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범기 전주시장님, '전프리카'는 싫습니다 [해시태그 #지역]

김나라 2022. 7. 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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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건사업으로 가득한 민선8기 우 시장의 공약.. 전주에서 '마음 놓고' 살고 싶다

[김나라 기자]

부산에서 전세 계약이 끝나는 2023년에 본가가 있는 전주로 이사할 계획이다. 하지만 동거인과 나는 못내 아쉬워하며 얘기하곤 한다. "그래도 부산 공기가 훨씬 좋은데. 부산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데." 부산의 소음에 지쳐서 얼른 전주에 가고 싶다가도 전주의 심각한 미세먼지와 열섬현상을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전주는 분지형 특성이 있는데 더해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바람길을 막아 '인공분지'로 불린다. 그 때문에 10년 전부터 여름 평균 최고기온은 전국 최고 수준으로, 대구의 왕좌를 이어받아 '전프리카(전주+아프리카)'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서쪽에 있어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공기 흐름이 정체되면서 '더스트 돔'을 형성해 대기질이 나쁘다.

다행인 것은 전주가 요즘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시외버스를 타고 본가에 방문할 때면 차창으로 보이는 시가지 풍경이 낯설다. 거리에 나무와 풀이 많아졌고, 틈새 공간이라도 찾아내 자연미 있는 정원으로 조성하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시 전체를 하나의 정원처럼 가꾸고 있었다.
 
▲ 금암분수정원 옆 보행광장 정원도시 사업의 첫 번째 갈래는 도심 공원과 숲길을 특색화하고, 6대 호수를 아름답게 만들며 저수지 주변 녹지를 확대하는 것 등이다. 둘째는 ‘그린 인프라’의 확대. 주요 노선에 가로 숲을 만들고 공공청사의 옥상과 벽면을 녹화하며, 틈새 부지를 공원화 하고 있다.
ⓒ 김나라
 
전주가 갖춘 도시 정체성

전주는 2018년 7월부터 2026년 6월까지 8개년 동안 총 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천만 그루 정원도시 전주 만들기' 사업을 시행 중이다. 이 사업은 전주의 여러 문제점에 대안이 된다. 녹지는 실질적으로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소음을 흡수하며 미세먼지를 저감할 수 있다.

버즘나무(플라타너스, platanus)의 경우, 하루 평균 잎 1㎡당 664kcal의 대기열을 흡수하는데 이는 하루에 15평형 에어컨 8대를 가동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또한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나무 1그루는 연간 35.7g, 즉 에스프레소 1잔 정도 양의 미세먼지를 흡수한다.

정원도시 사업의 장점 중 하나는 한시적인 공공기관 사업 개념을 넘어 지속 가능한 시민문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지자체와 시민들이 함께하는 나무심기, 옥상·벽면 녹화 시민운동, 기업·민간단체 참여 숲 조성, 시민가드너 양성 사업 등 시민·기관·기업이 참여하는 범시민운동이 사업의 한 갈래다.

기온 변화는 더 지켜봐야 하지만, 삭막하던 도시 풍경이 달라지면서 삶의 질이 높아졌다. 이전에 나는 전주에 오면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요즘은 동네 버스정류장 앞에도 작은 녹지가 생기고 보도마다 정원지대가 있어 다닐 맛이 난다. 생활 속에 작은 쉼표들이 있으니 몇 년 전부터 앓는 '시골 살고 싶다 병'도 조금씩 치유되는 기분이다.

사실 이 사업이 모든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전주시가 전주역 앞에 만든 '첫마중길'이라는 가로수길은 교통 흐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설계되어 외곽 지역으로 통근하는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단점이 있다.

정원도시 사업을 이끌었던 김승수 전 전주시장은 임기 중 전주시가 주민의견 검토 없이 고형연료(SRF) 폐기물 소각장 건립을 승인했다. 소각장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 정원도시 사업의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했다. 이미 미세먼지 농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상황에서 소각 분진이 상황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전 시장의 철학은 납득할만한 방향성이 있었다. '사람, 생태, 문화'라는 핵심 가치를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주를 정원도시 외에 '책의 도시'로 선포하고 특색 있는 도서관들을 지은 것도 '전주다움'이라는 철학에 걸맞았다. 조선시대 전국의 출판문화와 기록문화를 선도했던 지역적 특색을 살릴 수 있었고, 도서관의 여유로운 분위기는 전주의 슬로시티(Slow City) 이미지와도 어울렸다.

이달 2일부터 개시한 전주도서관여행은 전국 유일의 도서관 여행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걷고 싶은 도시,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최근에는 전주로 돌아올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전주 출신이라는 자부심도 느꼈다.
 
▲ 연화정도서관 덕진공원 연못 위에 한옥으로 지은 아름다운 도서관이다. 전주시는 이외에도 숲속 작은 집에 시집만 가득한 ‘학산숲속시집도서관’, 2000여권의 여행 관련 책과 독특한 인테리어를 갖추고 한옥마을 근처에 위치해 SNS 핫플레이스가 된 ‘다가여행자도서관’ 등 7개 도서관 중 4-5곳을 돌아볼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 김나라
 
전주에서 '마음 놓고'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달 취임한 민선 8기 우범기 전주 시장이 계획한 공약에서는 '도시의 정체성'을 찾을 수 없었다. 

지난 20일 전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전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범기 전주시장의 공약 실행계획은 사업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며 "철학, 발전 방향, 공간 구성 등에 대해 설득력이 있는 체계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우 시장의 공약은 토건사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미 통행이 원활한 호남제일문 구간에 수천억 원이 드는 지하차도를 건설하는 계획, 옛 대한방직 터에 200층 타워를 짓는 계획, 시의 핵심 부지인 종합경기장에 복합쇼핑몰을 건설하는 계획, 황방산 터널 개설 등이다. 지하차도 건설 공약은 3개나 제시되었다.

확보된 예산 범위에 맞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이러한 정책은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2050년보다도 더 앞당겨야 할 기후 위기 상황에서 시대의 요구를 무시하는 처사다. 종합경기장 시민의 숲 조성을 중단한다는 공약도 전주시의 환경문제를 해결할 대안 없이 제시되었다. 

슬로시티 사업 폐지, 전주비빔밥축제 폐지 등은 전주만의 이미지를 만들어온 사업을 청산하는 방향성을 띤다. 일본풍 다리라는 논란이 있었던 우림교를 아예 일본식으로 삼고, 다른 다리를 각각 중국식, 미국식, 프랑스식, 한옥식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에서 지역성에 대한 인식 부족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전주 시민이 전주에는 돈을 벌 곳도 쓸 곳도 없다고 말한다. 일자리가 적은 전주에 개발은 필요하다(나와 동거인 역시 전주로 이사하면 일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개발 계획은 도시가 병드는 방식이 아니라 오래도록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세워져야 한다. 전주가 난개발로 다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떠안는 일은 생각만 해도 안타깝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정승현 박사는 '스마트 시티'란 첨단기술을 도입한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특색과 해당 도시의 문제를 반영하여 개발하는 도시를 말한다고 했다. 사람이 자기다워야 행복하듯이 도시도 자기다움이 있을 때 지속 가능하다.

그리고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도시 계획이 있을 때 시민들이 '계속 살 수 있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 전주가 마음 놓고 이주해올 만한 도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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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전주MBC에 따르면 전주시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 내용 등을 참고해 공약의 실현 가능 여부를 살피고, 시민 공약 평가단의 자문과 심의를 통해 9월 중 공약 실행계획을 확정한다는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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