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빚투했다가 1만원 여관방으로..또 반복된 2030 잔혹사
회사원 이모(38)씨는 지난해 여름 셋째 아이 임신 이야기를 듣고, 목돈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코인 투자를 결심했다. 주식 투자로 모았던 쌈짓돈으로 사들인 코인 가격이 급등하자, 아내 모르게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투자액을 늘렸다.
하지만 올해 초 셋째가 태어나기 전 코인 시장이 급락했고, 초조해진 이씨는 제2금융권에서 1억원가량 신용대출을 받아 코인 선물거래에 나섰다. 시장 상황이 더 나빠지며 신용대출 받은 돈까지 모두 잃고, 금리까지 오르면서 신용대출 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 됐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며 이씨를 내쫓았고, 화난 부모도 받아주지 않았다. 현재 이씨는 하루 1만5000원짜리 여관에서 지내고 있다. 이씨는 “외벌이에 셋째까지 태어나는데 한몫 장만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며 “주변에 온통 큰돈 벌었다는 사람뿐이어서 1년 만에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주식과 코인 투자로 돈을 잃은 C씨(34)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코로나19로 결혼식이 미뤄진 사이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결혼할 때쯤 집도 구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전세자금 전부를 지인들이 추천한 코인과 주식에 나눠 투자했다. 처음엔 주가와 코인이 뛰며 장밋빛 꿈을 꿨지만, 올해 초 시장이 무너지며 전세 자금의 절반 가까이 잃었다.
예비신부와 다툼이 많아졌고 결국 파혼에 이르렀다. 투자 실패에 결혼까지 깨지자 C씨는 우울과 분노에 정신과를 찾게 된 것이다. C씨는 “지난해만 해도 투자를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로, 집값이 그렇게만 오르지 않았더라도 무리해서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도 되지만 무엇보다 크게 느끼는 건 분노”라고 털어놨다.
지난해 주식과 코인의 광풍 속 투자에 나섰던 청년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속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밀어 올린 자산 시장 과열 속 저금리를 레버리지 삼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가, 자산 시장 하락과 금리 인상의 역풍에 휘청대고 있다. '2030세대 금융 잔혹사'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
자산 시장은 그야말로 녹아내렸다. 지난해 6월 3290선까지 치솟았던 코스피는 1년 만에 30%가량 하락했다. 비트코인은 지난해 11월 고점(8270만원)에서 7개월만인 지난달 2200만원대까지주저앉으며 70% 넘게 하락했다. 반면 지난해 8월 0.5%이던 기준금리는 1년여 만에 2.25%까지 인상됐다. 지난달 기준 5대 시중은행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연 5%를 훌쩍 넘어섰다.
위기로 내몰린 청년 투자자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23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내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20대 채무조정 신청자는 7594명으로 투자 광풍이 불기 이전인 2019년(5917명)보다 28.3%나 늘었다.
세대별 증가율을 보면 고령화 등의 원인으로 60대 이상 증가율(31.8%)이 가장 높다. 문제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20대의 채무조정 신청 증가율에 두드러지는 데 있다. 채무조정 신청이 줄어든 40대(-0.7%)를 제외해도 30대(6%)와 50대(4%)와 비교해도 증가 폭이 크다.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채무조정은 신속채무조정을 제외하면 연체 발생 이후에 신청할 수 있다. 따라서 늘어난 숫자는 이미 위기에 처한 청년들인 셈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꾸준히 올라가고, 주식과 코인 등의 가격이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올해 하반기에 20대 채무조정신청자는 더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내 5대 증권사의 연령별 담보부족계좌를 받아 분석한 결과 2030의 비중은 21.3%(6월 24일 기준)에 달했다. 주식담보대출은 주로 주식투자에 익숙한 4050의 전유물이라 여겨졌지만 상당수의 젊은 세대 역시 주식을 담보로 빚을 내는 위험한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본 것이다.
'2030세대의 금융 잔혹사'는 새삼스럽지 않다. 홍춘욱 EAR 리서치대표(전 키움증권 이사)는 “닷컴 버블과 카드 사태 그리고 최근 가상 자산과 주식 시장의 '빚투'까지 투자 광풍의 중심에는 언제나 2030 세대가 있었다”며 “특히 이들은 자본이 없는 탓에 큰 수익을 위해 레버리지를 안고 뛰어들어 더욱 위기에 취약한 특징을 매번 보인다"고 설명했다.
닷컴 버블 당시 금융투자업계에서 일을 시작한 이성수 유니인베스트 대표는 "2000년 초반 닷컴 버블 때도 젊은 투자자들이 카드론을 당겨서 투자하거나 외상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미수 풀베팅'을 하는 걸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고 말했다. 2002년 카드 사태는 소득이 없는 청년층에게 무작위로 카드를 발급해주며, 카드빚에 쫓기는 청년층이 급증하며 사회적 문제가 됐다.
최근의 분위기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청년들의 무분별한 투자→피해와 사회적 위기→국가의 구제'가 시차를 두고 비슷한 패턴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청년 특례 프로그램을 통해 신용 평점 하위 20% 이하인 청년(34세 이하)을 대상으로 최장 3년의 상환 유예 기간을 부여하고, 3.25%의 저금리를 적용하기로 하며 '빚투' 조장 논란 등이 빚어지고 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금융을 필수 과목으로 포함해 학교에서 가르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보니 금융 관련 경험과 지식이 적은 2030세대가 투자 광풍에 더 쉽게 휩쓸리고 투자가 아닌 투기를 하는 모습"이라며 "학교에서부터 금융 교육을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튜브나 투자 커뮤니티 등을 통해 얻은 정보에 빠져 제대로 된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신뢰 회복 등도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신동준 KB증권 WM솔루션총괄본부 상무는 “한국의 경우 개인투자자가 전문가와 금융회사에 대한 불신이 강한 탓에 간접 투자보다 직접투자를 선호한다"며 ”적립식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투자에 대한 경험을 쌓은 뒤 직접 투자에 나서는 방식으로 가는 분위기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주·최현주 기자 kim.yeo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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