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분류심사원'에서 만난 소녀가 보낸 쪽지 속 절절한 당부
[최원훈 기자]
▲ <소년심판> 스틸컷 |
ⓒ 넷플릭스 |
폭력의 이면
과거 소년원에서 담임을 할 때 우리 반에 승호(가명)라는 소년이 있었다. 당시 17살 정도였고 과묵한 성격에 운동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역도 유망주로 운동을 하다 그만둔 경험이 있어서 키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에 힘이 굉장히 좋았다.
부모는 승호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이혼했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어린 승호와 어머니를 폭행했다. 어머니가 외동인 승호를 혼자서 힘들게 키웠다. 승호는 좋아하는 역도를 하다 코치의 폭력과 부상 등의 이유로 그만둔 후 방황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학대와 운동을 포기한 좌절감으로 분노조절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소년원에 오기 전까지 보호관찰과 소년분류심사원을 거쳤다.
결국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폭행)으로 9호 처분(소년원 6개월)을 받았다. 평소에는 큰 문제없이 소년원의 교육활동과 단체생활에 임했지만, 분노조절이 되지 않을 때는 동료와 시비가 붙어 폭력을 휘두를 때가 종종 있었다.
승호가 소년원에서 퇴원하고 몇 개월 지난 후, 비슷한 시기에 퇴원했던 우리 반 소년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부를 전하던 중 소년이 말했다.
"선생님! 승호 형 소식 들으셨어요?"
"아니. 무슨 일 있니?"
"승호 형, 죽었어요."
"...... 왜?"
"술 마시고 물에 뛰어들어서 죽었대요."
죽음에 관한 소식을 종종 듣는다. 사고로 죽은 아이들, 스스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 마음속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어른들과 사회의 도움과 지지가 필요하다.
'결핍'과 '상처'
예전에 비해 신체적으로 훨씬 성숙했다고는 하지만 요즘 청소년들도 애들이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호기심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웃고 울고 떠드는 마냥 10대들이다. 그중에서 위기청소년은 더 많은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진단하고 보호하는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찾은 것 중 하나는 '결핍'이다.
절도와 오토바이 무면허운전으로 소년부 재판을 앞두고 있는 기훈(가명)이는 태권도 유망주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전국대회에 나갔다. 준결승전이었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발차기를 하려던 순간, 관중석에 앉아있는 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빈틈을 본 상대가 기훈이의 머리에 발차기를 했다. 기훈이는 매트에 쓰러지면서도 그 아주머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대회가 끝난 후 기훈이는 태권도부 합숙소에서 운동을 하던 중 선배들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동기들과 숙소를 이탈했다. 가출 기간 동안 인형뽑기방에서 지폐 교환기를 털었다. 오토바이 폭주를 뛰던 불량교우들과 어울리며 밤거리를 달렸다.
"엄마, 였어요. 제가 아기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아빠는 교도소에 가셨어요. 할머니가 저를 키웠는데, 4살 때인가 제가 하도 보채니까 할머니가 저한테 앨범을 하나 주셨어요. 엄마가 저를 안고 찍은 사진들이 많았어요. 그때부터 매일매일 앨범을 안고 살았어요. 고등학교 들어가서도 운동하다 힘들 때면 엄마 사진을 봤으니까요."
기훈이는 시합이 끝나자마자 관중석으로 뛰어갔다. 엄마를 찾아 체육관을 뛰어다니는데 엄마가 자신과 시합을 했던 소년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앨범에서 수도 없이 봤던 엄마 미소를 눈앞에서 봤지만. 기훈이는 그냥 뒤돌아섰다.
가슴 속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주변의 공감과 지지가 없는 소년들은 그 시간을 여느 또래들보다 더 힘들게 견뎌야 한다. 사회의 무관심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소년들을 교화하기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는 분들에게도 공감과 지지는 필요하다.
▲ 넷플릭스 <소년심판> 스틸컷 |
ⓒ 최원훈 |
소년분류심사원에서 신입반 담임을 할 때다. 손목에 유난히 자해흔이 많았던 진수(가명)를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진수는 폭행 및 공동공갈, 갈취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신입반 교육 기간 동안 수업태도도 좋고 예의바른 태도로 생활했다. 5일 차 되던 날, 진수가 교실에서 과제를 작성하는데 옆자리 동료가 듣기 안 좋은 말을 했다. 진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료에게 큰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교사들이 제지한 후 진수를 상담실로 데리고 가서 안정을 시켰지만, 진수는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했다.
