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도 쉬었다가는 곳.. 꼭 초승달을 닮았네요
[이승숙 기자]
몇 년 전 이맘때 강화군 불은면 상동암리에서 저어새를 만난 적이 있다. 이른 아침에 삼동암천을 지나가는데 수로에 하얗게 새들이 모여 있었다. 그 속에 저어새도 끼어 있었다. 세계적 희귀조인 저어새를 한두 마리도 아니고 떼로 만나다니... 횡재한 기분이었다.
저어새는 주걱처럼 생긴 부리로 물 밑 바닥을 휘저으며 먹을 것을 얻는다고 '저어새'라는 이름이 붙었다. 2020년 기준, 전 세계 5000여 마리만 확인된 희귀종으로 이 중 4500여 마리가 우리나라에 서식한다고 한다.
멸종위기종 저어새
▲ 강화군 불은면 상동암천에 날아온 새들 |
ⓒ 이승숙 |
▲ 저어새 |
ⓒ 이승숙 |
강화군 화도면 동막해수욕장 인근은 저어새에게 특히 더 중요한 곳이다. 동막해수욕장 근처에 '각시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작은 바위섬이 있는데 저어새들이 깃들어 알을 낳고 품는다.
분오리돈대는 저어새가 깃들어 사는 각시바위를 바라보며 있다. 마니산 줄기가 뻗어 내려오다 바다를 앞에 두고 잠시 숨을 고르다가 조금 더 뻗어나간 언덕 위에 분오리돈대가 있다.
각시바위와 분오리돈대
분오리돈대(分五里墩臺)는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간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돈대로 올라가는 길은 오로지 한 곳 밖에 없다. 바다와 닿아 있는 삼면은 가파른 벼랑이라 접근할 수 없고, 남아있는 한 면, 즉 산이 뻗어 내려온 쪽에서만 올라갈 수 있다. 이런 것만 봐도 분오리돈대는 원래의 목적에 충실한 돈대라고 볼 수 있다.
▲ 분오리돈대와 동막해수욕장 |
ⓒ 문화재청 |
▲ 초승달처럼 생긴 분오리돈대 |
ⓒ 이필완 |
돈대는 강화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그보다는 외적이 바다를 통해 한양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54개 돈대 중 40개에 가까운 돈대가 강화의 동쪽과 북쪽 해안에 촘촘히 들어서 있다. 물길을 타고 한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쪽에 돈대가 더 많은 것으로 봐서 강화도의 돈대는 한양 수호를 위한 방어선이었던 것이다.
모든 돈대가 다 중요했지만 그중 몇몇 돈대는 더 중요했는지 본영인 진무영에서 관할했다. 분오리돈대도 진무영 관할 아래 있었다. 서해에서 강화로 들어오는 초입에 있는 돈대이니 얼마나 중요했을까. 그래서 강화도를 수호하기 위해 만든 군사조직인 진무영(鎭撫營)에서 분오리돈대를 특별 관리했다.
진무영 직할 돈대
지난 6월 하순에 분오리돈대를 찾아갔다. 분오리돈대는 차가 다니는 길에서 직선거리로 30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찾아가기에 아주 좋다. 그러나 언덕을 올라가야 하니 보행이 불편한 분들은 쉽게 오를 수 없겠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바닷가 언덕 위에 돈대가 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니 돌로 쌓은 성벽이 우뚝하게 서있다. 두 길 정도 높이의 성벽은 완고하게 진입을 막는다. 돈대 안으로 들어가려면 돈문(墩門)을 통과하는 길 밖에 없다.
▲ 분오리돈대의 잔존 성벽 높이는 약 3.6m에 달한다. |
ⓒ 이필완 |
▲ 분오리돈대의 문. |
ⓒ 이승숙 |
성벽 위로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동막해수욕장도 마니산도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며 인근의 섬들이 손에 닿을 듯이 가깝다. 아, 그래서 여기에 돈대를 만들었구나. 한양으로 올라가려는 배들을 여기에서 다 파악할 수 있었겠구나.
분오리돈대는 여타의 돈대들과는 달리 생김새가 독특하다. 대개의 돈대들이 네모 모양이거나 둥근 원형인데 반해 이 돈대는 살 찐 초승달 모양이다. 땅의 생김새에 맞춰 돈대를 쌓다보니 그런 모양이 되었을 것이다.
