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우물' 또 욕먹는 패션쇼? 생로랑은 다 계산이 있었다

유지연 2022. 7. 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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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기간 잠시 멈춰있었던 패션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르게는 지난봄부터 물리적 패션쇼가 재개된 가운데, 올가을부터는 거의 모든 디자이너 하우스 브랜드가 물리적 패션쇼를 선보일 계획이다.


비대면 끝나고, 물리적 쇼 재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게 되면서 지난 2년간 디지털 패션쇼가 업계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는 듯 보였다. 아예 무대도 없이 새로운 의상을 입은 모델을 활용한 영상물을 촬영해 배포하기도 하고, 무대에 모델을 세우되 관객을 초대하지 않거나 최소화한 뒤 유튜브 등 디지털 채널로 쇼를 중계하는 식이었다.
샤넬 2015 가을겨울 쇼. 슈퍼마켓이 무대로 펼쳐졌다. [사진 샤넬]

패션쇼는 많은 자원이 들어가는 비싼 이벤트다. 장소를 섭외해 화려한 세트를 세우고, 세계적 모델을 한 데 불러 모아야 하며, 고가의 소품을 사용하기도 한다. 리허설과 본 쇼를 위한 대기 공간을 꾸리고, 관객이 있는 쇼의 경우 전 세계에서 유명인들을 비행기로 나르기도 한다. 최근엔 쇼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세트 제작 및 장소 선정에 큰 비용을 쓰는 흐름도 있었다.

샤넬은 쇼장에 거대한 슈퍼마켓을 만들기도 했고, 화려한 레스토랑을 꾸며 모델이 옷을 입고 그사이를 돌아다니도록 연출하기도 했다. 사막이나 숲 등 야외 공간을 활용한 쇼도 흔했다. 루이비통은 2016년 크루즈 컬렉션 쇼를 위해 350여명의 스텝과 모델, 관객들을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의 사막 한가운데로 이동시켰다. 디올도 2018 크루즈 쇼로 미국 샌타모니카를 낙점, 사막에 무대를 만들고 열기구를 띄웠다.

미국 산타모니카의 사막에 열기구를 띄운 디올의 2018 크루즈 쇼. [사진 디올]

사막 위의 세트, 탄소 중립적으로


지속가능성이 패션 업계의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패션쇼의 효용에 대한 의문도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5월 파리 패션위크를 맞아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루이비통 패션쇼에는 환경운동가들이 난입해 패션 산업으로 인한 환경 파괴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패션 레볼루션’의 오르솔라 데 카스트로 공동 설립자는 보그 비즈니스에 “만드는 데 6개월이 걸리는 20분짜리 이벤트는 지속 불가능하다”며 패션쇼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5월 루이비통 패션쇼에 난입한 멸종 반란의 시위. [사진 멸종 반란 페이스북]


패션 업계가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면서 조금씩 변화도 감지된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모로코 마라케시 인근 아가파이 사막에서 치러진 생로랑 2023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은 탄소 중립 패션쇼로 치러졌다.

황량한 사막과 둥근 우물, 거대한 원반 모양의 설치물 사이로 흩날리는 운무는 극적이면서도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안토니바카렐로 생로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북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미국 소설가 폴 볼스의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에서 영감을 받아 영국의 미술감독 에스 데블린과 함께 제작한 무대다.

생로랑은 모로코 마라케시 인근의 사막에 초현실적 무대를 선보였다. [사진 생로랑]


사막에 없는 우물도 만들었으니 환경오염이 걱정될 법하지만, 해당 무대는 행사 전 탄소 배출량을 모두 계산해 상쇄할 수 있도록 만든 탄소 중립 세트장이었다. 생로랑에 따르면 재료와 장비도 가능한 임대 했으며, 임대가 불가능할 경우 재사용하거나 지역사회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도록 했다.

쇼에 사용된 직물은 마라케시의 여성 협동조합에 기부해 추후 재활용 카펫 등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세트에 사용된 물은 아가파이 지역의 올리브 나무에 뿌려질 예정이다.

우물과 원반 등 극적 세트는 탄소 중립적으로 만들어졌다. [사진 생로랑]

디지털 기술도 하나의 대안


각 국가의 패션 협회를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패션쇼에 대한 권고 및 실천도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파리 패션위크 협회는 지난 2020년부터 손님들을 위해 전기 셔틀버스 등 저공해 교통수단을 제공해왔고, 패션위크 이후 재료와 소품을 재사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케링도 내부적으로 그린 패션쇼 지침을 만들었으며, 산하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의 경우 2020년 봄여름 무대의 바닥에 사용한 플라스틱을 테이블로 만들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전시하고 판매했다.

업계 내부의 자정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패션쇼만큼 홍보 효과가 있는 이벤트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패션쇼 개최는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환경 영향을 줄이는 ‘피지털(Physical+Digital)’ 쇼라는 대안도 있다.

증강현실(AR) 등을 활용한 패션쇼를 선보였던 ‘더스튜디오케이’의 홍혜진 디자이너는 “완전히 쇼를 중단하기보다 디지털 장치나 가상현실(VR) 등의 기술을 활용해 세트 등에 들이는 자원과 비용을 줄이고,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점차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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