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더 문제..'날 것' 드러난 도어스테핑 그만 둘 일 아니다 [뉴스원샷]
대통령의 말은 무겁다. 국가 경영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어서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공개 발언에 신중했다. 참모회의나 국무회의, 각종 회견에서 말을 할땐 대개 미리 준비한 대로 발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정도가 예외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르다. 외부 일정 등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난다. 오전 8시 40~50분쯤 검은색 차량이 대통령실 집무실 현관에 들어서고 경호원이 차 문을 열면, 기자들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가벼운 인사말을 한 뒤 3개 안팎의 질문에 답한다. 이른바 도어스테핑(doorsteppingㆍ약식문답)으로, 용산 집무실의 하루를 여는 풍경이 됐다. 취임 이튿날인 5월 11일 시작한 도어스테핑은 22일까지 모두 서른한 차례 있었다. 취임 70여일 만에 산술적으로 100개 가까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신상품인 도어스테핑을 놓고 최근 말들이 많다. 일부 거친 발언이 문제라는 건데, 30%대로 곤두박질 친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도 꼽힌다. 더불어민주당은 “도어스테핑인지 기자들에게 출근 도장을 찍겠다는 도어스탬핑인지 분간이 안 간다”(박홍근 원내대표)고 비아냥대고, 다수의 여권 인사들도 사석에선 “말씀을 줄이면 좋을 것”이라고 권고한다.
분명히 문제는 있다.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나”(5일),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6월 15일) 같은 발언들이 그렇다. 불편한 질문에 몸을 휙 돌려 가버리는 등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이런 모습이 잦으면 좋을 건 없다.
그러나 문제가 드러나서 맞는 매는 잔 매일 뿐이다. 외려 더 큰 문제가 되는 건 숨거나 숨기려 할 때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숙명이라고는 하나, 역대 대통령의 말로가 대체로 비참했던 건 비밀주의와 엄숙주의 탓도 있다. 다수의 대통령은 필요할 때, 보이고 싶어하는 모습만 보여주려 했다. 대통령의 육성을 듣는 건 일주일에 몇 번 안 됐고, 질문을 받고 답하는 건 더 드물었다. 정제되고 다듬어진 발언에 가려진 대통령의 진짜 생각이 뭔지, 그래서 어떤 원칙으로 국정을 이끌고 현안을 풀어가겠다는 건지 알기 어려웠다.
매일 새벽, 대통령실 참모들은 도어스테핑을 준비한다. 예상 질문을 추리고 답변 자료도 챙긴다. 하지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자료대로 답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날 것’이란 의미다. 이 때문에 가끔은 안 해도 그만인 발언들이 나온다. 굵직한 이슈들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또렷하게 밝혔으면 싶을 때도 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거칠고 때론 감정적일지라도 기자들과 만나 생각 그대로의 메시지를 내는 게 역대 대통령들이 그렇게도 강조했던 '소통'이다. 표정과 걸음걸이조차도 메시지라 하지 않나.
대통령의 말은 무겁다. 무겁다는 게 곧 침묵하란 의미는 아니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라는 의미도 아니다. 현 도어스테핑에 문제가 있다면 고쳐가면 될 일이다. 도어스테핑 자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권호 대통령실 반장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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