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싸웠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에게 쏟아진 격려
[윤성효 기자]
▲ 7월 22일 오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가 임금협상을 타결지은 뒤 조합원들이 부둥켜 안으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 |
ⓒ 금속노조 |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온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민중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고, 그래도 희망을 품게 했다."
51일간 파업과 31일간 농성을 벌이고 마무리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노동계는 '함께 투쟁해서 승리했다'는 반응이다.
하청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는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지난 22일 사측인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사협의회와 '임금' 협상을 타결지었다.
하청노동자들은 '임금 30% 인상' 등을 요구하며 6월 2일부터 파업, 같은 달 22일부터 유최안 부지회장이 거제옥포조선소 1도크 선박 바닥에 붙은 가로 세로 높이 1미터 철판 안에 스스로 몸을 가둔 이른바 '감옥 농성'을 하고 다른 조합원 6명은 20미터 높이에서 고공 농성을 했다.
또 조합원 3명은 7월 14일부터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산업은행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는 지난 15일부터 매일 교섭을 벌였고, 정회를 거듭한 끝에 어렵게 합의에 이르렀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비공개이고, 임금은 4.5% 인상하기로 했다.
잠정합의안에 대해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찬반 투표에서 전체 129명 가운데 120명이 찬성하고 9명이 반대했다. 찬성률 96%로 가결된 것이다.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합원들이 만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파업은 전국 조선소에서 하청 노동자들이 한 첫 파업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까지 대형조선소에서 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한 사례는 많지만, 비정규직들이 파업하기도 처음이고, 이로 인해 생산 현장(부분)이 멈추기도 처음이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쟁의행위에 대해 조합원 찬반 투표에다 노동위원회의 절차를 거쳐 파업권을 정당하게 확보했다. 따라서 파업 자체는 불법이 아니었다. 다만 파업 과정에서 1도크 선박 농성을 두고 불법 행위 논란이 빚어졌다.
하청노동자들의 이번 파업은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번 파업에 대해 언급할 정도였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두 차례 현장을 찾기도 했다. 또 정부 관련 부처가 담화문을 내기도 했다.
파업·농성 현장은 한때 공권력 투입이 거론되면서 긴장감이 높아졌다. 경찰이 농성 현장의 안전을 위해 대책을 세우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가 현장을 찾았다.
이번 파업은 많은 과제를 남겼다. 우선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1도크 선박 진수를 못해 피해가 많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손해배상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아 있다.
또 '노노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지도 문제다.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 과정에서 일부 정규직들이 거세게 항의하거나 '맞불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들이 가입해 있는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가 민주노총(금속노조)을 탈퇴하는 '조직 변경' 여부를 두고 조합원 찬반 투표를 했다. 지난 22일 오후 진행된 개표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해 마무리 짓지는 못했다.
"이젠 정부와 대우조선해양에 공 넘어가"
이번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 대해 노동계는 어떻게 평가할까. 이김춘택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미약하나마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단체교섭을 해서 회사와 단체 협약을 체결한 게 가장 의미가 크다"고 했다. 그는 또 "국민들에게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힘든 현실에 대해 많이 알려내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했다.
과제에 대해 그는 "원래 우리가 바랐던 임금 인상을 못 했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와 대주주인 산업은행,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에 그 공이 넘어갔다"라며 "조선소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해서 '저임금'에다 '인력난'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이제야말로 정부와 원청이 답해야 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라고 했다.
교섭 현장에 함께했던 안석태 금속노조 경남지부장은 "하청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을 전 사회적으로 쟁점화 해낸 것이 가장 큰 성과다"라며 "조선소 노동자의 삶을 국민들이 알게 되었고 정치권으로 확산됐다. 반드시 제도 개선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금속노조, 민주노총과 함께 진보정당과 시민사회 모두가 연대 투쟁한 것도 큰 성과다"라고 했다. 교섭의 어려움에 대해 그는 "원청이 빠져 있어 어려웠다"라며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나서야 했다. 협력사 대표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갖고 교섭을 하니까 어려웠던 것"이라고 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의 파업 기간에 시민 사회 진영에서는 파업 연대 기금을 모으는 운동이 벌어졌는데 놀랄 만한 성과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급여일인 7월 15일에 조합원 생계를 위해 1인당 50만 원 정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만 명-1만 원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다.
