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쇼핑몰 약속 5개월뒤.."9000억 달라" 광주에 당황한 與
현직 여당 대표로서 사상 초유의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를 받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3일 광주광역시를 찾았다. 전날 전남 진도에서 주민들과 만나 춤을 추고 ‘무조건’과 ‘네 박자’를 열창하는 등 사흘째 호남 방문을 이어간 것이다.
그는 잠행 중이던 지난 13일에도 페이스북에 광주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땀과 빗물로 뒤범벅돼 흠뻑 젖은 채 광주 무등산 서석대에 오른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는 그러면서 “원래 7월에는 광주에 했던 약속들을 풀어내려고 차근차근 준비 중이었는데 광주시민들께 죄송하다. 조금 늦어질 뿐 잊지 않겠다”고 적었다. 비록 대표 직무가 정지된 상황이지만 지난 3·9 대선 때 자신이 했던 광주 공약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대표가 밝힌 윤석열 대통령의 대표적인 광주 공약은 ‘복합쇼핑몰 유치’였다. 수도권뿐 아니라 웬만한 지역 거점 도시에는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스타필드, 롯데몰과 같은 복합쇼핑몰을 광주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이 대표는 대선 기간이던 지난 2월 16일 페이스북에 “광주시민이 원하는 것에 정당이 맞서면 광주 주민은 그들을 심판할 권리가 있다”며 “광주 시민 여러분이 작년 여론조사에서 58%의 여론으로 갈구하는 대형 쇼핑몰 유치, 윤석열 후보는 공약한다”고 적었다. 같은 날 당시 국민의힘 후보이던 윤 대통령은 광주 거리 유세에서 “광주시민들이 복합쇼핑몰을 아주 간절히 바란다”며 “왜 광주에만 (복합쇼핑몰이) 없느냐. 유치를 누가 반대하느냐. 민주당이 반대해오지 않았느냐”고 직격하기도 했다.
대선 때 윤 대통령, “광주 복합쇼핑몰 유치” 공약
그렇게 5개월이 흐른 뒤인 지난 18일 광주시청에서 열린 국민의힘-광주·전북·전남 예산정책협의회에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복합쇼핑몰 유치 약속을 차질없이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선 국민의힘으로선 예상치 못한 대화가 오갔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강기정 광주시장이 복합쇼핑몰 유치를 위해 디지털 기반 광역통합유통센터 구축 2000억원, 전통시장·상점가 고객 휴식·편익 시설 확대 등 8개 시범지구 조성 1000억원, 트램·도로 등 연결 교통망 구축 6000억원을 포함한 9000억원의 국비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강 시장은 그러면서 “윤 대통령 국정과제와 지역 공약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의힘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권 대행은 “복합쇼핑몰은 기본적으로 민간이 투자해야 한다”며 “국가 주도로 하는 것이 다른 지역과 형평성에 맞는 것인지 등에 대해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갑작스런 9000억원 요청에 난색을 표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지난 2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5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려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해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복합쇼핑몰은 민간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시의 쇼핑몰 유치 계획이) 아직까지는 구체성이 떨어지고, 입지라든가 여러 가지 결정이 된 게 아직은 많지 않아서 (국비 지원 문제를) 아직 언급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석호 광주시당 대변인은 “강기정 시장이 새롭게 당선돼 전국에서 가장 좋은 복합쇼핑몰을 만드는 걸 구상하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민간 기업에서 추진하는 사항까지 개입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국비 지원 문제는) 추후에 논의할 수도 있고, 시간을 갖고 접근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與 내부에선 “강기정의 자기 정치” 의심
국민의힘 내부에선 강 시장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호남 지역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은 “쇼핑몰이 국책기관도 아닌데 9000억원을 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광주에선) 강 시장이 쇼핑몰을 핑계로 자기 공약인 트램 예산을 따려내는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황당한 요구다. 이런 식의 요구는 쇼핑몰 공약을 이용해 자기 정치를 하려는 것”이라며 “오히려 호남 발전에 역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강 시장 입장에선 9000억원을 요구해 국비를 조금이라도 더 지원을 받으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복합쇼핑몰 유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정부가 도와주지 않았다’는 핑계로 유치를 무산시켜도 좋은 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허진·박태인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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