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격 직원이 약 팔았다'는 민원, 거짓이었다..무고죄 받은 이유는? [그법알]
[그법알 사건번호 62] ‘무자격 직원이 약 팔았다’는 거짓말로 법정행…무고죄 기준은
유튜브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도움이 되는 약 정보를 얻은 A씨. 지난 2020년 3월 한 약국에 갔다가 국민신문고 홈페이지에 아래 내용이 담긴 글을 하나 썼습니다.
①약국의 약사가 무자격자인 직원으로 하여금 불특정 다수 환자에게 의약품을 팔게 시켰다.
②무자격자 직원은 자신에게 종합감기약 '레드콜 연질캡슐'을 처방하고 판매했다.
③무자격자인 직원의 무지한 처방은 부작용을 유발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A씨의 주장은 진짜였을까요? 보건소가 A씨의 민원을 받고 가 보니, 해당 약국은 애초에 '레드콜 연질캡슐'을 취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A씨는 '레'와 '콜'은 분명히 기억난다면서 약 이름을 '레피콜노즈 연질캡슐'이라고 지목했는데요. 약국은 A씨가 방문한 이후인 2020년 4월에야 이 약을 들여놓았다고 합니다. '레'와 '콜'이 들어간 종합감기약은 당시 이 약국에 없었고, A씨는 이를 구매하지도 않았던 거죠.
수사기관에서는 당시 폐쇄회로(CC)TV도 살펴봤습니다. 영상 속 직원은 물품을 정리하거나 손님들을 약사에게 안내하고 있었고, 의약품을 판매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A씨는 직원이 손님에게 피로해소제를 서비스로 건네는 장면을 보고, 피로해소제도 일반의약품인데 직원이 판매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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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법령은!
먼저 관련 법령을 살펴보겠습니다. 형법 제156조는 다른 사람이 형사처분이나 징계를 받게 할 목적을 갖고 공무소나 공무원에게 허위 사실을 신고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법 조항 속 '상대가 처벌을 받게 할 목적'에 대해 우리 대법원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요? 신고자가 자기가 신고하는 내용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고하는 것도 판례에서는 '고의'로 인정합니다. 자기가 신고하는 내용이 완전히 가짜인 걸 알아야만 고의가 성립하는 건 아니라는 건데요. 또 나의 신고로 상대방이 형사처분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인식만 갖고 있다면,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합니다.
"신고자 입장에서는 신고 내용이 완전 진짜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하는 질문에 대법원은 이렇게 답합니다. 신고자가 알고 있는 객관적인 사실들에 비춰봤을 때, 신고 내용이 거짓일 수 있다는 인식을 아예 할 수가 없었다면 고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데요. 하지만, 신고자가 신고 내용이 거짓일 수 있겠다는 인식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무시한 채 무조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제외합니다.
법원 판단은?
A씨 사례에다 대입해볼까요. 일단 A씨의 국민신문고 신고 내용에 대해 1심 법원은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① (A씨) 약국의 약사가 무자격자인 직원에게 불특정 다수 환자에게 의약품을 팔게 시켰다.
→(재판부 판단) A씨가 이런 지시를 직접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약사와 직원의 진술에 더 신빙성이 인정된다. 약사는 "악의적인 신고가 종종 들어오기 때문에, 직원은 의약외품과 건강기능식품만 판매하고 일반의약품을 처방할 때는 약사와 상담하도록 철저히 교육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② (A씨) 무자격자 직원은 자신에게 종합감기약 '레드콜 연질캡슐'을 처방하고 판매했다.
→(재판부 판단) A씨는 약을 사지 않았고, 해당 약은 약국에서 취급하지 않는다. '레'와 '콜'이 들어간 종합감기약이었다는 A씨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재판부 판단) 만약 직원이 비슷한 약을 판매하려고 했더라도, A씨가 '레드콜 연질캡슐'로 특정해 신고한 건 신고 내용이 가짜일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도 허위 신고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A씨가 약사와 직원이 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더하고 추측·과장한 내용을 마치 직접 확인하고 겪은 사실인 것처럼 신고했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은 A씨가 느끼기에 무성의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에 화가 나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법정에서 A씨가 자신의 범행을 축소·부인하고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에 급급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A씨가 어린 나이의 학생인 점,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 채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항소심 판단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A씨는 아래와 같은 주장을 이어갔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① (A씨) 제품명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긴 했지만, 무자격자인 직원이 약을 팔게 했다는 약사법위반죄가 성립하기에는 큰 문제가 없다.
→(재판부 판단) 직원이 약을 처방하고 판매한 사실이 없는데도 마치 약사가 직원에게 그런 지시를 한 것처럼 신고한 것은 그 자체로 약사법위반죄 성립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사실이다. 제품명과 무관하게 무고죄는 성립한다.
② (A씨) 결국 약을 사지 않았기 때문에 약사와 직원은 약사법위반죄로 처벌받지 않을 것이고, 형사처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무고가 아니다.
→(재판부 판단) A씨가 확정적인 표현을 써가며 민원을 제기한 점, 실제로 보건소가 조사에 나선 점 등을 고려하면 A씨 민원으로 인해 직원과 약사가 처벌받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도 최근 벌금 500만원 형을 확정했습니다. 결국 A씨의 민원은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반하는 허위사실이고, A씨가 자신의 신고 내용이 허위일 수 있다는 걸 알고도 약사와 직원이 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신고한 건 무고죄가 인정된다는 게 법원의 최종 결론이었습니다.
■ 그법알
「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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