진수의 어머니는 진수가 4살 때 집을 나갔다. 아버지의 음주와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다. 공장에서 2교대로 일하던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둘렀다. 아버지는 어린 진수를 들어서 벽에 던지기까지 했다. 진수와 두 살 위 누나는 어쩌다 아버지가 때리지 않는 날에는 더욱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또래들처럼 유치원을 다니지 못해 한글도 제대로 몰랐다.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남루한 차림이라 아이들이 피했다. 등교 길에 교문앞에 선 진수는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가방을 메고 학교 주변을 맴돌다가 하교 종이 울릴 때 집으로 가기도 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피하기만 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왕따를 당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성적이 좋으면 아이들이 따돌리지 않을 것 같아 죽어라 공부를 한 적도 있었다. 중간고사 성적을 상위권으로 올렸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반에서 제일 힘이 센, 노는 친구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수를 툭툭치면서 괴롭혔다. 머리를 때리면서 "이 엄마 없는 XX야! '라고 욕을 했다. 진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친구를 주먹으로 한 대 때렸다. 친구는 교실 한 가운데 뻗어버렸다.
진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때렸다.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의 일방적인 피해자였던 진수가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노는 선배들이 잘 친다며 진수를 데리고 다녔다. 오토바이 폭주를 뛰고 술집에도 갔다. 후배들에게 돈을 걷어 오라고 협박하여 용돈을 챙기기도 했다.
진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고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고깃집 홀서빙, 건설현장 일용노동, 신문 배달, 택배 물류센터에서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리고 누나의 학원비도 대줬다.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였지만, 나이가 들고 간경화로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챙길 만큼 순한 심성을 가진 진수였다
열심히 살기도 했지만 마음을 잡기가 힘들었다. 가슴 속에 무언가 뜨거운 응어리가 들어앉은 것 같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을 마시고 깨진 소주병으로 손목에 자해를 했다. 팔과 가슴의 문신이 점점 늘어났다. 결국 폭행과 갈취 등으로 소년부 법정에서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되어 상담실에서 나와 마주 앉은 것이다.
상담실의 창문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좋은 추억은 없었니? "
긴 시간동안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얘기하던 17살 진수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5살인가 6살 때였어요. 그날 아빠가 제 손을 잡아줬어요. 손을 잡고 하루 종일 시내를 돌아다녔어요. 놀이공원에 간 것도 아니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간 것도 아닌데 아빠가 제 손을 잡고 걸어 다녀줬어요.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4주 후, 다시 소년부 법정에 선 진수는 9호 처분(소년원 6개월)을 받았다. 진수는 소년원에 가서도 폭력적인 성향을 자주 표출했다. 동료들을 폭행하고 교사의 지도에 불응해서 징계를 많이 받았다.
수많은 진수에게 필요한 것은 정서적인 안정을 위한 수용환경과 전문가들의 보호와 교육, 상담과 치료다. 하지만 인권친화적인 수용환경 조성과 개별처우를 통해 재범을 방지하는 소년범죄예방 정책에 대한 여론의 공감도와 이해도가 너무 낮다.
이들이 성인범으로 진화하면 구치소와 교도소에 수용된다. 출소 후 전자발찌를 채워서 5년, 10년 동안 관리·감독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변화 가능성이 높고 회복 탄력성이 큰 청소년기에 보호처분으로 교화하는 것이 합리적·효율적인 범죄예방정책이 될 수 있다.
주요 국정과제인 '촉법소년'과 '소년범죄' 문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진정성'과 '용기'가 필요하다. 폭력과 범죄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몇 년 전에 소년분류심사원에서 만났던 한 소녀가 쪽지를 보내왔다. 이제는 20대 청년이 되어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안부를 전했다.
"청소년 시기에 나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나쁘다 생각하지 말고, 그 속에 아픔을 들여다 봐주세요. 어른이 되고 난 후에 남에게 준 상처에 미안함을 느끼고 보답하는 멋진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아직도 철없고 못나고 가시에 돋쳐 가시를 세우는 아이들이 넘쳐나지만, 정말 그저 아이이기도 해요. 강한 자만 살아남고 돈 많은 자만 살아남게끔 만들어놓은 대한민국 그 자체를 보며 아이들은 살아가는 방식을 그렇게 찾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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