초승달 모양 분오리돈대
돈대 밖으로 나와 성벽을 따라 돌았다. 분오리돈대의 성벽은 숙종 시대의 축성 방식을 잘 보여준다. 조선시대에 쌓은 성곽을 보면 각 시대에 따라 돌을 가공하는 방법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조선 전기의 경우,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했다. 숙종 때는 큰 암반에서 돌을 떼어내서 40~120cm 정도 크기로 반듯하게 가공해서 성벽을 쌓았다. 분오리돈대는 숙종 5년에 축조했으니 성벽을 쌓은 돌 역시 자연석이 아니라 가공한 돌이었다.
▲ 동막해수욕장 솔밭에 있는 함민복 시인의 시비 |
ⓒ 이승숙 |
갯벌은 수평이다. 드넓게 펼쳐진 갯벌과 하늘 모두 높낮이가 없이 수평이다. 세상은 자꾸만 높게 쌓아 올리며 나를 드러내는데 갯벌에서는 그런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딱딱한 문명과 물렁물렁한 갯벌
높게 쌓아올리는 것은 언젠가는 무너져 내린다. 물렁물렁한 갯벌은 그 모든 것을 품어준다. 더러워 보이지만 더럽지 않은 갯벌, 더러움을 정화시켜주는 갯벌이다. 함민복 시인의 수평으로 누워있는 시비는 이런 것을 말하려고 하는 듯이 보였다.
시비에 새겨져 있는 시를 읽어 보았다.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함민복) 전하는 시인의 고언이었다.
▲ 갯벌에 날아온 두루미. 저 멀리 분오리돈대가 보인다. |
ⓒ 이승숙 |
▲ 물이 빠진 동막해수욕장의 갯벌과 저 멀리 보이는 분오리 돈대 |
ⓒ 이승숙 |
분오리돈대에서 갯벌과 저어새와 시를...
천연기념물 205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저어새다. 한때 전 세계에 2천 마리 정도 밖에 확인되지 않아 세계적인 멸종 위기종이었지만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한 꾸준한 노력 덕분에 지금은 5천 마리 이상 서식하고 있는 게 확인되었다. 강화군에서도 저어새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어새는 강화군의 군조(郡鳥)이기도 하다.
분오리돈대 앞 각시바위는 천연기념물인 저어새가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우는 곳이다. 최근에 모니터링 한 결과에 의하면 각시바위에서 약 60여 쌍 정도가 번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부에서는 분오마을을 저어새 생태마을로 선정했다.
세계적 희귀조인 저어새를 만날 수 있는 분오리돈대다. 분오리돈대에 올라 저어새가 깃들어 사는 각시바위도 바라보고 동막해수욕장 소나무 숲에 있는 함민복 시인의 시비도 찾아보자. 물렁물렁한 갯벌을 보며 수직에서 수평으로 마음을 내려 놓아 보자.
<분오리돈대 기본 정보>
-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산185-2
- 별칭 : 칠오지돈대
- 입지 : 분오리 곶의 구릉 정상부에 위치
- 축조 시기 : 1679년(숙종5)
- 규모 : 둘레 - 113m, 잔존 성벽 높이- 3.6m
- 형태 : 초승달 모양
- 문화재 지정여부 : 인천 유형문화재 제36호
- 시설 : 문 1개, 포좌 4개
- 그외 : 갈곶돈대와 1645보(1970m), 송곶돈대와 420보(550m).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강화뉴스'에도 게재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 또 틀렸다... '반도체 15만 양병설'은 헛발질
- 대검찰청 이준 흉상...임은정 검사, 이 사진이 의미심장한 이유
- 기어코 '좌 검찰 우 경찰'... 윤석열 정부 속도전이 위험한 이유
- 응급실에 실려가도 잊을 수 없었던 맛, 따로국밥
- '욕쟁이'와 '바른 생활맨'의 싸움... 이게 목숨까지 걸 일인가
- '강제 징용'이 아니라 '강제 동원'이 올바른 용어다
- 좋은 옷, 좋은 차... 잘나가던 그는 어쩌다 '밥 연대'를 시작했나
- "낙타 바늘귀 통과할 일이어도"... 이탄희, 이동학 지지선언
- 권성동 "경찰 집단행동, 배부른 밥투정" 맹비난
-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 하락세 주춤, 그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