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굴러들어온 1300억 제발로 찼다? 쿠팡 투자 무산 왜

김준희 2022. 7. 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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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26일 전북도청에서 박대준(가운데) 쿠팡(주) 신사업부문 대표와 당시 송하진 전북지사(오른쪽), 박성일 완주군수가 완주 물류센터 건립을 위한 MOU를 체결한 뒤 투자 협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전북도


1300억 물류센터 짓기로 했는데…MOU 무산


한국을 대표하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기업 쿠팡㈜이 전북 완주군에 첨단 물류센터를 짓기로 한 계획을 접었다. 쿠팡으로선 지난해 미국 증시 상장 이후 처음 발표한 국내 투자가 무산됐다. 쿠팡과 업무 협약을 맺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자치단체와 정치권은 ‘굴러들어온 복(대규모 투자)을 제 발로 찼다’는 책임론에 휩싸였다.

완주군은 24일 “쿠팡 측이 지난 21일 ‘완주군과 더 이상 물류센터 관련 협상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고 밝혔다. 쿠팡은 지난해 3월 전북도·완주군과 완주 테크노밸리 제2 일반산업단지에 1300억 원을 들여 10만㎡(약 3만 평) 규모의 물류센터를 짓는다는 내용의 양해 각서(MOU)를 체결했다. 올해 착공해 2024년 완공이 목표였다.

쿠팡은 완주에 투자를 결정한 이유로 국내 물류의 ‘로켓배송(24시간 내 배송)’을 위한 중·남부권 중심축 역할과 호남고속도로 익산IC(나들목), 익산 KTX 등이 인접해 교통이 편리한 점 등을 꼽았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하진 전북지사와 박성일 완주군수, 안호영(완주·진안·무주·장수) 국회의원은 “직접 고용 500명, 간접 고용 2500명 등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협약식에 참석한 박대준 쿠팡㈜ 신사업부문 대표도 “뉴욕증시 상장을 통해 유치한 글로벌 자금으로 완주군에 물류센터를 건립해 지역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화답했다.

서울 서초구 한 주차장에 세워진 쿠팡 배송 차량. 연합뉴스


“지역경제 활성화” 홍보…정치권 ‘책임론’


전북도와 완주군은 쿠팡의 물류 거점이 전북에 건설됨에 따라 일자리 창출은 물론 ▶전기차를 활용한 배송 ▶태양광 발전과 에너지 저장 시스템을 통한 충전 및 물류 시설 운영 ▶빅데이터를 활용한 배송 정보 제공 등 다양한 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 기대가 담긴 MOU는 1년 4개월 만에 휴짓조각이 됐다.

쿠팡 물류센터 백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토지 분양가 갈등이 꼽힌다. 완주군과 효성중공업·오에스개발·동서건설·신성건설·한국투자증권 등으로 구성된 특수목적법인(SPC) 완주테크노밸리㈜는 쿠팡 측에 최종적으로 3.3㎡(1평)당 83만5000원을 분양가로 제시했다.

지난해 MOU 체결 당시 논의된 분양가(64만5000원)보다 30%가량 높은 가격이다. 이대로 계약을 맺으면 쿠팡은 애초 예상한 분양가보다 60억 원가량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이에 대해 완주테크노밸리 측은 “금융 이자 등 산단 조성비가 올라가다 보니 손해를 줄이기 위해 2019년 공고된 가격보다 분양가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쿠팡 물류센터 투자 지역. 전북 완주에 물류센터를 짓기로 한 계획은 최근 무산됐다. 사진 쿠팡


쿠팡 “분양가 20만 원 인상…협약 추진 어려워”


지난 4월 완주군이 사전 조율 없이 해당 토지에 대한 일반 분양 공고를 낸 것도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쿠팡 측은 “완주군이 투자 협약상 합의된 토지 분양가보다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하다가 일방적으로 협의 없이 해당 토지에 대한 일반 분양 공고를 냈다”며 “다른 여러 합의 사항도 이행하지 않아 협약을 추진하기 어려워진 데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최근 물가 급등 등 세계 경제가 악화한 데다 주가 하락 등 경영난이 겹쳐 신규 투자에 부담을 느낀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판 아마존’을 꿈꾸는 글로벌 기업이 60억 원 정도의 추가 비용 때문에 1300억 원대 투자를 철회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지난해 쿠팡 매출은 2010년 창사 이래 최대인 184억637만 달러(약 23조9282억 원)로, 1년 전보다 54% 늘었다. 매출 기준으로는 국내 최대 유통업체인 이마트(16조4500억 원)를 넘어섰다.

하지만 적자 폭도 사상 최대로 커졌고, 주가도 내려갔다. 쿠팡의 영업 적자는 14억9396만 달러(약 1조9421억 원)로 전년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지난해 3월 주가는 50달러(약 6만 원)를 기록했지만, 지난 22일(현지 시각)엔 17.64달러(약 2만3000원)로 거래를 마쳤다.

유희태 완주군수. 뉴스1


완주군 “외투기업 보조금 제안…쿠팡 ‘특혜’ 거부”


완주군은 쿠팡을 외투 기업(외국인 투자 기업)으로 보고 분양가 인상에 따른 추가 비용을 군 보조금으로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으나, 쿠팡 측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고, 특혜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했다는 게 완주군 측 설명이다.

완주군 안팎에서는 “특수목적법인 지분을 40% 가진 완주군과 나머지 건설사 간 내부 갈등으로 넉 달가량 대표가 공석인 상태로 이어지다 보니 협상이 지연되고 절충안도 찾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완주군 관계자는 “다각도로 다른 기업을 찾아보는 한편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쿠팡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쿠팡 물류센터 백지화 소식에 지역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김모(73·완주군 삼례읍)씨는 “쿠팡이라는 상징성 있는 기업이 들어오면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침체된 지역 경기도 되살아날 거라고 기대했는데 실망이 크다”며 “(완주군과 전북도가) 이미 오기로 한 기업도 지키지 못하는 판에 다른 기업들은 어떤 수로 유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1차 민선 8기 시·도지사 간담회에 앞서 김관영 전북지사와 악수하고 있다. 뉴스1


김관영 지사 “신뢰 복원…장소 바꿔서라도 쿠팡 설득”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새로 취임한 김관영 전북지사와 유희태 완주군수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 5개 유치를 공약으로 내건 김 지사는 복병을 만나게 됐다.

김 지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산단) 계약 주체가 특수목적법인이기 때문에 완주군이나 전북도가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일단 쿠팡과 신뢰 관계에 금이 간 상황이어서 이 부분을 복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양가가 올라 도저히 (완주는) 안 된다고 하면 (물류센터 건립) 시기와 장소를 바꿔서라도 전북에 꼭 투자할 수 있도록 쿠팡과 지속적으로 얘기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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