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종료했지만..누적피해·손배소 등 과제 산적한 대우조선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초유의 도크(선박건조장) 장기 농성으로 파국으로 치닫을 뻔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 갈등이 일단락됐다. 파업 51일만에 점거 농성이 해제되고 파업 참가 근로자들도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됐지만 파업 기간 막대한 누적 손실을 입은 대우조선해양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또다시 고통의 시간을 마주하게 됐다. 반등의 기회를 잡았지만 수면 위로 부상한 원·하청 구조와 이에 따른 파업 리스크에 놓인 한국 조선업계에도 과제가 주어졌다는 평가다.
◆누적 피해 손실 어떻게?=23일 조선업계에 따루면 전날 노사는 수차례 정회와 교섭을 재개한 끝에 오후 4시15분께 협상을 매듭지었다. 노사는 임금 4.5% 인상에 합의했다. 이 외에 설, 추석 등 명절 휴가비 50만원과 여름휴가비 40만원 지급을 약속했다. 폐업 사업장에 근무했던 조합원 고용 승계 부분은 일부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권수오 대우조선 사내 협력사협의회장은 "전 국민의 관심사고 모든 대우조선 해양과 관계 회사들에 종사하는 생명줄인 대우조선 해양을 51일째 멈춰있는 상태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국민과 종사하는 모든 사원과 가족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며 "51일 동안 파업이 진행됐는데, 저로서는 51개월 진행된 만큼 긴 기간이었고 저희들이 협상을 진행한지도 22일째 밤낮없이 교섭을 해서 오늘 이렇게 잠정 합의안까지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홍지욱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다행히 늦었지만 이렇게 엄중한 사태를 해결하고 원만하게 잠정 합의했음을 국민들에게 보고 드린다"며 "정말로 피를 말리는 상황이었고 찬반 투표 결과 완전 가결을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지난달 2일부터 30% 임금인상, 노조 전임자 인정 등과 같은 요구 조건을 내걸고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달 18일부터는 옥포조선소 1도크를 점거하는 농성 시위를 시작했다. 건조 중인 선박을 점거하는 행위는 노동조합법 시행령상 불법이다.
도크는 선박을 건조하고, 물에 띄우는 작업이 이뤄진다. 이곳이 멈추면 도장·배관·용접 등 다른 생산 라인의 작업도 늦춰지고 건조 마감 시한이 곧 실적으로 연결되는 조선업에는 심각한 타격을 준다. 그간 조선업계 파업이 도크를 점거하는 극단적인 시위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노조가 점거하고 있는 옥포조선소 1도크는 선박 4척 동시 건조가 가능한 축구장 9개 크기로 세계 최대 규모다.
이곳에는 총 4척의 선박이 건조되고 있었는데 지난달 진수 예정이된 유조선 진수는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도크에 물을 채워야 배를 진수할 수 있는데 노조의 점거 농성으로 도크에 바닷물을 채울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이 이번 파업으로 인해 본 피해는 약 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사측은 매일 259억원의 매출 손실과 57억원의 고정비 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파업 노동자 손배소 여전히 미결=대우조선이 손실을 메우기 힘든 것도 손실을 입힌 대상이 하청 노동자라는 데 있다. 이들이 수천억에 이르는 손실을 보상하기도 힘들 뿐더러 여전히 손해배상청구 소송 부제소 문제는 하청 노사에게 미결 과제다.
양측은 파업 과정의 손해배상 문제, 즉 민·형사상 면책 문제에 있어선 합의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측은 불법 파업으로 인해 수천억 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며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불법 파업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으면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고, 사측이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동계는 실제로 배상할 능력이 없는 노동자를 상대로 한 이 같은 행위는 보복 수단이라고 주장해왔다.
손해배상과 관련한 규정은 민법 제750조에 나와 있다.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가 그것이다. 이번 사태의 경우 하청노조 파업의 위법·불법성에 대한 것부터가 논란이다.
노동계는 파업이 합법적인 쟁의행위인 만큼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제33조와 ‘사용자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한 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제3조를 근거로 제시한다.
사측이 소송을 하더라도 많게는 수십·수백억원에 달하는 손해 배상을 할 노동자들이 없다는 점이다. 소송 비용도 감당하기 힘든 근로자들은 전세 자금, 선산 등에 대한 가압류가 이뤄지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향후 피해보상을 어떻게 할 지 여부에 따라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파업 리스크' K-조선, 신뢰 회복도 과제=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는 생산직으로 약 1만6000명이 근무하고 있다. 사내 협력업체 직원은 약 1만1000명이다. 하청 노조에 가입된 400여 명 중 파업에 참여한 이들은 약 120명이고, 현재 1도크에서 점거 농성 중인 인원은 7명이다. 전체 협력업체 직원의 1%에 불과한 이들이 대우조선해양에 수천억 원대 손실을 입히고 있는 것이다.
사내 협력업체들은 줄도산 위기에 직면했다. 사내 협력업체 협의회에 따르면 하청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지난해 사내 협력사 5곳이 폐업했고 올해 6월 3개사, 이번달 4개사가 폐업 중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사내 협력업체가 200여 곳임을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 10분의 1의 기업이줄 폐업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해당 도크의 건조작업 중단으로 납기일이 밀리면서 선주사와 약속한 인도 기간을 맞출 수 없게 됐다는 것은 대우조선해양, 더불어 우리 조선산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긴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 반등의 기회를 잡은 조선업계 전체가 ‘파업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파업으로 드러난 원·하청 노동자의 임금 격차나 처우 등 불합리한 문제는 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업계가 원청→1차 하청→2차 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으로 하청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문제를 겪고 있다. 때문에 수주 절벽을 겪은 지난 5~6년간 조선업은 다른 업종으로 인력 유출이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최근 6년간 사내하청 노동자가 13만명에서 5만7000여명으로 7만명 이상 줄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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