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선장 납치된 지역에 충격..꼼짝않던 가나 움직인 해경 영사
“날벼락 같았어요. 안전하다 생각한 지역이었거든요….”
정복을 입은 경찰관은 14개월 전 악몽 같은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지난해 5월 19일 출근하던 중 한 선사 사장으로부터 한국인 선장이 해적에 피랍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 날이었다. 나이지리아 해적이 가나 수도 아크라 동쪽의 연안 도시인 테마 앞바다를 지나던 참치잡이 어선을 급습해 한국인 선장을 비롯해 선원 5명을 납치한 것이다. 당시 그는 사건 발생 장소가 해양수산부가 고위험해역으로 지정한 해역이 아니란 점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피랍이 발생한 해역 근처인 테마는 가나에서 한국인이 제일 많이 거주하는 도시다.
가나 정부에만 해결을 기대할 순 없었다. 경찰관은 직접 수습에 나섰다. 선사 측, 외교부, 해수부 직원 등과 함께 한국인 선장이 풀려날 방안을 찾아 뛰었다. 갖은 노력 끝에 한국인 선장이 한 달 만에 풀려나던 날 그는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겠다”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고 했다.
해양경찰관으로서 아프리카 가나에서 교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김진균(44) 경감 이야기다. 최근 주 가나 한국대사관 최초의 경찰 영사가 된 그를 지난 23일 보이스톡과 메신저 대화로 만났다.
해적 문제 해결 위해 만들어진 경찰 영사
해적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은 나이지리아에 근거지를 둔 해적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UN 결의에 따라 각국 함대가 동아프리카 해역에 진입하면서 상대적으로 경계가 느슨한 서아프리카로 해적이 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해경이 없는 가나 정부는 항만 위주 경비를 고수했다. 500㎞에 달하는 해안선을 지키는 해군 경비함은 10여척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피해가 속출했다. 지난해 5월 한국인 선장이 탄 참치잡이 어선이 납치됐고, 한 달 뒤엔 기니만에서 한국 선원 4명이 해적에게 붙잡혔다. 2년간 기니만에서 납치된 한국인 선원은 13명에 달한다.
가나 정부 내에선 ‘우리는 소요사태를 겪지 않고 인접국과 특별한 충돌도 없다. 해상경비를 늘리지 않는 건 우리가 평화롭단 증거다’라는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의 마음을 돌려야 했다. 임정택 주 가나 대사가 가나 대통령을 비롯해 10개 부처 장관 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이 김 경감은 군과 경찰 실무자를 한명씩 찾아갔다. 해군 관계자와 타국 대사관 외교관과도 라포(rapport·친밀감과 신뢰 관계)를 쌓아갔다. 응답이 없으면 끝까지 버티는 ‘뻗치기’도 감수했다고 한다. 납치된 배들이 가나에 등록돼있는 만큼 대외적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가나 정부가 해결에 동참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PC 등 기자재를 무상 원조하면서 가나 정부가 한국 선원을 도울 수 있는 동인을 만들었다.
가나 정부가 움직였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지난해 10월부터 한국인 선원이 탑승한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해군을 투입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서아프리카 해역에서 한국인이 피랍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김 경감은 “가나 정부가 한국 대사관의 노력을 인정했다”며 “해적 관련 조치는 외교적 사안이라 상세히 공개하긴 어렵지만, 확실히 안전 측면에서 예전보다 나아졌다”라고 말했다.
최근 김 경감은 주 가나 한국 대사관 경찰 영사로 정식 임명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2년에 걸친 직무파견 동안의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다. 하지만 김 경감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가나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는 데다가 원숭이 두창 감염사례도 12건 발생하면서다. 그는 가나 교민 400여명의 안전을 위해 가나보건청과 소통하면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등 매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다.
2025년 3월까지 가나 교민 곁을 지키는 김 경감은 자신이 가나의 마지막 한국인 경찰 영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해적 때문에 만들어진 자리잖아요. 해적 문제도 풀리고 감염병 상황도 나아지면 경찰 영사가 필요 없어지지 않을까요. 강자엔 당당하고, 약자에겐 따뜻한 경찰 영사가 돼 꼭 그렇게 만들고 싶습니다.” 가나에서의 경찰 영사 2막을 앞둔 김 경감의 간절한 소망이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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