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간호사로 일하면서 사회학을 공부하냐고요?

배고은 2022. 7. 2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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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일중독 사회에서 살아남기

[배고은]

 간호사들은 높은 노동강도로 일합니다.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저는 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 후 학위 논문을 쓰면서 정신과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다들 의아해하며 왜 사회학을 공부하냐고 물어보곤 합니다. 

그때마다 '하루 24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근무지에서 보내는데 어떻게 하면 일터에서 병들지 않고, 노동자가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저 또한 임상간호사로 일한 지 10년 차에 접어드는 노동자이지만, 여전히 보건의료 노동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간호사 이직률 실태조사'(2018년)에 따르면 간호사 이직률은 15.55%(2535명)로 타 직군의 평균 이직률(6.67%)보다 2.3배 더 높습니다. 이러한 높은 이직률의 원인으로 장시간 근무나 높은 업무강도, 그에 수반되지 않는 임금 구조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병동의 경우 응급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특수한 환경이다 보니 휴게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안전보건공단에서 만든 교대 근무자를 위한 조치 사항이 있기는 하지만 법적 제재는 없습니다. 기업 차원에서 휴게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실효성이 없지요.

얼마 전, 책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의 저자로 참여하며 다른 간호사를 인터뷰했습니다. 간호사 교대근무 수당 지급에서의 꼼수에 관한 얘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평균 야간근무시간이 11.5시간이었지만, 주 52시간을 넘기면 안 된다는 이유로 병원이 야간근무시간을 9.5시간으로 등록하고 9.5시간에 대한 임금만 지급했다고 해요. 그 이상의 시간에 대해서는 추가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해당 병원노조의 반발로 야간 수당을 추가 적용하는 선에서 결론이 났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많은 간호사가 업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 없이 환자에 대한 과도한 희생과 봉사를 강요당하고 있음에도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노동 현실은 비단 보건의료인뿐 아닌 다수의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또한 마찬가지일 겁니다.

주 52시간 근무 꼼수에 내재한 노동시스템의 폭력성

주 52시간을 지키기 위해 이런 꼼수를 부르는 기업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적은 고용으로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싶은 기업은 강도 높은 노동을 통해 52시간 상한 적용 이전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적 강제성이 없다면 주 52시간 상한근무제를 지키기 쉽지 않을지도 모르나, 현재는 (예외가 많지만) 그나마 노동시간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지금의 노동시스템은 사람을 희생해서라도 최대의 이익을 내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 있습니다.

시스템의 폭력성은 비단 근무 시간 내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업무가 끝난 뒤에도 직장 내 카톡을 켜놓거나, 회사에서 전화가 올까 휴대폰에서 손을 쉽게 떼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의 폭력성은 왜 계속 유지되는 걸까요? 이러한 불합리한 노동환경에서의 일이란 노동자의 힘만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요? 

일터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지금의 성과 중심 사회에서 표면적인 자유는 집과 직장의 구분 없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영역의 자유로 인해 더 많은 일 중독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수많은 질문들이 다시금 우리가 일하고 있는 노동 현장의 문제를 되짚어보게 합니다.

노동의 의미: 인간다움을 찾는 것

그야말로 번아웃(burn out)의 시대입니다. 어느 순간 합법적으로 공인된 일 중독에 매몰되어, 노동의 본질을 잊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의료사회학자 지그리스트(Johannes Siegrist)의 말대로 많은 노동자들이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며 언젠가는 정당한 보수나 복지를 염원하고만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노동환경 개선은 '제자리걸음'이고, 자신의 염원을 이룩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건강은 악화될 뿐입니다.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에서 스베냐 플라스푈러(SVENJA FLASSPOHLER)는 오늘날 우리가 탈진할 때까지 일에 매진하는 이유를 묻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한편으로 자유로운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과 사회의 매우 엄격한 규율을 준수해야 합니다. 새로운 강제를 만들어내는 지금의 성과 사회는 노동자들에게 있어 극단적인 피로와 탈진상태를 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특수한 노동자들만이 겪는 경험이 아닙니다.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라면 누구든 이러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노동이 전부인 삶을 살아왔을까요? 스스로를 위한 노동이 아닌 타인을 위한 노동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의 노동자들에게 노동은 어떤 의미일까요?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의 말대로 노동 밖에서의 인간다움을 찾기 위해선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우리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힘(human agency)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선 주변의 변화(노동자들의 연대, 제도적 지원 등)도 함께 동반되어야 합니다. 혼자 기를 써봐도 주변에서의 도움이 없으면 지쳐 나가 떨어지기 마련이죠. 

그런 점에서 우리가 노동자라는 공통점이 현실의 문제에 대해 함구하지 않고, 행동하게 만드는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노동 문제는 무엇인지, 왜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고찰이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제도적 측면에서는 행복한 일터 만들기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동자의 노동권과 건강권은 일을 하는 모두가 보장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입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를 제대로 보장하는 조직에서 일하는 구성원이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심신의 건강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노동을 삶의 전부가 아닌 삶의 일부로써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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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배고은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후원회원이자 간호사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지 일터 7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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