그런데 급여일에 앞서 집계했더니 총 2억 7900만 원이 모였다. 이에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조합원 1인당 150만 원(총 155명)을 개인 통장으로 넣어주었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파업 연대 기금을 정산해서 공개할 예정이다. 이 기금에는 다른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을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 시민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금 모으기 운동을 처음으로 제안했던 이병하 '투쟁하는노동자와함께하는 경남연대' 대표는 "고맙다"라고 했다. 그는 "조선소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단계 구조다. 그것으로 인해 착취가 엄청나고 심각한데, 그런 사실을 이번에 국민들에게 알려낸 계기가 되었다"라고 했다.
이 대표는 "어려운 투쟁이었다.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알고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한다며 시민 사회가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보태주었다"라며 "어려운 사람들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도운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희망을 품게 되었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민중의 마음을 확인한 것도 큰 성과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자본의 갈라치기에 의한 '노노 갈등' 유발이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노동 현장의 투쟁 과정에서 다 있었다"라며 "이번 기회에 활동가들이 더 학습해서 이런 계기로 해서 노동자들이 함께 가야 한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나만 살자는 건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청 노동자들이 투쟁하는데 정규직들이 민주노총 탈퇴를 하니 마니 하는 형태가 앞으로는 정말 있어서는 안된다"라며 "정규직 노조들이 더 체계적으로 정비를 해야 하고, 정말로 함께 살자는 교육을 많이 해야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라고 했다.
김재명 민주노총 경남본부 지도위원은 "이번 대우조선해양 비정규직 투쟁은 물질적 성과보다 정신적 성과를 남긴 투쟁이었다"라며 "코로나19 이후 개별화 되었던 노동자들을 다시 하나로 묶는 투쟁이 되었고, 정권이 '비정규직 제로를 만들겠다'는 말 잔치를 하였지만, 노동 현장의 구석구석에는 수많은 비정규직이 어려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투쟁이었다"라고 했다.
거제시장을 지낸 변광용 더불어민주당 거제지역위원장은 "조선산업은 그간 국가 기간산업으로 대한민국 성장을 주도해왔다. 이제 수주 호황기, 대전환기의 큰 물결과 바람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 세계 친환경 선박 시장을 주도하면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주력 산업으로 건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라고 했다.
▲ 23일 오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진수가 중단된 지 5주 만에 30만 톤급 초대형 원유 운반선이 성공적으로 진수되고 있다. |
ⓒ 대우조선해양 |
거제옥포조선소 1도크는 5주 만에 푸른 바닷물로 가득 찼다. 대우조선해양은 6월 18일 이후 중단됐던 1도크 진수 작업이 5주 만에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고 23일 밝혔다. 이번에 진수된 선박은 30만 톤급 초대형 원유 운반선으로 후반 작업 및 시운전 등을 거쳐 선주에게 인도될 예정이다.
회사는 "창사 이래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배를 물에 띄우는 진수 작업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라며 "22일 하청 노사가 극적으로 합의안에 타결하면서 진수가 이뤄지게 됐다"라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은 "1도크 진수를 시작으로 지연된 공정을 만회하기 위해 여름 휴가 기간에도 상당수 직원들이 출근해 작업을 할 예정"이라며 "지연된 생산 공정을 만회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투입할 예정이다. 납기 일정 준수를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했다.
▲ 23일 오후 거제 대우조선해양 주변에서 진행된 "하청노동자 희망버스". |
ⓒ 민주노총 경남본부 |
▲ 23일 오후 거제 대우조선해양 주변에서 진행된 "하청노동자 희망버스". |
ⓒ 민주노총 경남본부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우범기 전주시장님, '전프리카'는 싫습니다
- 트럭 110대, 선박 120척이 시위한 까닭
- 욕실 천장서 물 뚝뚝... 윗집서 보인 뜻밖의 반응
- 고향 안 떠나려... 월급도 광고도 안 받고 잡지 만드는 젊은이들
- 신윤복 그림에 숨어있는 200년 전 조상들의 피서법
- '조선일보 압색', 조선 또 침묵... 'TV조선 도둑취재' 때와 달랐다
- 자다 죽고, 장파열로 죽고...'장례 전담' 스님이 전한 이주노동자의 죽음
- 70곳으로 늘린다더니… 임시선별검사소 찾기 어렵네
- 통일부 장관 "북 어민 살인 개연성 굉장히 커"
- "기후위기 시대, 인간이 살려면 '자연유산 보존'이 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