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0m 쓰나미도 못 넘는 고리원전, 현장 가 보니

권민지 2022. 7.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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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장에서 본 원전 안전
한국수력원자력 고리 원자력본부 전경. 사진=한수원 제공


배를 타고 바다에서 부산 기장군을 둘러보다 보면 우뚝 솟은 4개의 원형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회색 콘크리트 질감의 커다란 구조물이 경관 한 쪽을 차지한다. 1978년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해 최근 국내 최초로 영구 정지한 고리1호기를 비롯한 원전들이 모여 있는 고리원전 전경이다. 고리원전과 바닷가 사이는 직선거리로 200m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발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증기를 식힐 냉각수를 얻기 위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바다에서 바라보면 원전 전경을 어느 정도 살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21일 찾은 고리 원전에서는 고리 1호기와 2호기의 돔 모양만이 빼꼼히 보였다. 고리 1·2호기 앞에는 ‘해안 방벽’이 아파트와 도로를 분리하는 방음벽마냥 높게 설치돼 있다. 높이가 10.0m에 달하는 이 방벽은 두께만도 1.8m나 된다. 아파트 3층 높이인 이 구조물을 넘어설 해일은 한반도에서 지난 1만년 사이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다.

2011년까지만 해도 7.5m 높이였던 고리 1·2호기 해안 방벽은 2012년 증축됐다. 15~50㎝에 불과했던 두께도 3배 이상 대폭 보강했다. 2011년 3월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해일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였다. 사고 발생 이후 8개월 만에 고리원전은 해안 방벽 증축을 결정한 뒤 이듬해 작업을 마무리했다.

후속 조치 56건 중 54건 완료…2024년이면 모두 마무리
24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해안 방벽 증축을 포함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따른 국내 원전 후속 조치 56건 중 54건이 완료됐다. 격납건물 배기 또는 감압설비 설치, 한울 제1발전소 제2보조급수 저장 탱크 설치 등 2가지 조치는 진행 중이다. 이 또한 2024년이면 모두 마무리된다.
한국수력원자력 고리 원자력본부의 고리 1호기와 2호기를 둘러싼 해안방벽. 사진=한수원 제공

특히 해일 피해 예방에 신경을 썼다는 설명이다.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 발생 직후 정상적으로 정지했다. 그러나 뒤이어 원전을 덮친 예기치 않은 해일 때문에 전원이 차단됐다. 비상 발전기까지 모두 침수되면서 냉각수 공급이 끊어졌다. 이는 격납용기 내부에 모여 있던 수소가 폭발하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한수원이 고리원전 해안 방벽 증축을 최우선 조치로 삼은 것도 후쿠시마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 고리원전은 동해안에 위치한 원전 중 가장 낮은 지대에 위치한다. 혹시 해일이 해안 방벽을 넘어올 경우를 대비해 대규모 펌프 시설과 방수문도 설치했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원전 내 전력 공급이 끊이지 않도록 조치했다. 모든 원전 비상 발전기는 침수 방지를 위해 지상으로 옮겼다.

‘만약의 경우’에 대한 대비도 더했다. 해발 39.9m 부지에 설치한 고리원전 통합보관고에는 이동형 비상대응설비가 들어차 있다. 3.2㎿ 대용량 이동형 발전차, 1.0㎿ 소용량 이동형 발전차 등의 장비가 대기 중이다. 고리 원전은 3.2㎿ 대용량 이동형 발전차 2개 확보를 목표로 추가 구매 진행 중이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당시 상황을 상정한 이 조치도 2012년 이후 마련됐다. 동해와 맞닿은 한울원전에도 동일한 시설이 있다.
고리 원전 통합보관고에 구비된 3.2㎿ 대용량 이동형 발전차. 사진=한수원 제공

평소에는 유휴 시설이지만 사고 발생 이후 8시간이 지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부터 시설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1.0㎿ 이동형 발전차가 달려가 원전 필수장비에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이 시작이다. 72시간이 지나도 설비가 복구되지 않을 경우에는 3.2㎿의 대용량 이동형 발전차가 출동한다. 이동형 펌프차는 냉각수 보충을 위해 갖췄다. 설령 모든 냉각 기능이 상실되고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 극한 상황도 대응할 수 있다. 수소가 제거돼 격납용기 내부 수소 폭발을 방지하는 ‘피동형 수소 제거설비’가 설치돼 있다.

규모 7.0 지진에도 끄떡없다
지진 대비도 보강에 보강을 더했다. 지진이 원전 사고로 이어진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없다. 그럼에도 국내 모든 원전에는 ‘지진 자동정지설비’가 설치돼 있다. 규모 6.5 이상 지진이 감지되면 지진 자동정지시스템이 가동돼 제어봉이 낙하하면서 원자로가 정지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만에 하나’ 가능성도 차단하기 위해 추가한 조치다.

고리·월성·한빛·한울 등 설계한 지 오래된 원전들은 내진 성능도 보강했다. 덕분에 설계 당시 규모 6.5의 지진까지만 버틸 수 있었던 국내 원전은 현재 규모 7.0 수준 지진까지도 견딜 수가 있다. 국내에서 규모 7.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것은 1643년이 마지막인 것으로 추정된다. 극한 자연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지와 관련한 ‘스트레스 테스트’도 이미 통과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고문헌 등에 기록된 내용까지 확인해 모든 원전을 대상으로 1만 년 빈도의 자연재해를 기준으로 테스트를 해봤다”고 설명했다.

국내 원전, 日과 구조부터 달라
‘그래도 걱정된다’

일각에서 나오는 우려다. 하지만 구조적 요인을 보면 한국 원전은 일본 원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 성능이 뛰어난 편이다. 국내 원전은 ‘비등경수로 방식’을 쓴 후쿠시마 원전과 달리 ‘가압경수로 방식’을 쓴다. 비등경수로 방식은 원자로 내에서 물을 끓여 발생한 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원자로 내에서 증기가 발생하는만큼 방사능 외부 유출 가능성이 높다. 반면 가압경수로는 원자로와 분리된 증기 발생기에서 터빈을 돌리는 증기가 발생한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방사능 유출 가능성이 적다.

격납용기 내부가 후쿠시마 원전보다 5배 이상 크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압력이 그만큼 낮기 때문에 폭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한수원 관계자는 “격납용기 내에 수소 제거 장치도 갖춰져 있어 수소 농도 조절도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부산=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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