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독면 쓰고 하루 2억어치 금 캔다..'노다지' 정체 알고보니
■ 쓰레기사용설명서는...
「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마라. 다시 보면 보물이니"
기후변화의 시대, 쓰레기는 더 이상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재활용·자원화의 중요한 소재입니다. 중앙일보 환경 담당 기자들이 전하는 쓰레기의 모든 것. 나와 지구를 사랑하는 '제로웨이스트' 세대에게 필요한 정보를 직접 따져보고 알려드립니다.
」
휴대전화 같은 전기·전자제품엔 다양한 금속이 포함돼있다. 열을 전달하거나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위해 쓰이는 금, 은, 구리, 팔라듐 등이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 한 대엔 약 0.02g의 금과 0.1g의 은이 들어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금속 수요는 연간 약 90조원 수준인데, 제품이 버려질 때마다 고액의 금속도 함께 폐기물이 된다.
산업 쓰레기에 섞인 금속을 그대로 버려선 안 된단 생각은 36년 전 일본에서 먼저 유행했다. 1986년 일본 도호쿠대(東北大) 선광제련연구소의 난조 미치오 교수가 전기·전자제품 속 금속을 추출하는 '도시광산'(urban mining) 개념을 만들면서부터다. 금속을 재활용하면 그만큼 천연자원 소비가 줄어드는 데다 환경오염까지 최소화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이후 일본 도시광산에서 캔 '재활용 금'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산에서 캐는 천연 금보다 많아졌다.
정부가 인증한 우리나라 도시광산은 지난 6월 말 기준 총 80개다. 우리나라 도시광산은 2009년부터 생겨났다. 미등록 영세업체는 10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09년부터 꾸준히 증가했다. 이들은 지난해 기준 국내에서 버려진 전자제품 속 금속을 20~25%만큼 회수해 기업에 산업원료로 재판매한다. '친환경 자원재생 기업'이라 불리는 도시광산. 그중 한 곳을 직접 가봤다.
2명이 하루 2억원 어치 금 캔다
지난 14일 오후 1시 경기 평택시 현덕면에 위치한 한 공장 건물. 보호 안경, 방독면, 위생모를 쓰고 고무장갑을 낀 작업자들이 창문 모양의 산업 폐기물을 투명한 물에 넣은 채 흔들고 있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버려진 인쇄회로기판(PCB) 테두리를 박리제에 넣는 공정이었다. PCB를 흔들수록 물은 점점 황금빛으로 변했다. 황금빛 물에 특수 약품을 넣자 흙처럼 생긴 금가루가 분리돼 나왔다. 이날 공장에 들어온 산업 폐기물 약 4t에서 추출한 금은 약 2.5㎏, 순도는 99.999%였다. 시가로 1억 8250만 어치다.
공장 반대편엔 터치패드 기술에 사용되는 은, 신용카드 IC칩에 들어가는 팔라듐을 추출하는 시설도 있었다. 중앙엔 순도가 높은 철이나 구리를 녹일 수 있는 용광로도 보였다. 백금(Pt), 로듐(Rh), 니켈(Ni) 등도 각각 위치에서 추출됐다. 추출 작업장 사이사이엔 폐전자기판, 반도체부품과 같은 폐기물이 쌓여있었다. 업체는 지난달 폐기물에서 금속을 약 660억원 어치 추출하고, 잔여 소재를 약 400억원에 팔았다고 했다.
이처럼 폐 전기·전자제품 등 산업 폐기물에서 금속을 추출하여 재활용하는 산업을 도시광산업이라고 한다. 국내에선 시민들이 버린 전자제품이 모이는 전국 12개 회수 거점과 전기·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나온 폐기물이 대부분 도시광산으로 보내진다. 주요 금속을 추출한 뒤 판매하고, 남은 전자기판이나 플라스틱 소재는 각각 재활용이 가능한 가공 공장으로 보내 이익을 얻는 구조다. 도시광산 업체 관계자는 "분리한 모든 금속을 재판매하고 남은 부품과 소재는 재활용이 가능한 곳으로 보낸다. 버려지는 게 하나도 없는 공장"이라고 설명했다.
들어오는 쓰레기 절반이 불량품
경쟁입찰을 거쳐 사들인 산업폐기물은 도시광산에 있는 축구장 절반 크기(약 4000㎡)의 파쇄장에서 선별된다. 대부분 기업에서 산업폐기물을 직접 분리해서 가져다주지만, 규모가 클 경우 도시광산 파쇄장에서 직접 분리한다. 제품 설계 보안이 유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업체에 따르면 도시광산으로 오는 전기·전자제품 폐기물 중 50%는 제조업 공정에서 발생한 불량품, 30%는 공정 중 남게 된 부산물이다. 핸드폰, 세탁기, TV, 냉장고, 반도체기기 부품들이 최대한 분리된 상태로 들어온다. 나머지 20%는 소비자가 사용하고 수거 센터로 버려진 제품이다. 도시광산이 없던 시절엔 소규모 고물상에서 1차적으로 선별되거나 그대로 버려졌던 쓰레기들이다.
경제·환경 다 잡지만, "기술 발전 더 돼야"
업계에선 도시광산업이 경제와 환경을 모두 잡을 수 있는 핵심 산업이라고 말한다. 산업 폐기물을 단순 선별하는 재활용 산업을 넘어, 정제련 공정을 통해 완전한 자원순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희귀금속이나 전자기판이 많이 사용되는 4차 산업 분야의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주목받는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천연자원을 절약하고,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환경오염도 감소시키는 다양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의 도시광산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호황을 누릴 것 같았지만, 산업 폐기물 가격도 함께 오르면서 고비용 구조가 됐다. 최신 전자제품일수록 함유된 희귀금속이 적어 작업 효율성도 떨어지는 추세라고 한다. 나윤호 한국금속재자원사업협회 부회장은 "13년간 꾸준히 성장해왔지만 아직 일본, 유럽에 비해 금속 재활용률이 부족하다. 희귀금속 추출 기술도 더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산업폐기물 속 금속을 재활용하는 일이 국가 경제와 환경을 모두 잡는 중요 사업인 건 변함이 없다"고 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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