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경비 도입, 경비 인력 부족에 구멍 뚫린 '캠퍼스 보안'
현장 5분 거리 경비 초소 있었으나 정황 파악 못 해
인근 캠퍼스도 상황은 마찬가지
[아시아경제 이서희 인턴기자] 지난 15일 발생한 ‘인하대 성폭행 사망 사건’으로 캠퍼스 내 치안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건 발생 시각, 캠퍼스 내 야간 경비 인력이 4명에 불과했고, 이들이 현장 인근에 있었음에도 경찰 출동 전까지 사건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최근 교정 내 성범죄가 잇따르면서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가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5분 거리에 경비 초소 있었지만, 정황 파악 못 했다
아시아경제가 인하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한 결과,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서 도보 5분 거리에는 학교 경비 인력이 상주하는 통제실이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하대 야간 경비 인력은 총 4명인데, 이들이 대학 본관ㆍ정문ㆍ후문ㆍ도서관 등 4곳에 설치된 통제실에서 교정 내 설치된 CCTV를 모니터링하고, 주기적으로 순찰을 하며 이상 신호를 체크한다.
사건이 발생한 15일에도 통제실에는 경비 인력이 상주하고 있었으나, 이들은 행인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도 사건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사건이 발생한 인하대 제2호관 건물과 60주년 기념 건물 사이에서 가장 가까운 경비 초소는 ‘인하대 후문’으로, 두 곳 사이의 거리는 약 300m, 걸어서 5분 거리에 불과했다.
◆ 인근 대학도 마찬가지…'무인경비 도입, 경비 인력 감축'
이렇게 경비망에 ‘공백’이 발생한 데는 고질적인 인력 부족의 영향이 컸다. 현재 인하대는 전문 보안 업체의 무인경비 시스템에 건물 경비를 맡기고, 총 13명의 경비 인력이 3교대 방식으로 주ㆍ야간 순찰을 하고 있다. 시간대별로 차이는 있지만, 한 팀 당 인력은 최대 4명을 넘지 않는다.
이는 인하대 용현캠퍼스의 면적을 고려하면 매우 부족한 수준이다. 인하대 용현캠퍼스의 면적은 약 9만2000평이다. 단순 계산으로, 경비 인력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순찰 구역이 2만 평이 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인하대 관계자는 “경비 인력이 충분하다곤 볼 수 없다. 10만평에 달하는 교정을 순찰하기엔 매우 부족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확인해보니 인근 대학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천에 위치한 또 다른 A대학교는 전문 보안 업체의 무인경비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경비 인력을 대폭 축소한 탓에 총 경비 인력이 11명에 불과했다. A대학교의 대지 면적은 14만평에 달한다. 오후 11시가 되면 보안 시스템에 따라 교정 내 건물 출입문이 자동으로 통제되지만, 출입문을 강제로 개방하려는 시도 등 뚜렷한 이상 신호가 감지되지 않으면 다음 날 아침까지 순찰하는 인력은 따로 없었다.
이에 대해 A대학교 측은 “11명의 경비 인력이 교대로 CCTV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긴급 출동은 23시 이후에 출입문이 열린다든지 등 이상 신호가 감지될 때만 한다”고 전했다.
서울 주요 대학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울에 있는 B대학교 관계자는 학내 경비 시스템에 대해 “전문 보안 업체의 통합경비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순찰하는 인원은 따로 없지만, 경비 대원이 CCTV를 모니터링하면서 불필요한 문 열림 등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출동한다”고 밝혔다.
◆ 끊이지 않는 교정 내 성범죄…“캠퍼스는 더 이상 안전지대 아냐”
교정 내 성범죄는 꾸준히 느는 추세다.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전국 대학 내 성희롱ㆍ성폭력 발생 현황’에 따르면, 전국 대학 내 성희롱ㆍ성폭력 발생 건수는 2016년 182건에서 2019년 346건으로 늘었다. 3년 새 약 2배 가량으로 증가했다.
이는 미디어를 이용하는 연령이 낮아지고 정보를 습득하는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성범죄 가해 연령이 대폭 낮아진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대검찰청이 지난해 마련한 ‘범죄 분석’을 보면, 전체 성범죄자 가운데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9.6%에 달했다. 성범죄자 세 명 중 한 명이 20대였다는 뜻이다.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도 교정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서울 소재 여대에 재학 중인 김하연씨(24)는 “하루는 밤늦게까지 동아리 방에서 시험공부를 하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나왔는데,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서 있어서 놀랐던 적이 있다”면서 “밤늦게 순찰을 하는 분들도 거의 없어서 가끔은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아무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인천 소재 대학에 다니는 최준기씨(26)도 “캠퍼스가 엄청 넓은 데 비해 구석구석까지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면서 “도서관 뒷길이나 기숙사로 가는 산책로는 저녁 6시만 넘어도 깜깜하다. 거기 순찰하시는 분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캠퍼스 내 성범죄가 아닌 일반적인 성범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인하대 사건이 캠퍼스 안에서 발생한 것은 맞지만, 캠퍼스 안에서 발생했든 바깥에서 발생했든 사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며 “중요한 건 성범죄 가해 연령이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는데, 이를 예방할 만한 교육은 여전히 형식적인 성교육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오 교수는 “지금 초ㆍ중ㆍ고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성교육은 성범죄를 예방하는 측면에선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봐야 한다. 실질적인 성범죄 예방 교육을 할 수 있는 전문 교육 인력을 육성하고,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서희 인턴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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