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툭튀' 도박꾼 vs 머스크 오른팔..300조 파워게임 승자는 [후후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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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억만장자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최근 전 세계 경기 침체와 글로벌증시 하락에도 불구하고 머스크 개인자산은 무려 2300억 달러(약 300조 원)에 달한다고 알려진다.
이런 머스크의 개인 자산을 활용한 자선사업 프로젝트의 주도권을 놓고 측근들이 벌인 파워게임의 전말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로 드러났다. 머스크의 최고 대리인이자 개인 재산 관리인인 재러드 버찰(48), 그리고 최근 머스크와 급속히 가까워진 러시아 태생의 프로 도박꾼 이고르 쿠르가노프(34)가 두 주인공이다. 이 승부의 최종 승자는 누구였을까. WSJ 보도를 바탕으로 ‘머스크 이너서클’을 들여다보자.
파워게임 두 주인공 가운데 버찰은 머스크의 이너서클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충직한 고정멤버로 꼽힌다. 반면 쿠르가노프는 느닷없이 등장해 머스크의 절친을 넘어 기업 임원의 반열에 오른 신흥 세력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승자는 버찰이다. 머스크를 단번에 매료시켜 자선단체 운영권을 손에 넣은 ‘갑툭튀(갑자기 튀어나오다의 줄임말)’ 쿠르가노프를 지난 5월 해임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를 두고 WSJ는“두 사람의 충돌은 종종 떠들썩했던 머스크 이너서클의 내밀한 상황을 짐작케 한다”고 전했다.
머스크 오른팔, 러시아 출신 '갑툭튀' 축출
사건 전말은 이렇다. 머스크는 전 연인인 캐나다 출신 팝가수 그라임스(클레어 바우처)를 통해 쿠르가노프를 알게 됐다. 그라임스의 절친이 쿠르가노프의 여자친구라, 커플끼리 자주 어울리다 친분을 쌓았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던 2020년엔 아예 쿠르가노프가 머스크의 집에서 숙식하며 밤새 사업 얘기를 나눌 정도로 막역한 사이가 됐다.
쿠르가노프는 긴 머리에 턱수염을 기르고 염세적인 태도를 가진 프로 도박사다. 2012년 몬테카를로에서 열린 포커 대회에서 100만 유로(약 13억3000만원)를 따낸 것을 시작으로, 통산 상금이 1800만 달러(약 240억 원)에 달한다. “대학 재학시절 마리화나를 너무 많이 피워 중퇴했다”고 밝힐 정도로 자유분방하다.
그는 부유층을 상대로 ‘동일한 자산으로 효과가 좋은 기부’를 지원하는 철학적 사회운동단체 ‘효과적 이타주의’도 이끌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기부에도 비용 효율을 따져야 한다는 쿠르가노프의 철학에, 도발적인 성향의 머스크가 매료됐을 것”이라고 봤다. 머스크는 쿠르가노프를 자신의 개인 기부를 총괄하는 최고 고문에 앉히려 했지만, 버찰이 이를 가로막았다.
WSJ는 머스크가 버찰에게 “쿠르가노프에게 자선 기부 사업을 맡겨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버찰이 “그건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고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결국 머스크는 테슬라 주식 57억 달러(약 7조5000억 원)를 희사한 자선단체를 설립해 쿠르가노프에게 전권을 주는 식으로 타협점을 찾으려 했지만, 버찰은 이마저도 반대했다.
WSJ는 쿠르가노프의 전공이 재무·회계·보안 등과 무관하다고 지적하며, “금융전문가이자 완벽주의자인 버찰은 머스크가 ‘근본 없는’ 쿠르가노프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게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단기간에 머스크의 최측근으로 급부상한 러시아 태생인 쿠르가노프를 의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자, 머스크도 어쩔 수 없이 쿠르가노프를 해임한 것으로 봤다.
외신 "버찰, 상사 위해 자기 손 더럽힐 줄 안다"
파워게임에서 승리한 버찰은 머스크의 심복 중의 심복으로 통한다. 외신은 그를 “머스크의 오른팔(the right hand man)”이라 칭해왔다. 스페인 매체 엘에코노미스타는 버찰에 대해 “영화 ‘펄프픽션’에 등장하는 해결사 울프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성향은 머스크와 정반대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버찰에 대해 “지극히 침착하고 차분하며 윤리적이고 예의바른 성격, 신중하고 신뢰할만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우며 공상적인 억만장자(머스크)에게 꼭 필요한 균형추”라고 설명했다. 팟캐스트에서 인터뷰 도중 마리화나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신 머스크와 달리, 독실한 모르몬교 신자인 버찰은 술·담배는 물론 커피조차 입에 대지 않는 금욕적 인물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상사를 위해 자기 손을 더럽힐 수 있다”는 것을 버찰의 강점으로 꼽았다. 이어 “이러한 성향 덕분에 이미 버찰의 역할은 재무 관리를 넘어섰다”고 했다. 2018년 머스크가 트위터에 영국의 구조 잠수사 버논 언스워스를 ‘페도 가이(소아 성애자)’라고 썼다가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자, 버찰은 사립탐정을 고용해 언스워스의 뒷조사를 하는 방식으로 머스크를 도우려 했다. 당시 사립탐정이 그에게 준 정보는 가짜였지만, 해당 소송에서 머스크는 승소했다.
반얀글로벌의 패밀리 오피스 컨설턴트인 데니스 자페는 “개인 자산 관리인들은 종종 상사의 최악의 습관을 지지하게 된다. 버찰이 대표적 케이스”라고 말했다.
NYT "머스크, 전문가 대신 이너서클 의존"
이번 파워게임으로 내밀한 일면이 드러난 머스크의 이너서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머스크의 세계관과 아이디어에 동조하고, 철저한 수행 능력을 가진 매우 고립된 조직”이라고 평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아마존의 전 CEO 제프 베조스, 구글 공동창업주 래리 페이지와 같은 테크업계 억만장자들이 변호사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문 부서를 만들어 회사의 장기 계획을 세우고 업무를 관리하는 것과 달리, 머스크는 사업의 결정적인 순간에 전문가를 피하고 자신이 구축한 이너서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NYT는 이너서클의 핵심 멤버로 버찰 외에 스페이스X의 사장이자 최고운영책임자(COO) 그윈 쇼트웰, 머스크의 동생 킴발 머스크, 머스크의 개인 변호사 알렉스 스피로 등을 꼽았다. 포브스의 ‘2022 가장 부유한 자수성가 여성’으로 선정된 쇼트웰은 “일론이 뭔가 얘기할 때, ‘불가능하다’거나 ‘방법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무조건 길을 찾아라”고 조언한 바 있다. 뉴욕포스트는 그에 대해 “머스크의 맹렬한 충성자”라고 표현했다.
외신은 머스크의 이너서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점점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매체 ‘살롱’은 “가장 부유한 기업가인 머스크가 그리는 미래는 인류 전체의 앞날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만큼, 그의 이너서클을 지켜보는 눈도 많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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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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