에 대해 일정 부분 원금을 조정하고, 상환 일정과 금리도 조정하는 것으로써 원금 조정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여론 수그러들까
▷당정 해명 불구 불만 많아
당정 차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에서는 결국 정부가 할 일(채무 조정)을 민간에 떠넘기는 꼴이라고 불만이 높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은 “이번 정책으로 인해 부실 위험 우려가 줄어든 만큼 금융회사 부담도 줄어든다. 금융기관도 각각의 차주에 대해 어떤 식으로 대처하면 좋을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은행권 관계자는 “신용회복위에서 제외된 자영업자는 은행에서 자율 지원을 하라는데 이는 신(新)관치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자영업자나 담보가 없던 취약계층에 지원은 필요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이자 일부 감면 등이 돼야 하며 원금까지 탕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민 세금으로 대량 탕감하면 세금을 낸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 것이며, 규모가 커진 만큼 형평성과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세금으로 운영되는 파산이나 회생 같은 제도가 있으므로 대규모로 원금 탕감하는 것은 일부 세대나 자영업을 위한 지원 정책으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의 총평이다.
[박수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9호 (2022.07.27~2022.08.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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